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먹었다간 치명적... 전문가들도 먹지 말라고 말리는 한국 나물

2025-04-0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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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약의 원료... 뿌리와 열매를 살충제로 사용한다는 식물

미국자리공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미국자리공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미국자리공이라는 귀화 식물이 있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장녹나물’이라 부르며 데쳐 나물로 먹는 식물이다. 미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귀화식물이다. 북아메리카의 들판에서 긴 여정을 거쳐 한국까지 왔다. 생태계 파괴자라는 무시무시한 오해를 받는 독초의 대명사, 소수 미식가의 입맛을 돋구는 나물. 희한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미국자리공에 대해 알아봤다.

미국자리공 / 아마존닷컴
미국자리공 / 아마존닷컴

미국자리공은 자리공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 동부와 중서부, 남부이고, 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에 귀화한 식물이다. 한국에는 1950년대 구호물품과 함께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1~1.5m, 때로는 3m까지 자라며, 적자색이 감도는 매끈한 줄기와 긴 타원형 잎을 가졌다. 6~9월이면 총상꽃차례에 붉은빛이 도는 흰 꽃이 촘촘히 피고, 9~10월에는 동글납작한 열매가 초록에서 검은색으로 익는다. 열매는 지름 7~8mm로, 육질이며 10개의 골이 있고, 안에 씨앗 하나가 들어 있다. 이 씨앗을 야생조류가 먹고 배설하며 퍼뜨린다. 미국자리공의 강한 번식력의 비결이다.

미국자리공은 생태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1993년 한 교수의 논문이 화제가 됐다. 울산과 여천 공단 주변 숲에서 이 식물이 급속히 번지며 자생식물을 밀어낸다는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자리공은 생태계 교란종으로 낙인찍혔고, 독성 열매가 토양을 산성화해 황무지로 만든다는 얘기까지 퍼졌다. 과장된 이야기였다. 미국자리공은 환경오염으로 다른 식물이 자라기 힘든 곳에서 군집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미국자리공이 원인이라기보단 미국자리공이 오염된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오해할 만하긴 하다. 제초제를 뿌려도 미국자리공은 쉽게 죽지 않는 것은 물론 뿌리가 깊게 박혀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 열매의 진한 즙은 바닥이나 옷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아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미국자리공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미국자리공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독성’은 미국자리공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잎, 줄기, 뿌리, 열매 모두에 피토락신과 같은 신경독이 들어 있다. 생열매를 먹으면 혀가 마비되고, 생즙에 닿으면 피부에 물집이 생긴다. 뿌리는 인삼이나 더덕처럼 생겼는데, 이를 오인해 먹고 중독되는 사고가 잦다. 2022년 충북에서 자리공 뿌리를 먹은 마을 주민 9명이 복통과 구토, 설사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으로 실려간 적이 있다.

미국자리공 뿌리. 독성이 들어 있어 매우 위험하다. 자리공은 사약을 만들 때 쓰였다. / '청산별곡TV' 유튜브
미국자리공 뿌리. 독성이 들어 있어 매우 위험하다. 자리공은 사약을 만들 때 쓰였다. / '청산별곡TV' 유튜브

얼마나 독성이 강한지 자리공류를 살충제나 사약으로 쓸 정도다. 한방에선 부리를 상륙이라고 부르며 이뇨제로 쓰기도 하는데, 반드시 독성을 제거하는 수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잘못 섭취하면 중추 신경 마비와 호흡 장애 등을 일으키고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방에서도 거의 쓰지 않는 약재다.

미국자리공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미국자리공 /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치명적인 독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자리공은 오랜 식용의 역사를 갖고 있다. 놀랍게도 미국자리공은 본고장 북아메리카에서 서부개척시대부터 먹어왔다. 미국 남부에서는 이를 ‘포크 샐릿’이라 부르며 삶아 샐러드로 먹거나 튀겨 먹는다. 인디애나주에서는 껍질을 벗긴 줄기를 튀김으로 즐기기도 한다. 어린잎과 줄기를 나물처럼 데쳐 먹는다. 데쳐도 독성이 있으므로 물을 갈아가며 세 번 이상 데쳐야 한다. 열매는 씨앗을 제거한 뒤 젤리나 파이로 만들고, 심지어 가짜 포도주 원료로 쓰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토종 자리공을 비슷하게 활용한 기록이 있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장녹나물’이라 불러 데쳐 나물로 먹거나 묵나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중독 사고가 빈번해 권장되진 않는다. 미국에서도 세 번 데쳤음에도 중독된 사례가 있는 만큼 조리법을 정확히 모르면 먹지 않는 게 낫다.

맛은 어떨까. 제대로 조리한 미국자리공 어린잎은 시금치나 아스파라거스와 비슷한 부드럽고 약간 쓰다. 줄기는 아삭하며, 튀기면 고소함이 더해진다. 하지만 맛을 논하기 전에 안전이 우선이다. 먹을 때는 반드시 어린 순만 사용하고, 성숙한 잎이나 뿌리는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미국자리공 어린잎은 나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독성 제거법이 까다로워 식재료로 추천되진 않는다. / '임억척이여사 (억척 임여사)' 유튜브 영상 캡처
미국자리공 어린잎은 나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독성 제거법이 까다로워 식재료로 추천되진 않는다. / '임억척이여사 (억척 임여사)' 유튜브 영상 캡처

조리 과정에서 물을 여러 번 갈아 독성을 최대한 제거해야 하며 생으로 먹는 건 금물이다. 어린잎이라도 임산부나 어린이는 먹지 않는 게 안전하다.

채취할 때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미국자리공은 도로변, 공단 주변, 황무지, 퇴비가 쌓인 곳에서 흔히 자란다. 이런 환경은 오염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 채취 전 장갑을 착용해 생즙이 피부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뿌리를 캐는 건 특히 위험하다. 뿌리는 독성이 강하고, 인삼이나 더덕과 혼동될 수 있으니 식별에 확신이 없으면 손대지 말아야 한다. 열매를 채취할 때도 즙이 옷이나 피부에 묻지 않도록 주의한다. 야생조류가 씨앗을 퍼뜨리므로 열매를 함부로 버리면 의도치 않게 번식을 돕게 된다. 채취 후에는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고 도구도 소독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문가의 조언 없이 야생에서 채취한 식물을 먹는 건 위험하는 걸 명심해야 한다.

미국자리공은 함부로 먹어선 안 된다. '미국자리공으로 초간단 천연 살충제 천연 농약 만들기'란 제목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을 정도다. / '약초 텃밭 TV' 유튜브 채널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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