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태계 초토화했는데.. 한국에선 참교육당한 대형 물고기
2025-04-12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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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 별미로 환영받다가 생태계 파괴자로 낙인찍힌 물고기

대륙에서 건너간 불청객 백련어가 미국 생태계를 초토화했다는 소식이 가끔 들려온다.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물살을 가르는 백련어는 중국 양쯔강에서 시작해 태평양을 건너 미국 내수면을 집어삼켰다. 한때는 식탁 위의 별미로 환영받던 존재였지만 이제는 억제 불능의 생태계 파괴자로 낙인찍혔다. 그런데 이 백련어가 대한민국에선 정반대의 운명을 맞았다. ‘참교육’이라 불릴 만큼 철저히 제압당했다. 같은 물고기, 다른 운명. 백련어의 기묘한 여정을 따라가본다.
백련어는 중국 양쯔강과 주변 호수에서 사는 민물고기다. 몸길이는 평균 60~100cm까지 자란다. 최대 1.8m에 무게 50kg까지 나가는 괴물급 개체도 보고된다. 이 물고기는 원래 1960년대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입됐다. 양식업 지원과 수질 개선이 당시 목적이었다. 백련어는 플랑크톤을 걸러 먹는 식성을 갖고 있다. 오염된 연못이나 저수지의 조류를 줄이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미국은 여겼다. 1970년대엔 아칸소주 양식장에서 본격적으로 풀려났다. 어부들은 값싸고 빠르게 자라는 이 물고기를 반겼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1970년대 후반 홍수와 관리 소홀로 양식장에서 빠져나온 백련어가 미시시피강 유역으로 퍼졌다. 이 녀석의 놀라운 번식력과 적응력이 문제였다. 암컷 한 마리가 한 번에 100만 개 이상의 알을 낳고, 알은 물에 떠다니며 빠르게 부화한다. 강물의 흐름만 있으면 번식에 제약이 없으니 개체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0년대 들어 미시시피강과 일리노이강, 오하이오강 같은 대형 수계에서 백련어가 토착 어종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플랑크톤을 독식하며 먹이사슬을 교란했고, 잉어, 농어 같은 고유종의 개체 수가 급감했다. 미국 중부 내륙 호수의 생태계는 백련어 손아귀에 들어갔다.
백련어는 특이한 물고기다. 소음이나 보트 엔진 소리에 놀라면 물 위로 수십 cm씩 튀어 오른다. 떼로 몰려다니며 뛰어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지만 어부와 낚시꾼에겐 재앙이다. 무게 10kg 넘는 물고기가 사람 머리를 강타하거나 보트를 뒤집는 사례가 빈번히 벌어졌다. 2019년 일리노이강에선 백련어가 보트에 부딪혀 낚시꾼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보고됐다. 내수면 어업이 큰 손실을 입자 미국 당국은 백련어를 ‘침략종’으로 규정하며 퇴치에 나섰다.
미국 정부와 주 정부는 백련어 제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2010년대부터 전기 충격, 그물 포획, 독극물 투입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일리노이주는 브랜드까지 개발해 백련어를 재포장해 식용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맛은 담백하고 흰살생선 느낌이라 어부들이 잡아 시장에 내놓도록 유도했다. 역부족이다. 연간 수만 톤이 잡히지만 개체 수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미시간호로 번지는 걸 막으려 시카고 운하에 전기 장벽까지 설치했지만, 백련어는 틈만 나면 뚫고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이 물고기가 미국 내수면 생태계를 영구히 바꿨다고 본다.
반면 대한민국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도 백련어를 1970년대 양식 목적으로 도입했다. 한국에 온 백련어는 미국처럼 생태계를 장악하지 못했다. 한국의 강과 호수는 이미 잉어, 붕어, 쏘가리 같은 토착 어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백련어는 경쟁에서 밀렸다. 한국의 내수면 환경은 백련어가 대규모로 번식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미시시피강 같은 거대한 유역과 달리 한국의 강은 짧고 수량 변화가 심하다. 백련어 알이 떠다니며 부화하려면 긴 흐름이 필요한데, 그런 조건을 한국은 충족하지 않는다.
백련어 먹성도 영향을 끼쳤다. 플랑크톤을 주식으로 삼는 백련어는 미국에선 경쟁자가 적어 무한 증식했지만, 한국에선 토착 어종과 먹이 싸움에서 밀렸다. 한강이나 낙동강의 플랑크톤 양은 백련어가 대규모로 살기에 충분치 않았다. 결국 백련어는 한국에서 생태계 파괴자로 거듭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한국의 철저한 관리도 한몫했다. 1980년대부터 정부와 지자체는 외래종 유입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백련어가 양식장에서 빠져나와 야생으로 퍼지자 곧바로 포획 작전을 펼쳤다. 낚시꾼들도 백련어를 잡아 제거하는 데 동참했다. 일부 지역에선 백련어가 먹이사슬을 위협할 조짐을 보였지만 빠른 대응으로 싹을 잘랐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백련어 개체 수는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의 지리적 특성과 관리 체계가 백련어 확산을 막은 셈이다. 이따금 낙동강이나 한강에서 거대한 백련어가 낚이긴 한다. 2023년 낙동강에서 1.5m급 백련어가 잡혔다는 보도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체군 자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도 미국은 백련어와의 전쟁을 계속 벌이고 있다. 2022년 미 농무부는 백련어 퇴치에 1억 달러 예산을 투입했다. 어부들에게 보조금을 주고 백련어를 매입하고 드론까지 동원해 개체 수를 줄이려 애쓴다.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미국에선 현재진행형 악몽인 백련어는 한국에선 그저 지나간 손님일 뿐이다.
■ 중국의 백련어 요리법
중국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백련어를 요리해 즐긴다.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는 찜 요리다. 손질한 백련어에 생강, 파, 간장, 술 등을 뿌려 쪄낸다. 백련어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조리법으로 평가받는다.
매콤한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백련어를 튀겨 매운 소스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백련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후, 고추기름, 두반장, 마늘, 생강 등으로 만든 매콤한 소스를 뿌리면 훌륭한 술안주가 된다. 튀김 요리는 백련어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살려준다.
탕 요리에도 백련어가 자주 사용된다. 백련어를 토막 내어 두부, 채소 등과 함께 끓이면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특히 겨울철에 따뜻하게 즐기기 좋은 탕 요리는 백련어의 영양을 고스란히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맑은 탕 외에도 얼큰한 맛을 더한 탕으로 즐기기도 한다.
볶음 요리 역시 인기 있는 백련어 조리법이다. 백련어 살을 발라 채소와 함께 기름에 볶으면 간편하면서도 맛있는 요리가 완성된다. 굴소스나 간장 베이스의 양념으로 볶으면 밥반찬으로도 손색없다. 볶음 요리는 백련어의 부드러운 살과 채소의 아삭한 식감이 잘 어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