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kg당 20만원 넘는 고급 식재료지만 사실 10년째 한국 바다 죽이고 있는 생물
2025-04-1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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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사막화로 다양성과 생명력 잃고 있는 해양 생태계
국내에서 1kg당 20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고급 식재료가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난동꾼으로 밝혀졌다.


바다 사막화는 해양 생태계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잃고 바다 밑바닥이 마치 사막처럼 황폐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주로 해조류가 사라지면서 발생하는데 해조류는 해양 생물의 먹이이자 서식지를 제공하는 중요한 생태 요소다. 해조류가 줄어들면 바다 생물들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해저 생태계 전체가 붕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최근 이 바다 사막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생물이 바로 성게다.
성게는 해양 생태계에서 먹이사슬의 중간 위치에 있는 생물로, 자연 상태에서는 해조류를 적당히 소비하면서 생태계 내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게 개체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이들의 과도한 해조류 섭취가 바다 사막화를 초래하고 있다.
성게는 하루 종일 해조류를 갉아 먹으며 살아가는데 개체 수가 많아질수록 해조류의 소실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들은 미역, 다시마 같은 대형 해조류는 물론이고 작은 조류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심지어 해조류 포자가 정착하는 단계에서부터 갉아먹기 때문에 해조류의 재생산 주기를 철저히 파괴한다. 결국 해조류가 전멸한 바다에는 광활한 암반 지대만 남게 되고 이는 사막화된 해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이어진다.
성게가 해양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은 양면적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성게는 해조류를 적당히 소비하면서 생태계 내 해조류의 과잉 성장을 억제하고 생태계 다양성 유지에 기여한다. 성게는 다양한 어종의 먹이원이 되며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지탱하는 중간 매개체 역할도 수행한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과도한 성게 개체 수가 해조류를 초토화하면서 해양 생태계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포식자인 해달, 광어, 문어 등이 감소하면서 성게의 자연 개체 수 조절 메커니즘이 붕괴해 문제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성게 번식으로 인한 바다 사막화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해역 중 하나는 동해안 일대다. 그중에서도 독도 인근 해역은 해양 생물 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황폐화하고 있다. 이 지역은 다양한 해양 생물이 서식하던 해저 숲이 있었던 곳으로,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생물학적 생산성이 높은 지역으로 분류됐었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의 해저가 민둥 바위로 변했고 산호와 해면동물, 갑각류 등의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바다 생명력 자체가 크게 위축됐다.
2018년 국가해양생태계 종합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도에는 약 322종의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해양생물의 서식지 역할을 하는 감태, 대황 등 갈조류를 포함해 약 68종의 해조류가 독도에 서식하고 있어 단위 면적당 생물량이 국내 최고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독도 주변 해역에서 해조류를 섭식하는 둥근성게의 이상증식과 암반을 하얗게 덮는 석회조류의 확산으로 갯녹음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어 해양생물의 다양성 감소와 해양생태계 균형의 훼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2015년부터 독도 해양생물 다양성 회복 사업을 시행해 왔으며 2019년까지 약 12.8톤의 성게를 제거한 결과 성게 밀도가 확연히 줄어드는 성과를 얻었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2020년 2회에 걸쳐 수중 성게 제거 작업을 실시했다. 또 해조류의 훼손된 서식지를 복원하기 위해 갯녹음 현상이 심각한 해역에서 석회조류 제거와 자생 해조류(감태, 대황 등) 이식을 함께 추진했다. 또한 천적에 의해 개체수가 조절되는 생태계 먹이사슬 원리를 이용해 성게의 천적 생물인 돌돔 치어 1만 마리를 방류했다.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과학원은 성게의 번식력을 억제하기 위해 성게 포획을 장려하고 성게를 이용한 산업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식용 성게의 시장 확대와 성게 추출물의 화장품 및 의약품 원료화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노력에 더해 해녀들의 성게 채취 활동도 바다 사막화 감소에 일조하고 있다. 해녀들은 주로 식용 가능한 보라성게를 채취해 시장에 판매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성게 개체 수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 해녀들의 성게 채취는 지역 생계와 바다 생태계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효과적인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성게는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번식하며 한 마리당 수백만 개의 알을 낳는다. 번식 주기 역시 짧아 매년 여러 번 산란을 반복한다. 따라서 꾸준한 제거 작업 없이는 개체 수 조절이 거의 불가능하다. 해녀들이 성게를 채취하는 것은 바다 생태계 관리 차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해녀 인구의 고령화와 감소 추세는 이 같은 자연적인 조절 메커니즘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대응 사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오키나와와 홋카이도 해역에서 성게로 인한 해조류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게 포획 보상제'를 운영하고 있다. 어민들이 성게를 일정량 이상 포획하면 정부가 이에 대해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호주는 포식성 어류의 방류를 통해 성게 개체 수를 자연적으로 조절하고 있으며 동시에 성게를 고급 식재료로 브랜드화해 상업적 수요를 촉진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 사막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성게의 놀라운 번식력과 생존력 때문이다. 성게는 산란 시 수백만 개의 수정란을 퍼뜨리고 그중 일부만 살아남아도 개체 수 유지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게다가 성게는 대부분의 어류와 달리 육식성 포식자에 대한 회피 능력이 뛰어나고 성체가 된 이후에는 긴 수명을 유지해 수년간 해조류를 끊임없이 먹어 치운다.
이런 특성은 번식력과 생존력이 결합해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떠오르게 만든다. 아무리 많은 성게를 제거해도 몇 마리가 남아 있으면 곧바로 수천 마리로 불어나는 일이 반복된다. 성게를 포식하는 생물들의 회복이 더뎌진 현재 상황에서는 이 생태계 불균형을 인간이 오롯이 떠안게 되는 셈이다.
아울러 바다 사막화가 진행된 곳에 사는 성게는 대부분 해초가 부족해 굶은 상태이기 때문에 상품성이 없어 채취 후 열어 봐도 먹을 게 없다. 즉 맛있는 성게를 먹기 위해서도 성게 제거 작업이 필요한 셈이다.
결국 성게로 인한 바다 사막화 문제는 단순히 특정 생물 하나의 문제가 아닌 전체 해양 생태계 구조와 인간 활동의 복합적인 결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게 개체 수 조절과 더불어 해양 생물 다양성 회복, 포식자 복원, 해조류 숲 재건 등 다각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성게를 둘러싼 바다의 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수산업과 해양관광, 그리고 미래 세대의 생태적 자산과도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사회적 인식과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