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길에게 쓰레기라고 말하며 인연 끊은 친구가 등판해 입장 밝혔다
2025-03-2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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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친구 “내가 전한길에게 쓰레기라고 말한 이유는...”
김 씨는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먼저 전 씨와의 오랜 우정을 상세히 털어놨다. 그는 "전한길이 대구에서 파산을 하고 나한테 왔을 때 '자기가 빈털터리가 되자 가장 친한 친구도 자신을 박대했다'고 했다"라며 "나도 파산 직전이었지만 그를 우리집 원룸으로 데려와 그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재워주고 먹여줬다"고 했다. 그는 "(전한길이) 다시 일어서겠다고 대구에 내려갔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다시 서울로 올라왔을 때, 그때는 나도 이미 파산을 했지만 그를 내 옥탑방에 데려와 가장 따뜻한 침낭을 아낌없이 그에게 주고 나는 얼음짱같은 바닥에서 잤다"고 밝혔다. 김 씨는 "힘들고 우울해 할 때면, 여행을 좋아하는 그를 데리고 산정호수며 월미도며 서울 근교 곳곳을 다녔다"고 했다.
김 씨는 전 씨가 재기하려는 과정에서도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먼저 파산에서 벗어난 내가 아버지와 가족들을 데려와 아파트로 이전하게 됐을 때, 함께 갈 수 없는 그를 목동의 고시원에 방을 마련해줬다"라며 "그가 재기를 하겠다고, 돈이 필요하다고 이리저리 재력가를 만나러 다닐 때, 나는 항상 그를 데리고 함께 가서 같이 구걸을 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입시 기업으로 가장 큰 M사 회장인 S이사를 만났을 때, 나는 내 마지막 남은 솔루션인 합격예측 서비스를 드릴 테니 그 값으로 제발 전한길에게 재기할 자금을 빌려달라고 했다"고 적었다. 또 "미술학원으로 가장 큰 프랜차이즈를 가지고 있는 회장, 강동구에서 가장 큰 학원을 하는 원장, 교육기업으로 지금은 코스닥에 상장된 회사의 대표이사 등 내 인맥을 총 동원해 전한길과의 만남을 주선했고, 그들 앞에서 내가 먼저 무릎을 꿇고 제발 전한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내가 파산을 할 때도 손을 내밀지 않았던 그들이었는데, 오로지 전한길의 재기를 위해서 빌고 또 빌었다"라며 당시 한 원장이 "전한길에게 ‘앞으로 이 친구를 꼭 지켜’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전 씨의 개인적 위기에서도 곁을 지켰다고 했다. 그는 "그의 와이프마저 대구에 남겨두고 서울로 올라와 마지막 파산의 끝에서 극단 선택을 하려 할 때도 나는 그의 옆에서 밤새 뜬눈으로 그를 잡고 놓아주지 않고 지켰다"고 썼다. 그러면서 "오늘 신문에서 전한길이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자신을 쓰레기라고 한다’는 기사를 봤다"고 글을 이어갔다.
김 씨는 전 씨와 갈등한 이유에 대해 "나는 친구가 정치적 색깔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로 친구끼리 의가 상한다면 그건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그래서 전한길이 윤석열을 옹호할 때도,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도, 그에게 ‘마음 상하지 마. 건강부터 챙겨’라고만 했다. 내 마음은 타들어갔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나와 정치적 색깔이 다르다고 친구를 쓰레기라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씨는 전 씨의 광주 방문이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 씨는 "그가 광주에 내려가서 계엄령을 옹호하겠다는 기사를 보고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라며 "형제를 잃고 부모를 잃은 그들 앞에 가서 ‘계엄령이 계몽령이다’라고 하는 건 아주 악랄한 조롱이다"라고 썼다. 그는 전 씨에게 "‘광주에 가지 마. 가려면 가서 사죄해. 네가 광주에 가서 그 사람들에게 계엄령을 옹호하는 말을 하는 건, 세월호 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단식을 할 때, 바로 그 옆에서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며 히히덕거리던 일베X과 다를 게 없다. 네가 간다면 정말 쓰레기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고, 페이스북에도 그 글을 올렸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이에 대한 전 씨의 반응도 공개했다. 김 씨는 "그러자 그가 페북에 올린 글을 내려달라며 나한테 친구로서는 하지 못할 말을 했다"라며 "그가 한 말은 밝히지 않겠다. 아마도 그가 십년 후 쯤 후회할 말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인연을 끊자 쓰레기야’라고 (전한길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나는 가끔 ‘3인조 강도살인사건’ 같은 기사를 보면서 참 불쌍한 인생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들이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세 명 중 어떻게 그걸 말리는 친구 한 명 없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라며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그걸 잘못됐다 말하는 게 친구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전한길에게 쓰레기라고 한 건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가 아니다. 그가 쓰레기 같은 짓을 계속하고 있기에 친구로서 반드시 말해줘야 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전 씨에게 직접 메시지도 남겼다. 그는 "아마도 전한길은 내 페북을 지금도 보고 있을 거다"라며 "전한길아. 네게 쓰레기라는 소리를 한 것보다 내가 너한테 가장 큰 욕을 한 건 ‘내 장례식에 오지 마’라는 말이다"라고 썼다. 이어 "내가 전두환을 싫어하는 건, 학살자여서이기도 하지만 죽을 때까지 반성하지 않고 죽었기 때문이다. 너도 반성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서도 너 볼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과거 약속을 회상했다. 김 씨는 "전한길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계엄 전 어느날이었다"라며 "오래간만에 만나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국회의원 선거 때 겪은 이야기를 해 줬다"고 썼다. 그는 "어떤 지인이 입시설명회에 초대한다고 해서 가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어느 후보 선거 유세의 일환으로 나를 초청한 거였다. 그래서 바로 거절했다"라며 "그러자 전한길이 ‘잘했어. 우리 앞으로 정당정치 근처에도 가지 말자. 나중에 늙으면 우리 둘이 서로 가까운 근방에 살면서 정말 행복하게 노후를 꾸려가자’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래서 나도 그러자 하고 다짐 또 다짐했다"라며 "그런데, 참… 영국속담이 맞다. ‘신은 좋은 계획을 질투한다’"라고 썼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다. 정처없네"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김씨 글 전문>
1
전한길이 대구에서 파산을 하고 저에게 왔을 때, 자기가 빈털터리가 되자 가장 친한 친구도 자신을 박대했다고 했습니다. 저도 파산 직전이었지만 그를 우리집 원룸으로 데려와 그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재워주고 먹여주고 했습니다.
