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와서 한국 호수 점령했는데... 맛이 좋아 환영받는 물고기
2025-04-13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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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특히 좋아해 외화벌이에도 기여하는 생선

빙어 낚시는 호수 얼음낚시의 대명사다. 차디찬 얼음 아래에서 반짝이는 작은 물고기 빙어는 단순한 어류를 넘어 한국의 겨울 풍경과 지역 경제를 뒤바꾼 존재로 자리 잡았다. 언뜻 보면 연약해 보이는 몸집과 투명한 빛깔로 ‘호수의 요정’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생태와 인간의 손길이 얽힌 이야기가 숨어 있다. 빙어는 어떻게 한국 내수면의 단골손님이 됐을까. 빙어에 대해 알아봤다.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은 빙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다빙어목 바다빙어과에 속하는 어류이다. 몸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피라미와 비슷하나 훨씬 더 날씬하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며 등과 꼬리지느러미 사이에 기름지느러미가 있다. 지느러미에는 무늬가 없이 투명하다. 몸의 양쪽 중앙에는 폭이 넓은 은백색 세로띠가 있다. 산란기가 되면 수컷은 두부, 비늘 및 모든 지느러미에 약한 돌기가 있고, 배지느러미는 길어져 항문에 이른다. 주로 동물성 플랑크톤을 섭식하고, 깔따구 유충도 먹는다. 하절기에는 저수지의 깊은 곳에서 서식하다가, 산란기에 얕은 개울로 이동한다. 4월과 5월에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수지나 댐의 상류인 옅은 개울의 자갈 바닥에 산란하고 죽는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댐과 저수지에 서식하며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에 분포한다.
원래 빙어는 자연 상태에선 바다에서 자라다가 산란기인 민물로 올라와 알을 낳는 회유성 어종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 곳곳의 호수와 저수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인간의 손길 덕분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빙어의 고향은 북한이다. 192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수산시험장은 함경남도 용흥강에서 빙어 알을 채집해 수원의 서호, 제천 의림지, 경남 초동지 등에 방류했다. 일본인들이 빙어를 즐겨 먹던 터라 수출과 식용을 목적으로 이식 사업을 벌인 것. 이후 빙어는 뛰어난 환경 적응력으로 전국 대형 댐과 저수지에 퍼져 나갔다. 지금 한국에 있는 빙어는 대부분 이때 방류한 빙어의 후손들이다. 빙어는 찬물을 좋아하는 냉수성 어종이라 수온 0~18도를 좋아한다. 20도를 넘으면 폐사한다. 이런 특성 덕에 겨울철 얼음이 얼면 빙어 낚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국에선 빙어가 꽤 인기 있는 먹거리다. 특히 겨울철 얼음낚시로 잡은 빙어를 튀김이나 회로 먹는 게 흔하다. 튀김은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고, 회는 생으로 먹어도 비린내가 거의 없어 부담 없다. 빙어 도리뱅뱅이도 인기 요리다. 빙어를 둥글게 팬에 담아 튀기듯 구운 후 매콤달콤한 양념을 발라 먹는 음식이다. 다른 나라에선 일본에서 ‘와카사기’라 불리며 사랑받는다. 일본은 튀김, 구이, 조림 등으로 요리한다. 특히 겨울철엔 얼음낚시와 함께 지역 특산물로 즐긴다. 러시아나 알래스카 같은 추운 지역에서도 식용으로 쓰이지만 한국이나 일본만큼 대중적이진 않다.
빙어를 먹을 땐 주의할 점도 있다. 민물고기라 기생충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얼음낚시의 낭만과 맑은 물 이미지가 강하지만, 1급수는 물론 오염된 물에서도 잘 사는 빙어는 기생충 감염 위험이 높다. 일부 식당에서 파는 빙어 중엔 더러운 물에서 잡힌 경우도 있기에 수은이나 비소 오염 가능성도 제기된다. 때문에 생으로 먹을 땐 깨끗한 출처인지 확인하고 가능하면 익혀 먹는 게 안전하다.
빙어를 두고 ‘침략성 어종’이란 말이 나오기도 한다. 원래 토착 어종이 아닌 빙어가 인위적으로 방류되면서 내수면 생태계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빙어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주로 먹는데, 이 먹이를 토착 어종과 경쟁하며 개체 수가 급격히 늘었다. 특히 붕어, 잉어 같은 기존 민물고기와 먹이 경쟁을 벌이거나, 빙어의 빠른 번식력이 토착 어종의 서식 공간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있다. 자연 상태론 동해 북부 하천에 국한됐던 빙어가 전국 호수로 퍼지면서 생태계 균형을 흔들었다는 거다. 게다가 환경 적응력이 워낙 좋아 수질이 나쁜 곳에서도 떼를 지어 살아남아 토착 어종을 압박한다.
하지만 빙어를 단순히 ‘침략자’로만 볼 순 없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빙어는 겨울철 얼음낚시의 대표 어종으로,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빙어 축제의 핵심이다. 강원도 인제빙어축제, 평창송어축제(빙어 포함), 양평 산수유마을 빙어축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축제엔 매년 수십만 명이 몰려 얼음낚시, 썰매타기, 빙어 튀김을 즐기며 지역 상권을 살린다. 인제빙어축제엔 2023년 20만 명이 다녀갔다. 빙어가 펜션, 식당, 관광 수입을 끌어올린 셈이다. 빙어 낚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쉽게 즐길 수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유혹하고, 잡은 빙어를 즉석에서 요리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역 주민은 겨울 대목을 맞아 두 달치 예약이 꽉 찰 정도로 호황을 누리기도 한다.
더불어 빙어는 어업인 소득 증대에도 한몫한다.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는 1990년대부터 빙어 자원 증강을 위해 수정란 방류 사업을 해왔다. 2020년부턴 수정란을 직접 부화시켜 어린 빙어를 방류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2023년엔 화성 남양호, 평택호, 안산 탄도호에 140만 마리를 풀었고, 앞으로도 쏘가리, 붕어 등과 함께 순차 방류를 계획 중이다. 이는 토착 어종 회복과 어업인 수익을 동시에 노린 전략이다. 자연 상태론 수정란 부화율이 낮아 개체 조절이 어려웠지만, 인위적 관리로 빙어 자원을 안정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이런 노력은 빙어를 ‘제거 대상’이 아닌 ‘활용 자원’으로 보는 시각을 뒷받침한다. 침략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빙어는 생태계에서 이미 자리 잡았고, 이를 잘 관리하면 경제적 이익과 생태 보존을 함께 꾀할 수 있다. 실제로 빙어는 낚시용 미끼로도 양식돼 시판되고, 수출로 외화까지 벌어들이는 어종이다. 겨울철 낚시꾼들은 구더기나 토막 지렁이를 미끼로 삼아 빙어를 낚는다.
다만 기후변화는 빙어와 지역 경제에 새로운 도전을 던진다. 한 빙어축제는 이상 고온으로 얼음이 얼지 않아 취소됐다. 고탄소 시나리오에 따르면 앞으로 겨울이 두 달가량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얼음낚시가 어려워지면 빙어 축제와 관광 수입도 타격을 받는다. 해당 지자체는 여름 캠핑이나 물 테마 축제로 대안을 모색 중이지만 빙어의 상징성은 여전히 겨울과 떼려야 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