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방문 외국인 69만명…한류열풍 차기 주자로 주목받는 한국 '음식 문화'
2025-04-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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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무형유산 지정 예고된 사찰음식이 일으키고 있는 변화
된장과 고추장, 간장 등 발효 장문화와 관련이 깊은 불교 사찰음식이 점차 세계로 뻗어나가며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데 이어 사찰음식도 최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 예고되면서 사찰음식이 불러일으킬 새로운 한류열풍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의 사찰음식이 단순한 한식의 하위분류를 뛰어넘어 비건, 슬로우푸드, 지속 가능한 삶을 지향하는 글로벌 흐름과 맞물려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음식 경험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기저에는 한국 불교의 오랜 전통과 장 문화의 깊은 뿌리가 있다.
사찰음식은 본래 불교 계율에 따라 육식을 금하고 오신채를 피하는 가운데, 자연의 순리에 따라 얻은 제철 식재료를 최소한으로 조리하고, 음식물의 낭비 없이 조화롭게 먹는 철학을 담고 있다. 특히 발효 음식을 중심으로 한 장 문화는 사찰음식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 이후 불교가 억압되던 시기에도 사찰 내부에서는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전통 발효 장이 전수돼 왔고, 이는 곧 한식 발효 문화의 원형을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육식을 지양하는 불교의 영향 아래 장류의 사용은 음식의 깊은 맛을 내는 데 핵심적인 수단이었으며, 이는 한국 음식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찰음식이 최근에는 외국인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지속가능성과 환경보호가 중요한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채식 기반의 전통 음식이자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찰음식은 서구권을 중심으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뿌리부터 껍질까지 재료를 온전히 사용하는 조리 방식은 해외 셰프들과 요리 연구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고 있다. 특히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사찰음식에서 모티프를 얻은 플랜트 베이스드 메뉴를 개발하고 있으며, 한국 사찰을 직접 방문해 체험하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다.

사찰음식은 단순한 요리법을 넘어서 음식에 담긴 수행의 자세와 철학으로 외국인들에게 다가간다. 음식을 준비하고, 조리하고, 먹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명상으로 여기는 태도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마음챙김' 흐름과 연결된다. 요가, 명상, 웰니스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들은 사찰음식을 통해 더욱 심화한 심신 수양의 경험을 얻고 있으며, 이를 '힐링 푸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유럽의 요가센터나 웰니스 리조트에서도 사찰음식 기반의 식단을 채택하거나 유사한 방식을 응용한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한식 편'에서는 정관 스님이 사찰음식 셰프로 등장하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국의 사찰음식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확산하며 젊은 세대의 유입도 증가하고 있다. 단순히 건강한 식사라는 것을 넘어, 음식과 정신 수련, 문화적 깊이가 함께 녹아 있는 경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찰음식은 기존 한식과는 다른 독립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 통계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2002~2022년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누적 방문자 수는 총 644만 4127명이다. 이 가운데 내국인이 574만 8620명이었고 외국인은 전체의 11%인 69만 5507명으로 집계됐다.
템플 스테이 참가자 수는 계속 증가세를 보였다. 2002년 1만 1714명으로 시작한 뒤 이듬해 10만 7510명으로 10배나 늘었고 2008년엔 25만 8000여 명, 2009년 31만여 명, 2011년 41만 9000여 명, 2018년 51만 5000여 명 등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2020년과 2021년에는 참가자 수가 23만 8000여 명, 25만 8000여 명으로 급감했으나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고 일상 회복이 차츰 이뤄지면서 2022년 참가자 수는 42만 9390명으로 예년의 80% 수준을 회복했다.
특히 지난 20여 년간 외국인 참가자 수도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02년 외국인 참가자 수는 6518명에 불과했으나 2018년 7만 7091명으로 거의 12배나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일상 회복이 되면서 외국인 참가자도 다시 증가해 2022년 3만 8599명이 한국의 사찰을 다녀갔다. 참가자들의 주요 관심사로는 한국의 전통문화 체험, 자아 성찰과 심신 안정, 불교문화 이해 등이 있으며 음식 체험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사찰음식을 중심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은 외국인들이 한국 전통의 깊이를 경험하면서도 동시에 글로벌한 가치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인이 사찰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사찰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2002년 '대한민국 1호 템플 스테이 사찰'인 직지사를 비롯해 총 33곳에서 시작된 템플스테이는 현재 150곳 이상의 사찰로 확대돼 전국 곳곳에서 외국인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숙박과 예불 체험뿐만 아니라 장 담그기, 사찰음식 조리 수업, 오감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불교의 세계를 깊이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외국인을 위한 영어 통역, 다국어 안내, 전용 강의 콘텐츠 등이 제공되면서 접근성과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
사찰음식의 세계화는 한국 외 해외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 독일, 프랑스, 태국, 호주 등지에서는 사찰음식을 주제로 한 강연, 전시회, 팝업 시연이 활발히 열리고 있다. 한국문화원과 한식진흥원도 현지 문화와 결합한 사찰음식 워크숍을 통해 외국인들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2023년에는 뉴욕, 파리, 방콕 등 주요 도시에서 사찰음식 체험 행사가 개최돼 큰 호응을 얻었고 일부 현지 채식 레스토랑은 사찰음식을 기반으로 한 메뉴를 상시 제공하며 문화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사찰음식을 지역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전남 순천 송광사, 경남 양산 통도사, 전북 김제 금산사 등은 사찰음식 체험과 명상, 산책을 결합한 지역 연계형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 사찰 주변 지자체는 전통 장류 체험장과 농촌 음식 자원을 연계해 관광객 유치를 꾀하고 있다. 특히 전남 강진에서는 '사찰음식체험관'이 2023년 개관하며 음식과 지역문화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사찰음식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청년 창업 사례도 눈에 띈다. 서울, 부산, 제주 등지에서는 사찰음식의 미니멀 조리법과 철학을 기반으로 한 비건 카페, 식당이 문을 열고 있으며 단순한 채식 위주 메뉴를 넘어 한국 고유의 발효장과 식재료를 현대 감각으로 풀어낸 창작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오신채를 넣지 않은 고추장 마요네즈 비빔밥, 말린 두부 장조림 샐러드, 산야초 주스를 곁들인 디톡스 정식 등은 MZ세대와 외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들 가게는 사찰음식의 정신을 잇되, 트렌디한 공간과 감각적 플레이팅으로 접근성을 높이며 새로운 외식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사찰음식은 그 자체로 오랜 역사와 문화, 철학이 응축된 콘텐츠이자, 세계적인 흐름과 공감대를 끌어내는 문화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음식이면서 동시에 수행이고, 문화이며, 환경을 위한 선택인 사찰음식은 앞으로도 지속가능성과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세계인들에게 매력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