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쓸만해도 다 버리는데…외국서는 줄 서서 사간다는 뜻밖의 '물건'

2025-04-0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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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가 아닌 새로운 시작점?!

한국에서 폐차는 보통 '끝'으로 인식된다. 운행을 마친 차량은 말소 등록 후 고철로 압축돼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한국 폐차 산업 이면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차량이 부품 단위로 분해돼 전 세계 곳곳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일부 나라에서는 이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쓸만해도 다 버리는 것'이 해외에선 '귀한 물건'으로 환영받고 있는 셈이다.

자료사진. 폐차장. / sandsun-shutterstock.com
자료사진. 폐차장. / sandsun-shutterstock.com

2023년 기준 한국 중고차 수출은 약 63만 대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역대 최고치로, 그중 상당수는 단순 중고차가 아닌 폐차 등록이 완료된 차량이다. 공식적으로는 말소 처리된 차량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들 차량은 철저한 분해 과정을 거쳐 사용 가능한 엔진, 변속기, 배터리, 전선, 서스펜션 등 수십 종의 부품이 분리되며, 상태에 따라 다시 상품화돼 해외로 수출된다. 주요 수출 대상국은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몽골 등 저개발국 및 중동, 동유럽 지역이다.

폐차 작업은 단순한 철거가 아니다. 1500℃에 이르는 고온의 산소 절단기를 이용해 운전석과 적재함, 연료통을 분리하고, 엔진은 지게차에 개조한 고리로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분해된다. 작업자들은 대부분 20~30년 경력의 중장비 기술자들로, 어떤 부위를 어디서부터 절단해야 할지 계산해가며 효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대형 냉동차나 덤프트럭의 경우, 무게 중심을 고려해 굴착기와 지게차가 협업해 적재함을 들어내야 하며, 연료통이나 유압장치처럼 위험 부품은 먼저 분리한다.

중고 부품은 분해 후에도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엔진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돌려보고, 내부에 물이 들어가 색이 변한 흔적이 있는지도 확인한다. 부품 상태에 따라 등급이 나뉘며,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바이어들이 직접 현장을 찾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폐차장을 찾아 부품을 둘러보는데, 특히 몽골, 이라크,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바이어들은 특정 부품을 찾기 위해 거의 매일 폐차장을 찾는다.

폐차장. 자료사진. / Kris Hoobaer-shutterstock.com
폐차장. 자료사진. / Kris Hoobaer-shutterstock.com

이들이 한국 중고 부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한국 차량은 내구성이 뛰어나며, 수년을 운행한 뒤 폐차돼도 여전히 쓸 수 있는 부품이 많다. 둘째, 가격 경쟁력이다. 동일 부품을 새 제품으로 구매하려면 수십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지만, 중고 부품은 많게는 80% 이상 저렴하다. 셋째, 부품 수급의 어려움이다. 오래된 차는 새 부품 자체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중고 부품은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 된다.

특히 대형 특수차량의 부품은 고가이기 때문에 해외 수요가 높다. 냉동트럭, 덤프트럭, 택배용 대형 트럭 등에서 떼어낸 부품은 대형 창고에 보관돼 있으며, 부품별, 등급별로 분류돼 바이어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국내에선 이제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되는 차량이라도, 이들 나라에선 여전히 가동 가능한 재산인 셈이다.

폐차 과정에서 나오는 고철 역시 모두 재활용된다. 차량 뼈대를 압축기로 눌러 한 덩어리로 만든 후, 고철로 판매되며 일부는 해외 제철소로도 보내진다. 차량 내 전선은 구리 추출을 위해 따로 분리되는데, 이 또한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품목이다. 작업장에서는 스프링이 남은 매트리스를 빗자루로, 남은 천은 걸레로 활용하기도 한다. 차량 하나를 해체하는 데 최소 2~3시간이 소요되며,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숙련도와 체력 모두가 요구되는 일이다.

이처럼 폐차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쓸만한 부품은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고, 버려지는 고철조차 하나도 헛되이 쓰이지 않는다. 한국의 폐차 및 중고 부품 수출 산업은 2023년에만 47.7억 달러, 한화 약 6.6조 원 수출액을 기록하며 자동차 산업 내 주요한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의 부품 수출도 점점 늘고 있으며, 2023년에는 전기차 관련 부품만 1만2천여 대 분량이 수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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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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