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없어서 못 먹는데…해외에선 골칫덩이 취급받는 해산물
2025-03-2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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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전 세계 수입 1위 달리고 있는 해산물
주로 멕시코와 페루, 칠레 연안에 서식하는 해양 생물
영화관에서 즐겨 먹는 버터구이 오징어, 술자리의 단골 안주 진미채, 길거리에서 파는 문어꼬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 모든 것들의 원재료는 '바다의 붉은 악마'라고 불리는 괴팍한 성격을 지닌 해산물이다.
치악력이 510kg에 달해 상어보다 더 센 힘으로 먹이를 잡아먹고, 다이버들을 공격해 얼굴을 물어뜯은 사례도 있는 이 무시무시한 생물.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지만 정작 원산지에선 '처치곤란' 취급을 받는 이 해산물의 정체는 바로 '훔볼트오징어(Humbolt Squid)'다.

영화관 버터구이 오징어부터 짬뽕 속 하얀 고기까지
훔볼트오징어는 태평양 동부 해역, 주로 멕시코와 페루, 칠레 연안에 서식하는 대형 오징어다. 이름은 남아메리카 연안에서 태평양 북동부로 흐르는 '훔볼트 해류'를 따라 분포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점보 스퀴드', '점보 플라잉 스퀴드'로도 불리며, 사나운 성질 때문에 '붉은 악마(Diablo rojo)'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다.
한국인들은 이 오징어를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즐겨 먹는다. 우리가 영화관에서 즐기는 버터구이 오징어, 안주로 인기 있는 진미채, 길거리에서 파는 문어꼬치(가문어) 등이 모두 이 훔볼트오징어로 만들어진다. 심지어 중국집 짬뽕에 동전 크기로 들어가는 하얀 고기도 대부분 훔볼트오징어다.
훔볼트오징어는 크기가 약 2m에 달하며, 몸무게는 45kg 정도로 성인 여성과 비슷할 정도로 큰 해양 생물이다. 수명은 1년에서 4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순간 속력은 무려 72km/h에 달한다. 주로 수심 200~700m 사이에서 활동한다.

너무 사나워서...골칫덩이로 전락한 '바다의 포식자' 훔볼트오징어
훔볼트오징어가 해외에서 '골칫덩이'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 사나운 성질과 위험성 때문이다. 여느 오징어와 달리 흡판을 따라 날카로운 이빨 같은 갈고리가 늘어서 있는 사나운 포식자다. 이 갈고리는 회전식 가동 구조로 되어 있어 한 번 먹이를 파고들면 놓치지 않는다.
더 무서운 것은 가공할 만한 치악력이다. 훔볼트오징어의 치악력은 510kg 이상으로, 코끼리 뼈도 씹어먹는다는 하이에나보다 높은 수준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악력계가 이빨에 찢겨버릴 정도였다. 다이버나 낚시꾼들에 대한 공격 사례도 여럿 확인됐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난폭해지는 것은 먹이를 사냥하거나 위기를 느꼈을 때뿐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공격성보다 무관심이나 호기심을 나타내는 경향이 더 크다고 한다. 또한 주요 사냥 시간 및 장소는 심야의 수심 130~200m 부근에 한정되어 있어, 다이버나 낚시꾼 외에는 이들과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특이한 점으로는 피부의 색깔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개체 간에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추정돼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능도 상당히 높아 사촌뻘인 문어만큼이나 머리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해외에선 처치곤란, 한국에선 맛의 보고...전 세계 중 수입 1위
훔볼트오징어가 주로 잡히는 멕시코, 페루, 칠레 등지에서는 소비율이 높지 않아 처치곤란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강한 신맛과 질긴 식감, 후가공의 필요성 등으로 찾는 이가 많지 않다. 실제 훔볼트오징어 살에는 염화암모늄이 포함되어 있어 특유의 암모니아 향이 나고 산미가 매우 강하다.
게다가 일반 오징어에 비해 질기기 때문에 특별한 조리법이 필요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신맛을 제거하는 후가공 과정이 필요해 개인이 구매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훔볼트오징어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까다로운 특성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가공기술과 요리법을 개발해 대중적인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신맛을 빼내는 가공법이 개발되면서 다양한 식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질기고 맛없는 훔볼트오징어의 변신, 가공의 힘 (ft. 대왕오징어 아님)
훔볼트오징어는 다리가 10개로, 2개의 긴 다리와 8개의 짧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긴 다리를 떼어내 다리가 8개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은 문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는 일반 오징어보다 식감이 질기고 맛이 없어 그냥 먹기가 어려웠다. 냉동상태로 수입했다가 해동해 여러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맛을 내기 위해 강한 조미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일반 오징어는 끓이면 퍽퍽한 반면, 훔볼트오징어는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라 다양한 요리에 활용되면서 차츰 가공법도 발전해갔다.
EBS 다큐멘터리 '극한직업'에서는 페루의 훔볼트오징어 잡이 어부들의 작업 현장을 소개했는데, 상당히 고된 작업이라고 한다. 오징어는 잡자마자 상하지 않게 내장을 바로 제거하고, 내장은 다른 오징어의 미끼로 사용한다. 성격이 사나운 녀석들은 잡히는 와중에 먹물을 내뿜는데, 피부에 닿으면 염증이 생기고 가려워 묻는 즉시 재빨리 씻어내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징어의 입은 어부들이 간식으로 먹는데, 닭고기 맛이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사람들이 훔볼트오징어와 대왕오징어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두 종은 엄연히 다르다. 훔볼트오징어는 빨간오징어과에, 대왕오징어는 대왕오징어과에 속한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식용 가능 여부다. 훔볼트 오징어는 가공을 통해 식용이 가능하지만, 대왕오징어는 고기가 너무 맛이 없어 식용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훔볼트오징어의 효능은?
훔볼트오징어를 포함한 오징어류는 다양한 건강상의 이점을 제공한다. 단백질이 풍부하여 근육 강화와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며, 타우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고혈압 및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을 준다.
또한 DHA와 EPA가 풍부하여 두뇌 발달과 치매 예방에 좋고, 타우린과 아르기닌 성분이 피로 회복과 체력 증진에 효과적이다. 오징어에 함유된 수산화알루미늄 성분은 위궤양과 위염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오징어에는 콜레스테롤이 많지만, 동시에 타우린도 풍부하여 체내 콜레스테롤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고혈압이나 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은 과식을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