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 가격이 8000원... '조개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한국 조개
2025-03-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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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맛이 영 딴판이라는 조개의 정체

워낙 비싸고 맛있어서 조개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조개가 있다. 개조개. ‘개’라는 글자가 붙은 식재료는 보통 맛이 없거나 식용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개살구, 개복숭아, 개머루가 대표적이다. 개조개는 다르다. 한 번이라도 맛보면 단숨에 빠져들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개조개에 대해 알아봤다.
개조개는 이매패강에 속하는 대형 조개다. 한국에서는 백합과 혼동되곤 하는데, 이는 일상에서 ‘백합’이라는 이름이 포괄적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조개와 백합은 다르다. 개조개는 긴 주둥이 같은 관이 껍질 밖으로 튀어나와 독특한 외형을 자랑한다. 반면 백합, 특히 한국에서 대합이라 부르는 북방백합(Mercenaria mercenaria)은 둥글고 단단한 껍질에 관이 없고 살이 껍질 안에 꽉 차 있다. 개조개는 무게가 1kg을 넘는 것까지 있어 크기부터 백합과 차별화된다.
서식지는 주로 깊은 바다다.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정보에 따르면 조간대에서 수심 40m의 모래, 진흙, 자갈 바닥에 서식한다. 한국 전 연안, 세계적으로는 일본, 중국, 인도양 등에 분포한다. 수산 식량 자원으로 증·양식을 위한 연구 가치가 있다.
백합은 얕은 바다나 갯벌에서도 발견되지만, 개조개는 이런 얕은 곳에서는 살지 않는다. 까다로운 서식 조건 때문에 자연산 개조개는 양이 적고 희소성이 높다. 그래서 가격도 하늘을 찌른다. 인천이나 충남 태안의 바다에선 물이 빠지면 해루질로도 채취할 수 있다.
개조개의 특징은 생김새와 식감에서 두드러진다. 껍질은 갈색이나 회색빛을 띠며 단단하고, 긴 관은 최대 1m까지 자랄 수 있다. 살은 하얗고 두툼하다. 맛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럽다. 백합보다 단맛이 강하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퍼진다. 영양 면에선 타우린, 비타민 B12, 철분이 풍부해 피로 회복과 빈혈 예방에 좋다. 백합이 감칠맛으로 유명하다면, 개조개는 쫄깃한 식감과 깊은 단맛으로 차별화된다. 이런 매력 덕에 ‘바다의 보물’로 불린다.
개조개는 원래 자연산으로만 채취됐다. 하지만 수요가 늘면서 양식이 시도됐고, 한국에선 지난해 인공종자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다만 깊은 바다와 특정 조건이 필요해 대량 양식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값이 비싸다. 성인 주먹처럼 큰 건 수산시장에서 개당 8000원쯤에 팔린다.
구워 먹으면 맛있다. 절반으로 갈라 초고추장을 곁들여 구우면 육즙이 끝내주는 개조개구이를 맛볼 수 있다. 통영에선 개조개 유곽이란 요리도 있다. 조갯살을 다져 여러 채소와 된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을 함께 버무려 껍데기 안에 채운 후 구워 먹는 요리다.
회로도 먹을 수 있다. 개조개 살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양파 등 여러 채소와 함께 양념장에 버무리면 근사한 술안주를 만들 수 있다.
국물 요리도 인기 있다. 찬물에 넣고 끓이다가 입이 벌어지면 대파와 소금을 넣어 시원한 맛을 낸다. 샤브샤브로 먹어도 맛있다.
일본에서는 초밥 재료로 사용되며, 중국에서는 마늘과 생강을 넣고 볶아 깊은 풍미를 더한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샐러드나 스튜로 요리한다.

맛은 어떨까? 개조개는 단맛이 강하고 담백하다.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과 깊은 풍미가 퍼진다. 국물은 시원하고 살은 쫄깃해서 한 번 먹으면 잊기 어렵다. 조개계의 에르메스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먹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 해감이 안 되면 모래가 씹혀 맛을 망친다. 최소 2일 정도 바닷물에 담가 해감해야 한다. 집에서는 흐르는 물에 껍질과 관을 솔로 문질러 씻고, 소금물에 몇 시간 담갔다가 요리한다. 너무 오래 데치면 살이 질겨지니 살짝 익히는 게 좋다. 백합도 해감이 중요하지만 개조개는 관 때문에 더 신경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