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과는 사귀지도 자지도 마라" 사상 초유의 연애 금지령
2025-04-0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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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주재원과 그 가족에게 지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연애’ 문제로도 번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일(현지시각) 중국 주재 정부 기관 직원과 그 가족, 보안 인가를 받은 계약직 직원들이 중국 시민들과 ‘낭만적 또는 성적인 관계(any romantic or sexual relationships)’를 맺는 것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 같은 초유의 조치는 지난 1월 니콜라스 번스 전 주중 미국 대사가 퇴임 직전에 도입했다고 보도했다. 이 정책은 미국 대사관과 광저우, 상하이, 선양, 우한의 5개 영사관, 그리고 홍콩의 미국 영사관에 적용된다. 이는 냉전 이후 처음으로 시행된 전면적인 ‘비우호 정책(non-fraternization policy)’으로 알려졌다. 금지 대상은 미국 정부 직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보안 인가를 받은 계약직 직원까지 포함돼 기존에 있던 제한보다 훨씬 광범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이 정책은 직원들에게 1월에 구두와 전자 통신으로 전달됐지만 공식적으로 공개되진 않았다.
모든 중국 시민과의 낭만적이거나 성적인 관계를 금지하는 이 조치는 관계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AP통신은 “정책이 ‘낭만적 또는 성적인 관계’를 정확히 어떻게 정의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미 중국 시민과 관계를 맺고 있던 직원들은 ‘면제’를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면제가 거부될 경우 해당 직원은 관계를 끝내거나 중국 내 직책을 떠나야 한다. 위반자는 즉시 중국에서 추방된다. 이 규정은 중국 밖에 주재하는 미국 직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이 조치가 “냉전 시기 소련과 중국에 적용됐던 엄격한 규제를 떠올리게 한다”라면서 1987년 모스크바에서 미국 해병이 소련 스파이에게 유혹당한 사건 이후 유사한 제한이 있었지만 1991년 소련 붕괴 후 완화됐다고 전했다.
워싱턴타임스는 의회 일부 의원이 번스 전 대사에게 기존 규제가 충분히 엄격하지 않다고 압박을 가한 것이 정책 확대의 계기가 됐다고 보도했다. AP통신도 2명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여름 의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며 논의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의회 내 ‘중국 공산당에 관한 하원 특별위원회’는 이에 대한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정책 도입이 정치적 압력에 따른 과잉 대응인지, 실제 보안 위협에 기반한 것인지 논쟁이 일고 있다. AFP통신은 “중국이 소위 ‘미인계(honeypot)’ 전술을 통해 미국 비밀을 빼내고 있다는 우려가 배경에 있다”고 보도하며, 미국 외교관과 정보 전문가들이 중국 정보기관이 매력적인 인물을 활용해 접근한다고 경고해 왔다고 전했다.
논란의 또 다른 핵심은 정책의 실효성과 형평성이다. LA타임스는 “미국 직원들은 중국에 도착하기 전 중국 정보기관이 외교관을 유혹한 사례를 다룬 보안 브리핑을 받는다”며 이런 위협이 실재한다고 봤다. 하지만 워싱턴타임스는 “이런 전면 금지가 실제로 스파이 활동을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다른 국가에선 미국 외교관이 현지인과 데이트하거나 결혼하는 게 흔한데, 유독 중국에만 적용된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미국 정부의 비우호 정책이 다른 나라에선 어떤지 알려지지 않았고, 기밀로 분류돼 있어 중국만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이 조치가 미중 간 갈등을 과장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긴장을 높이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 측 반응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이 금지에 대해 “미국에 물어보는 게 더 적절하다”는 팩스 성명을 보내 논평을 피했다. 하지만 중국도 해외 주재 직원에 대해 비슷한 제한을 강화하고 있다. AFP통신은 “중국은 배우자가 외국 시민권을 취득한 공무원의 승진을 금지하고, 외교관이 한 나라에 장기 체류하는 걸 제한한다”며 “중국 외교부와 군, 경찰은 외국인과의 성적·낭만적 관계를 금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호 규제가 양국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당 정책은 미중 관계의 악화 속에서 나왔다. 최근 무역, 기술, 지정학적 경쟁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된 상황과 맞물려 있다. 뉴욕타임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인 1월에 시행된 점이 주목된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 노선과 연관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워싱턴타임스는 “중국이 미국 외교관을 상시 감시하며, 수십 명의 국가안보 요원이 한 명의 외교관을 추적할 수 있다”는 정보 당국의 경고를 인용하며, 이런 환경이 정책의 근거가 됐을 거라고 봤다. LA타임스는 “정책이 내부적으로만 전달되고 공개되지 않은 점이 의문을 낳고 있다”며 투명성 부족이 추가 논란을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