다시 일어서겠다고 대구에 내려갔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이 다시 서울로 올라왔을 때, 그때는 저도 이미 파산을 했지만 그를 저의 옥탑방에 데려와 가장 따뜻한 침낭을 아낌없이 그에게 주고 저는 얼음짱같은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힘들고 우울해 할 때면, 여행을 좋아하는 그를 데리고 산정호수며 월미도며 서울 근교 곳곳을 다녔습니다.
먼저 파산에서 벗어난 제가 아버지와 가족들을 데려와 아파트로 이전하게 되었을 때, 함께 갈 수 없는 그를 목동의 고시원에 방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가 재기를 하겠다고, 돈이 필요하다고 이리저리 재력가를 만나러 다닐 때, 저는 항상 그를 데리고 함께 가서 함께 구걸을 하다시피 했습니다. 입시 기업으로 가장 큰 M사 회장인 S이사를 만났을 때, 저는 저의 마지막 남은 솔루션인 합격예측 서비스를 드릴테니 그 값으로 제발 한길이에게 재기할 자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미술학원으로 가장 큰 프랜차이를 가지고 있는 회장, 강동구에서 가장 큰 학원을 하는 원장, 교육기업으로 지금은 코스닥에 상장된 회사의 대표이사. 저의 인맥을 총 동원하여 한길이와의 만남을 주선하였고, 그들 앞에서 제가 먼저 무릎을 꿇고 제발 한길이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파산을 할 때도 손을 내밀지 않았던 그들이었는데, 오로지 한길이의 재기를 위해서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때 한 원장은 제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길이에게 “앞으로 이 친구를 꼭 지켜라”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와이프마저도 대구에 남겨두고 서울로 올라와 마지막 파산의 끝에서 자살을 선택하려 할 때도 저는 그의 옆에서 밤새 뜬눈으로 그를 잡고 놓아주지 않고 지켰습니다.
2
오늘 신문에서 전한길이 “가장 친한 친한 친구조차도 자신을 쓰레기라고 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저는 친구가 정치적 색깔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로 친구끼리 의가 상한다면 그건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길이가 윤석열을 옹호할 때도,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도, 그에게 “마음 상하지 마라, 건강부터 챙겨라”라고만 했습니다 제 마음은 타들어갔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와 정치적 색깔이 다르다고 친구를 쓰레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광주에 내려가서 계엄령을 옹호하겠다는 기사를 보고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형제를 잃고 부모를 잃은 그들 앞에 가서 “계엄령이 계몽령이다”라고 하는 것은 아주 악랄한 조롱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광주에 가지 마라. 가려면 가서 사죄해라. 너가 광주에 가서 그 사람들에게 계엄령을 옹호하는 말을 하는 것은, 세월호 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단식을 할 때, 바로 그 옆에서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며 히히덕거리던 일베놈과 다를 것이 없다. 너가 간다면 정말 쓰레기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고, 페북에도 그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그가 페북에 올린 글을 내려달라며 저에게 친구로서는 하지 못할 말을 했습니다.(그가 한 말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아마도 그가 십년 후 쯤 후회할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인연을 끊자 쓰레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끔 ‘3인조 강도살인사건’과 같은 기사를 보면서, 참 불쌍한 인생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들이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세명 중 어떻게 그걸 말리는 친구 한명 없나 하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그걸 잘못되었다 말하는 것이 친구입니다. 제가 전한길에게 쓰레기라고 한 것은,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가 쓰레기같은 짓을 계속 하고 있기에 친구로서 반드시 말해줘야 할 말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마도 한길이는 제 페북을 지금도 보고 있을 것입니다.
한길아. 너가 네게 쓰레기라는 소리를 들은 것보다 내가 너에게 가장 큰 욕을 한 것은 “내 장례식에 오지 마라”는 말이다. 내가 전두환을 싫어하는 것은, 학살자여서이기도 하지만, 죽을 때까지 반성하지도 않고 죽은 것이다. 너도 반성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서도 너 볼 일은 없다.
ps. 한길이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계엄 전 어느날이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나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국회의원 선거 때 겪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어떤 지인이 입시설명회에 초대한다고 해서 가려고 했는데, 알고보니 어느 후보 선거 유세의 일환으로 저를 초청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거절했다고. 그러자 한길이가 “잘했어요. 우리 앞으로 정당정치 근처에도 가지 맙시다. 나중에 늙으면 우리 둘이 서로 가까운 근방에 살면서 정말 행복하게 노후를 꾸려갑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러마 하고 다짐 또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영국속담이 맞습니다. “신은 좋은 계획을 질투한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처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