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재료인 줄 알았는데…알고 보니 ‘토종’ 딱지 붙은 한국 채소

2025-04-1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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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리의 전용 향신 채소로 인식된 식재료

물결처럼 퍼지는 향긋함, 그리고 짙은 자색 잎이 주는 고운 인상. 초밥 위에 살포시 얹혀 나오는 자주빛 채소, 우리는 흔히 이를 ‘시소(しそ)’라 부르며 일본 채소로 인식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잎채소는 한국에서도 예부터 자생하며 밥상에 오르던 전통 식재료다. 바로 ‘차조기(紫蘇)’, 일명 ‘붉은 들깻잎’이다. ‘일본의 깻잎’쯤으로 여겨졌던 차조기. 그 실체는 오랜 역사와 향토 문화를 지닌 우리 땅의 토종 채소다.

차조기.  / Robert Buchel-Shutterstock.com
차조기. / Robert Buchel-Shutterstock.com

차조기는 쌍떡잎식물 꿀풀과에 속하는 1년생 초본이다. 외형은 들깻잎과 비슷하지만, 잎 색깔이 보랏빛에 가깝고 향이 더 짙으며, 잎 표면에 자줏빛 미세한 털이 도드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서는 시소로 불리며 스시, 덴푸라, 장아찌, 생선 요리 등 다채로운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이 식물의 뿌리는 일본보다 더 오래 전부터 한반도에 있었다. 『동의보감』과 『향약집성방』 같은 고문헌에도 차조기는 식용과 약용 모두에 활용된 잎채소로 등장한다. 감기 증상 완화, 해열, 해독, 염증 억제 등 민간요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식물이다.

현대의 식탁에서도 차조기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차조기 회무침’이다. 참치, 광어, 우럭 등 신선한 흰살 생선을 얇게 썰어내고, 차조기잎을 곁들여 채 썬 오이, 양파, 청양고추 등과 함께 초고추장에 무쳐내면 된다. 차조기의 쌉싸름하면서도 청량한 향이 생선의 비린 맛을 눌러주고 입맛을 돋우는 별미다. 깻잎보다 향이 강해 조금만 넣어도 요리에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밥 반찬으로 즐기고 싶다면 차조기 비빔밥도 좋다. 따뜻한 밥 위에 잘게 찢은 차조기잎과 들기름, 간장을 살짝 넣고 비벼 먹으면 간단하면서도 맛과 향이 훌륭한 한 끼가 된다. 장아찌로 담가두면 오래도록 즐길 수 있으며, 최근에는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내는 방법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고기 쌈용 잎채소로도 훌륭해, 쌈채 문화를 풍부하게 만든다.

차조기 회무침 / 유튜브 'KBS 교양'
차조기 회무침 / 유튜브 'KBS 교양'

차조기의 건강 효능은 식문화 외적으로도 주목받는다. 베타카로틴, 루테올린, 로즈마린산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면역력 강화, 염증 억제, 노화 방지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차조기가 “속을 따뜻하게 하고 기침과 가래를 멎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식욕을 돋우는 데에도 좋다고 전한다. 차조기 특유의 향은 아로마 효과까지 겸비해 심신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차조기는 약초로서도 활용도가 높아, 최근에는 차조기청, 차조기즙, 차조기차 등 건강 기능성 가공식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차조기차는 붉은 잎을 우려내어 은은한 향과 함께 면역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음료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한국산 차조기의 항산화 수치가 일본종보다 더 높다는 농촌진흥청의 분석 결과가 알려지며 ‘국산 토종 차조기’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유튜브, MBN Entertainment

그렇다면 차조기는 왜 일본 채소로 오해받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일본 스시 문화의 세계적 전파 때문이다. 일본 요리에서는 차조기를 초밥 사이에 끼우거나, 날생선 위에 얹는 방식으로 사용해 시각적 아름다움과 풍미, 심지어 살균 효과까지 노린다. 이 과정에서 차조기가 ‘일본 요리의 전용 향신 채소’처럼 인식되었고, 자연스레 일본 식재료로 각인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이미 조선시대부터 차조기를 음식과 약초로 사용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로컬푸드 운동과 전통 식문화 보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차조기 역시 토종 식재료로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경북, 충남 등지에서는 차조기 재배 농가가 늘어나고 있고, 로컬 직거래 장터에서도 ‘한국산 붉은 들깻잎’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깻잎과는 또 다른 개성을 지닌 차조기는 나물 요리뿐 아니라 현대적 감각의 퓨전 요리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초밥 위 자줏빛 채소 하나에도, 식문화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일본의 식탁에 익숙한 그 채소가 사실은 한국인의 입맛과 정서에 더 가까운 토종이라는 사실은 차조기의 가치를 새삼 일깨워준다. 오랜 식재료의 재발견은 단지 먹거리를 넘어서, 우리의 뿌리와 전통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차조기의 짙은 잎사귀에 숨은 이야기, 알고 보면 더 깊고 맛있는 우리 땅의 향이다.

home 김희은 기자 1127khe@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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