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파면' 헌재 결정문, 이례적으로 결론이 길었던 이유가 있었다
2025-04-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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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 작성 후 재판관들 뜻 반영해 추가 작성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결정문 중 '결론' 부분이 초안 작성 이후 헌법재판관들의 뜻을 반영해 추가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연합뉴스가 6일 보도했다.
지난 4일 윤 전 대통령을 파면했을 때 헌재가 발표한 결정문은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헌법 전문에서 따온 '대한국민'이라는 표현으로 마무리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재판관들은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 전원일치로 합의한 뒤 원래 작성했던 결정문에 결론 부분을 덧붙이기로 했고,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 태스크포스(TF) 소속 헌법연구관에게 추가 작성을 지시했다.
결정문 중 사실관계 인정, 법률 위반에 대한 검토, 중대성 판단 등의 논리는 이미 완성된 상태였지만, 재판관들은 그 외의 내용을 담기 위해 별도의 결론을 작성하도록 했다. 이후 재판관들은 초안을 여러 차례 검토해 국민에게 공개된 결정문의 마지막 5쪽에 해당하는 결론 부분을 완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관들은 선고일을 발표한 직후 이틀 동안 종일 평의를 진행했고, 선고 당일인 오전까지도 최종 문구를 꼼꼼히 살폈다.
통상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문 결론은 3~4줄 정도로 구성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서 극심한 갈등과 대립이 벌어지고, 일부에서는 '심리적 내전'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단순한 법리 나열을 넘어, 헌재가 통합과 화해의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요구가 내부와 외부에서 제기됐고, 재판관들도 이 같은 판단에 따라 이례적으로 결론을 길게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 내부에서는 이번 결정문이 단순한 판결문이 아니라 사회에 보내는 헌법적 메시지라는 인식이 강했고, 이에 따라 재판관들 사이에서 '결론에 의미를 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실제로 결론의 시작은 헌법 제1조 1항 문장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구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헌법 전문에서 따온 “대한국민”이라는 표현으로 끝을 맺었다. 앞뒤가 헌법의 핵심 문장으로 연결되는 구조, 즉 수미상관(首尾相關) 형식이 적용된 셈이다.
결론에는 헌법 1조 1항을 인용한 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는 대전제가 등장한다. 이는 과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때 헌재가 선언한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다.
이후 헌재는 네 단계로 논리를 전개했다. 먼저 윤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야당의 예산 삭감, 반복된 탄핵 시도로 인해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돼 가고 있다는 인식”을 가졌을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어느 일방에게만 돌릴 수는 없으며, 문제 해결 역시 민주주의 원칙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통해 국회와의 대립을 군사력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계엄 외에도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헌법적 수단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헌법 개정안 발의, 국민투표 실시, 법률안 제출, 위헌정당해산 제소 등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가능한 절차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해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헌재는 대통령직 파면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정문의 마지막 문장 역시 주목을 끌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배해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는 문구로 끝맺었다.
마지막에 등장한 ‘대한국민’이라는 표현은 평소 일반적인 용어로는 사용되지 않지만, 헌법 전문에 등장하는 공식 용어다. 헌재 내부에서도 이 표현이 다소 어색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논의 끝에 헌법 전문의 원문을 그대로 따르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낭독한 결정문에는 7200자에 달하는 선고 요지가 포함됐다. ‘민주’라는 단어가 총 9번, ‘국민’이라는 단어는 13번 등장했다. 재판관들은 혼란과 분열이 격심할수록 헌법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원칙 아래 이번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