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발암물질 취급받았는데... 지금은 극찬받는 '대반전 식재료'

2025-04-0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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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에까지 효과적이라는 식재료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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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린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사카린은 한때 암을 유발한다며 금지령까지 내려진 인공감미료다. 오랜 세월 오해의 굴레 속에서 억울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과학계가 사카린의 숨겨진 얼굴을 하나둘 벗겨내며 그 오명을 뒤집는 중이다. 설탕의 대체재로 시작해 이제는 의학의 새로운 희망으로까지 떠오른 식재료 사카린에 대해 알아봤다.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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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린은 1879년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우연히 발견된 최초의 인공감미료다. 설탕보다 300~500배 강한 단맛을 내면서도 칼로리는 전혀 없는 까닭에 1차 세계대전 당시 설탕 부족 사태를 해결하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후 1960~1970년대 다이어트 열풍을 타고 ‘칼로리 제로’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사카린은 단맛의 대명사로 각광받았다. 1960년대 한국 정부는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쌀로 소주를 만드는 걸 금지했다. 소주 업계는 고구마나 타피오카로 만든 주정을 물과 섞어 희석 소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사카린은 강한 알코올 냄새를 누그러뜨리고 단맛을 더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1970년대 쥐 실험에서 사카린이 방광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며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 FDA는 사카린을 금지하려 했다. 모든 제품에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 문구를 붙이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퍼졌고, 사카린 소주 논란이 불거졌다. 대중은 값싼 소주의 단맛 뒤에 숨은 건강 위험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고, 결국 1980년대 후반 사카린은 소주 첨가물에서 퇴출됐다. 그 자리를 스테비오사이드 같은 다른 감미료가 대신하며 소주 업계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당시 사카린은 소주뿐 아니라 대중의 사랑을 받던 감미료였기에 금지 조치에 대한 반발도 거셌다. 미국에선 완전 금지가 무산됐지만, 그 오명은 수십 년간 사카린을 따라다녔다.

그 오해가 풀리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부터다. 후속 연구들이 쥐의 방광암이 인간과는 다른 생리적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는 걸 밝혀냈다. 쥐는 고용량 사카린을 먹으면 요로에 결정체가 생겨 암을 유발하지만, 인간에겐 그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2000년 미국 국립독성학프로그램은 사카린을 발암물질 목록에서 제외했고, FDA도 경고 문구를 철회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식품안전청(EFSA)도 사카린의 안전성을 인정하며 하루 허용 섭취량을 체중 1kg당 5mg으로 정했다. 70kg 성인이라면 매일 350mg, 그러니까 다이어트 콜라 10캔 분량까지 안전하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사카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고, 과거 소주 논란은 과도한 공포 반응이었다고 결론 내려졌다.

그런데 사카린의 재발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5년 미국화학학회에서 플로리다 의과대학 로버트 매케너 교수와 연구팀은 사카린이 암세포의 성장에 필수적인 9번 탄산탈수효소(carbonic anhydrase IX)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 효소는 암세포가 산성 환경을 유지하며 증식하고 전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강한 세포엔 거의 없어서 항암제 타깃으로 주목받던 이 효소가 놀랍게도 사카린에 무력화됐다. 연구진은 사카린이 효소와 결합해 그 기능을 차단하며 암세포 성장을 억제한다고 밝혔다. 이 발견은 사카린을 항암제 개발의 기반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열었다. 실험실에서 유방암과 간암 세포를 대상으로 한 초기 테스트가 성공적이었고 이후 동물 실험으로 이어졌다.

놀라움은 또 있었다. 최근 영국 브루넬 대학 연구팀은 사카린이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를 죽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다제내성균, 특히 세계보건기구가 위험하다고 경고한 병원성 박테리아를 사카린이 억제했다. 연구에 따르면 사카린은 항생제와 함께 쓰이면 내성균의 방어막을 약화해 항생제가 더 잘 작용하게 한다. 쥐 실험에서 사카린 단독으로도 내성균을 줄였고, 항생제와 병용하면 효과가 배가 됐다.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돌파구로 사카린이 주목을 받는 길을 연 셈이다. 매일 커피에 타 먹는 그 사카린이 의학계 게임체인저로 떠오른 셈이다.

사카린이 설탕이나 과당보다 좋은 점은 뭘까. 첫째, 칼로리가 없다. 설탕 1g은 4칼로리, 과당도 비슷하지만, 사카린은 몸에서 대사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된다. 그래서 비만이나 당뇨 걱정 없이 단맛을 즐길 수 있다. 둘째, 혈당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설탕과 과당은 혈당을 급격히 올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지만, 사카린은 혈당을 건드리지 않아 당뇨 환자에게 이상적이다. 셋째, 충치 위험이 없다. 설탕은 입안에서 박테리아에 의해 산으로 변해 치아를 부식하지만 사카린은 그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게다가 설탕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 같은 단맛을 낸다. 설탕 2티스푼이 필요할 때 사카린은 300분의 1 수준인 0.006티스푼이면 충분하다.

요리에 활용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사카린은 열에 안정적이어서 베이킹이나 조림처럼 고온 조리에도 적합하다. 설탕 대신 쿠키, 케이크, 잼을 만들 때 넣으면 칼로리를 줄이면서 단맛을 유지한다. 다만 사카린만 단독으로 쓰면 금속성 쌉쌀함이 끝맛에 남길 수 있다. 이를 줄이려면 아스파탐이나 수크랄로스 같은 다른 감미료와 섞어 쓰는 게 좋다. 10:1 비율로 사카린과 사이클라메이트를 블렌딩하면 쓴맛이 줄고 부드러운 단맛이 난다. 음료수에선 다이어트 콜라처럼 탄산음료에 12mg/온스 이하로 첨가해 칼로리 없이 청량감을 준다. 집에서 커피나 차에 넣을 땐 분말이나 액상 형태로 소량씩 조절해 쓰면 된다. 과일 디저트나 요거트에 뿌려도 깔끔한 단맛을 더한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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