그릇 째 들고 뛰었다…양반은 물론 왕도 먹었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음식'

2025-04-1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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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어플 없던 시절 배달 음식의 시초

치킨부터 삼겹살, 국밥에 이르기까지 클릭 몇 번이면 집 앞까지 도착한다. 하지만 이런 풍경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건 아니다. 전화도, 오토바이도, 포장 용기도 없던 시절 최초로 배달을 했었다는 의외의 음식이 있다.

자전거 뒤에 철가방이 올려져 있다 / mujijoa79-shutterstock.com
자전거 뒤에 철가방이 올려져 있다 / mujijoa79-shutterstock.com

놀랍게도 그 시작은 냉면이었다. 전화도 오토바이도 없던 조선 후기, 양반들은 더운 여름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집에서 먹기 위해 음식점에 직접 사람을 보냈다.

당시 한양의 시전에서는 냉면을 파는 음식점이 여럿 있었고, 양반가에서는 하인을 시켜 원하는 음식점에 주문을 넣었다. 냉면집에서는 음식을 그릇에 담아 다시 심부름꾼이나 행상, 마부 등을 통해 고객의 집까지 배달했다. 주문은 직접, 배달은 사람을 통해 이뤄지는 구조였다.

1768년, 실학자 황윤석은 자신의 문집 『이재난고(頤齋亂藁)』에 “과거 시험을 본 다음 날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내용을 남겼다.

이는 한국 역사상 냉면의 배달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사례로,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이미 배달로 음식을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황윤석 외에도 순조가 즉위 초기에 궁중에서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남아 있다.

냉면 / mnimage-shutterstock.com
냉면 / mnimage-shutterstock.com

냉면은 배달 음식으로 적합한 특성을 갖고 있었다. 차가운 국물 음식이라 여름철 상할 우려가 적었고, 면발이 불더라도 맛의 손상이 덜해 오랜 시간 이동에도 적합했다. 조리 방식도 간단해 장마철이나 무더위 속에서도 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고,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여름 별미로 자리잡았다.

특히 조선 시대의 배달은 지금처럼 전화 한 통으로 끝나는 방식이 아니라, 집안 하인이 냉면집에 직접 가서 주문을 전달하고, 다시 그릇을 들고 오는 방식이었다.

냉면을 배달시켜 먹는 풍경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서 생활 문화로 확장됐다. 집안에 손님이 오면 “냉면 한 그릇 시킬까?”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곤 했고, 이는 곧 집에서 대접하는 최고의 환대이자 세심한 정성의 표현이었다. 냉면은 여름철 부모님께 드리는 보양식이자, 시원한 사치였다.

◈ 냉면의 배달, 오토바이보다 앞서 있었다

냉면 배달은 조선 시대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다. 특히 1960~70년대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도심에서 냉면집의 배달 문화가 활발했다. 당시엔 일회용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음식은 사기그릇에 담아 배달됐고, 식사를 마친 뒤에는 가게에서 그릇을 회수하러 다시 방문했다.

냉면 / mnimage-shutterstock.com
냉면 / mnimage-shutterstock.com

이처럼 냉면 배달은 단순한 배달 서비스가 아니라, 한 집안과 음식점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문화였다. 포장이 아닌 실그릇 회수 방식은 오늘날에도 일부 보쌈집이나 국밥집에서 유지되고 있는 ‘그릇 배달’의 원형이다.

요새는 치킨, 족발, 떡볶이 등 다양한 음식이 배달의 대표주자가 되었지만, 배달 음식 문화의 시작에는 냉면이 있었다.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4컷 웹툰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4컷 웹툰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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