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시력'…새로운 길 열렸다
2025-03-3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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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류 망막의 비밀, 인간 시력 회복의 열쇠
프록스원 단백질 제거로 열린 시력 재생의 방법
시력 회복의 새 길을 한국 연구팀이 열었다.
시력은 한번 망가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손상된 망막 신경을 재생시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법을 개발했다. 김진우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손상된 망막 자체를 재생시키는 물질을 개발했으며, 이는 망막질환의 종류와 관계없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망막은 눈을 감싸는 얇은 막으로, 손상될 경우 시력이 저하되거나 사물이 왜곡되어 보일 수 있다. 한국망막학회에 따르면 대표적인 망막질환으로 망막박리, 당뇨망막병증, 망막정맥폐쇄, 황반변성이 있으며, 이들 질환이 심화될 경우 실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존 망막질환 치료제들은 주로 병증의 진행을 억제하는 역할에 그쳤지만, 이미 손상된 시력을 되돌릴 수 있는 치료법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 성과는 포유류 망막에서 신경 재생을 유도하고 시력을 회복시킨 세계 최초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어류와 포유류의 망막 차이에 주목하면서 시작됐다. 어류의 망막에는 ‘뮬러글리아’라는 세포가 존재하며, 이 세포는 손상된 망막을 재생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간의 망막에도 동일한 세포가 존재하지만, 재생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의 원인이 ‘프록스원(PROX1)’이라는 단백질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프록스원 단백질은 줄기세포를 다양한 세포로 분화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세포의 재생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망막 내에서 프록스원 단백질이 축적되면서 망막 신경 재생이 막히는 현상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프록스원 단백질에 결합하는 항체를 발굴해 생쥐 실험을 진행했다. 이 항체를 생쥐에게 투여한 결과, 망막 신경세포가 재생되었으며, 시력 회복 효과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이 확인됐다. 항체가 프록스원 단백질이 세포 내로 축적되기 전에 이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번 연구는 김 교수의 연구실 벤처기업인 ‘셀리아즈’에서 개발한 항체 물질을 기반으로 진행되었으며, 연구진은 2028년 임상시험을 목표로 치료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연구팀은 개 실험을 준비 중이며, 이후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를 통해 치료제의 실용화를 앞당길 계획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4대 망막질환자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2023년 기준 110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이번 연구가 실명 위험에 놓인 환자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은정 박사는 “여러 동물 실험을 통해 시력 회복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한 후, 망막질환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며 “현재까지 적절한 치료제가 없어 실명의 위협에 노출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올해 안으로 개 실험을 진행하고, 이후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치료 형태로 개발을 이어갈 계획”이라며 “이번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실명 예방 및 시력 회복 치료제의 상용화를 앞당기겠다”고 전했다.
망막질환으로 인한 시력 상실은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는 문제다. 이번 연구 성과가 실용화된다면, 기존 치료제로는 회복이 어려웠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