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 값 5분의 1이었는데... 지금은 전복보다 훨씬 비싼 한국 해산물
2025-03-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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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돈 주고도 쉽게 사 먹을 수 없는 해산물

2000년대 초만 해도 전복보다 훨씬 쌌지만 지금은 되레 전복보다 2배가량 비싸진 해산물이 있다. 오분자기. 과거엔 전복보다 훨씬 저렴해 제주도민의 든든한 식재료였던 오분자기가 지금은 전복을 훌쩍 뛰어넘는 값비싼 진미로 변신한 사연을 들여다본다.
오분자기는 전복과(Haliotidae)에 속하는 해산물이다. 전복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은 까닭에 '새끼 전복'이란 오해를 받는 전복의 사촌쯤 되는 동물이다.
크기는 최대 8cm 정도로 전복보다 작다. 제주도 방언으론 ‘떡조개’로 불린다. 아열대성인 오분자기는 수온 19~28도, 수심 5~10m 내외의 얕은 바다에서 서식한다. 주로 제주도 연안의 돌이나 바위 틈새에 붙어 해조류를 먹으며 천천히 자란다. 성장 속도는 느려서 1년이면 1.52cm, 2년쯤 지나야 4~5cm에 이른다.
오분자기를 요리의 대표 주자는 제주 향토 음식인 오분자기 뚝배기다. 구수하고 시원한 된장 국물에 오분자기를 넣고 끓이면 탱탱하고 쫀득한 식감이 살아난다. 손으로 껍데기에서 살을 떼어내 한입 먹으면 바다 내음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 외에도 구워 먹어도 되고 된장찌개에 넣어도 되며 죽의 재료로도 쓰인다. 내장으로는 ‘게웃’이란 젓갈을 담가 먹기도 한다. 제주에선 한때 어린이집 간식으로 전복죽이 나올 때 오분자기가 함께 올라가기도 했을 만큼 일상적인 식재료였다.
오분자기 가격 변천사는 놀랍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전복이 오분자기보다 5배쯤 비쌌다. 당시 오분자기 뚝배기는 비싼 전복을 대신하는 서민 음식으로 사랑받았다. 2010년대까진 제주 여행객이라면 오분자기 뚝배기를 필수 코스로 즐겼다. 하지만 신세가 바뀌었다. 오분자기 뚝배기는 2만 2000원이라면 전복 뚝배기는 1만 3000원에 팔린다. 그만큼 오분자기 가격이 많이 올랐다. 한때 1kg에 1만~2만원대였던 오분자기는 이제는 8만원을 줘야 겨우 살 수 있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오분자기가 귀해졌다. 과거엔 전복이 귀한 진상품이었고 오분자기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면, 이제 오분자기가 전복을 제치고 귀하신 몸이 된 셈이다.
가격 역전의 배경엔 오분자기 채취량 급감이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제주지역 오분자기 채취량은 1995년 159t에서 2000년 35t, 2010년 27t으로 줄더니 2011년부터 최근까지 연간 3t 내외로 떨어졌다. 이조차 제주해양수산연구원이 자원 회복을 위해 방류하는 종자가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제주 바다에서 오분자기가 사라졌다고 봐야 하는 게 맞다.
오분자기는 양식이 어렵다. 제주는 태풍 영향으로 가두리 양식이 불가능하고, 실내 양식은 느린 성장 속도 탓에 경제성이 낮다. 반면 전복은 완도 일대에서 가두리와 실내 양식이 활발해 공급이 안정적이다. 자연산만 존재하는 오분자기는 희소성이 높아졌고, 그 결과 값이 전복을 훨씬 넘어섰다.
오분자기와 전복을 구분하는 방법도 알아두면 유용하다. 겉모습이 비슷해 혼동되기 쉽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전복 껍데기는 초록빛이 돌고 울퉁불퉁하며, 호흡공은 4~5개로 위로 돌출돼 있다. 반면 오분자기 껍데기는 다홍빛이 돌고 매끈한 편이며, 호흡공은 7~8개로 평평하다. 크기도 오분자기는 최대 8cm지만 전복은 10cm 이상으로 자란다. 서식지도 다르다. 전복은 주로 깊은 바다에서 잡히고 오분자기는 제주 연안 얕은 바다에서 산다. 이런 차이를 알면 식당에서 오분자기인지 전복인지 구별할 수 있다.
오분자기가 사라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전문가들은 갯녹음 현상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갯녹음, 즉 백화현상은 바닷물 속 탄산칼슘이 석출돼 바위나 해저를 하얗게 덮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오분자기의 먹이인 해조류가 줄고 바위에 뿌리내릴 공간도 사라진다. 실제 제주 해조류 채취량이 급감했다. 해녀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우뭇가사리는 2017년 2421t에서 2023년 194t까지 줄었다. 갯녹음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석회 유입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이 의심된다. 온난화로 이산화탄소 용해도가 낮아지며 탄산칼슘이 석출되기 때문이다. 수온과 염분의 급변도 오분자기를 위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