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기만 한 줄 알았는데.." 사카린, 치명적인 '항생제 내성균' 잡는다
2025-04-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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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루넬대 연구팀 "항생제와의 전쟁, 사카린이 새로운 치료법 될수도"
다이어트 식품이나 무설탕 음료에 흔히 쓰이는 인공감미료 사카린이 항생제 내성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학계는 물론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제로 칼로리’로 잘 알려진 사카린이 현대 의학 최대의 골칫거리인 내성균 문제에 해답을 제시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해당 연구는 영국 브루넬대학교 항균혁신센터 소속 로난 맥카시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수행했으며, 국제학술지 ‘EMBO Molecular Medicine’에 최근 게재됐다. 연구에 따르면, 사카린은 강력한 약물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의 생존을 저해하고 기존 항생제의 효과를 높여주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카린은 설탕보다 300~700배 더 단맛을 내면서도 열량은 거의 없어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식품에 사용돼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사카린의 ‘달콤함’ 외에 치명적인 병원균을 억제하는 ‘쓴맛’ 같은 기능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맥카시 교수 연구팀은 사카린이 박테리아의 DNA 복제를 방해하고, 약물 내성을 강화하는 생물막 형성을 막으며, 세포 성장을 직접 멈추게 한다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단순한 실험실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연구팀은 사카린을 포함한 하이드로겔 드레싱을 개발해 실제로 상처 부위에 적용했으며, 그 결과 현재 병원에서 쓰이는 은 기반 항균 드레싱보다 더 우수한 항균 효과를 보여준 것으로 확인됐다. 내성균이 피부나 상처 부위에서 감염을 일으킬 때 이 드레싱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맥카시 교수는 “기존 항생제를 개발하려면 수십억 달러와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사카린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안전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큰 이점이 있다”며 “내성균 감염 치료에 필요한 새로운 대안으로 충분한 가능성을 지녔다”고 말했다.
항생제 내성은 이미 세계보건기구(WHO)가 경고한 인류 건강의 주요 위협이다. WHO는 현재 가장 위협적인 내성균으로 녹농균과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 등을 지목하고 있으며, 이들 균은 패혈증이나 만성 폐감염 등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어, 내성균을 억제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사카린이 기존 항생제와 결합돼 내성균 제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당장 상용화되긴 어렵더라도, 기존 식품 첨가물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연구진은 현재 사카린 기반 하이드로겔의 안전성과 실효성을 더 넓은 임상 조건에서 검증하기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 다른 항생제 내성균에 대해서도 사카린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도 계획하고 있다.
맥카시 교수는 “항생제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사카린이라는 흔한 물질이 그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