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하면 떠오르는 물고기… 오직 한국에서만 산다는 대표적 '생선'
2025-03-24 16:14
add remove print link
생태계 비밀 요원, 물속의 카멜레온
옛이야기 속 인물 '임꺽정' 이름과 어딘가 닮은 듯한 물고기 하나가 있다.
이름부터 강렬한 이 생선의 정체는 바로 '꺽지'다. '꺽저기' '꺽저구' 등으로도 불리는 꺽지는 대한민국에서만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대표적인 고유종 민물고기다. 꺽지는 현재도 우리나라 대부분 하천과 강 중상류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한국 생태계의 독특한 구성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꺽지는 몸길이 약 15~20cm로 자라며, 옆으로 납작하고 체고가 높아 방추형 몸매를 지녔다. 회갈색 몸에 청록색 무늬가 아가미덮개 뒤쪽에 나타나며, 주변 환경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몸의 색을 바꾸는 능력도 지닌다. 이른바 '물속의 카멜레온'이라 불릴 정도로 색 변화가 극적이다. 외형은 쏘가리를 작게 줄여놓은 듯해 '미니 쏘가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꺽지는 원래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서쪽 수계에만 분포했지만, 사람의 손에 의해 동쪽 수계에도 옮겨져 정착하게 됐다. 이런 인위적 확산은 일견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생태계 교란의 한 예다. 낙동강에 이식된 끄리가 폭발적으로 번식해 토착종을 위협한 사례처럼, 꺽지 역시 본래 서식지가 아닌 지역에서 생태계 균형을 흔들 수 있다.
꺽지는 단순한 민물고기를 넘어선다. 임꺽정의 전설을 품고 있고, 한국 자연에만 터를 잡은 고유한 생명체이며, 생태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습성을 지닌다. 사람과 함께 살아온 시간 속에 전설이 되고, 식탁 위에서는 별미가 되며, 수조 안에서는 눈길을 사로잡는 존재로 살아간다.
임꺽정과의 연결고리는 전설 속에서 등장한다.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는 관군에게 쫓기던 임꺽정이 꺽지로 변해 도망쳤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름에 '꺽' 자가 들어간 데서 비롯된 해학 섞인 전설일 수 있으나, 지역색 짙은 민간 전승 속에서 꺽지의 존재감이 뚜렷했음을 방증한다. 임꺽정이 화살을 피해 잘도 숨어다니는 것이 꼭 꺽지를 닮았다 해서 꺽지 꺽지 하다가 꺽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생태적으로도 꺽지는 흥미롭다. 꺽지는 주로 맑고 자갈이 많은 강이나 계곡, 여울에 서식하며, 5~6월에 산란한다. 수컷은 암컷이 알을 낳으면 홀로 남아 알을 지킨다. 알은 돌 천장 밑에 한 겹으로 붙여져 있고, 수컷은 가슴지느러미로 부채질을 하며 산소를 공급한다. 외부 생물이 접근하면 입으로 빨아들여 잡아먹기도 한다. 이는 가시고기 못지않은 꺽지의 부성애로 회자된다.
더 놀라운 점은 탁란이다. 탁란이란 기생의 한 종류로, 난생 동물이 다른 개체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둥지의 주인인 해당 개체로 하여금 자신의 새끼를 대신 돌보게 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꺽지의 산란장에 돌고기, 감돌고기 같은 어종들이 몰려와 자신의 알을 꺽지 알처럼 끼워 넣고 떠나버리는 행동이 관찰된다. 꺽지는 이를 알지 못한 채 탁란된 알까지 보살피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이들 알은 꺽지보다 먼저 부화해버리기도 한다.
꺽지는 야행성으로 주로 밤에 활동하고, 육식성 습성을 지녀 갑각류, 물속 곤충, 작은 물고기 등을 잡아먹는다. 사나운 얼굴 생김새와 기민한 반응 속도 덕분에 낚시꾼들에게는 손맛 좋은 어종으로 인기며, 매운탕 재료로도 즐겨 쓰인다. 또 색이 다양하고 동작이 역동적이어서 수조에서 관상어로 기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육할 때는 꺽지가 좋아하는 여울을 재현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돌과 자갈로 숨을 곳을 마련해주고, 수중모터로 흐르는 물살을 만들어줘야 활동성을 높일 수 있다. 살아 있는 먹이 외에는 반응이 거의 없기에 냉동 벌레나 작은 새우 등을 실로 흔들어 주는 방식으로 급여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꺽지는 텃세가 강하고 영역본능이 뚜렷해 다른 어종과 합사하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 크기가 작은 물고기는 잡아먹고, 비슷한 크기의 어종과는 끊임없이 싸움을 벌인다. 미유기, 메기, 쏘가리처럼 덩치가 비슷한 육식성 어종과 넉넉한 공간에서 합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단독 사육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