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너무 좋아해서 엄청나게 수출했다는 한국의 나뭇잎
2025-03-2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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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개떡 식재료로 요긴하게 쓰인다는 나뭇잎

경상 의령군엔 망개떡이란 이름의 토속음식이 있다. 망개 잎으로 떡을 쌌단 이유로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망개떡을 감싸는 잎은 망개 잎이 아니라 청미래덩굴의 잎이다. 갈매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송 교목인 망개나무는 따로 있다. 경상도 사람들은 청미래덩굴을 방언으로 망개나무라고 칭한다. 백합과에 속하는 청미래덩굴은 한국의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있다. 덩굴손으로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모습, 굵고 단단한 뿌리, 두툼한 잎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에 깊이 얽혀왔다. 청미래덩굴 잎이 한때 일본으로 수출돼 외화를 벌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청미래덩굴은 잎겨드랑이에 난 덩굴손을 이용해 다른 나무를 감으며 오른다. 줄기는 꾸불꾸불 옆으로 뻗으며 2m 내외로 자라고, 마디마다 굽은 부분엔 갈고리 같은 가시가 돋아 있다. 뿌리는 굵고 단단하며 땅속을 이리저리 뻗어가며 수염 같은 잔뿌리와 울퉁불퉁한 혹을 만든다. 이 혹엔 흰 가루 같은 전분이 들어 있어 흉년에 구황식품으로 쓰였다. 선유랑 또는 우여랑으로 불렸다. 꽃은 5월에 황록색으로 잎겨드랑이에서 우산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열매는 8~9월 붉은색으로 둥글게 익어 겨우 내내 붙어 있는데, 안엔 황갈색 씨앗이 들어 있다. 열매를 단 가지를 꽃꽂이에 쓴다.
잎은 어긋나며 둥글거나 넓은 타원형 모양이다. 밑은 둥글고 끝은 뾰족하며, 두껍고 윤기가 난다. 음력 6~7월에 따기에 적합한데, 너무 부드러우면 안 되고 8월 초순을 넘기면 벌레 자국 때문에 쓰기 어렵다. 지역별로 이름이 다채롭다. 경상도에선 명감나무, 망개나무, 황해도에선 매발톱가시, 강원도에선 참열매덩굴, 전라도에선 종가시덩굴이라 부른다. 꽃가게에선 멍개나무, 망개나무라고도 한다. 일본에선 가시 때문에 ‘원숭이 잡는 덩굴’이라고 불렀다. 이들 이름을 보면 청미래덩굴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고 사람들에게 익숙했는지 알 수 있다.
청미래덩굴 잎은 식용으로 활용도가 높다. 부드러운 어린잎은 살짝 데쳐 쌈장에 싸 먹거나 장아찌로 담가 사계절 내내 먹는다. 맛은 약간 떫다. 열매도 식용 가능하다. 어린 순은 나물로 무쳐 먹는다. 특히 망개떡의 핵심 재료다. 1960년대까진 고학생들이 밤마다 “망개떠억”을 외치며 청미래덩굴 잎에 싼 망개떡을 팔았다. 청미래덩굴 잎엔 천연 방부 성분이 들어 있다. 떡이 쉽게 상하지 않는다. 또한 잎의 풋풋한 향이 배어 독특한 맛을 낸다. 의령군에 이 전통이 이어져 1956년부터 망개떡을 만든 가게가 시작됐는데, 지금도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의령군에선 가야시대 이바지음식, 임진왜란 의병 비상식량으로 전해지며 ‘애국 식품’이라 부른다.
청미래덩굴 뿌리는 구황식품으로 큰 역할을 했다. 흉년이 들면 뿌리를 캐 잘게 썰어 2~3일 물에 담가 쓴맛을 뺀 뒤 쌀이나 곡식과 섞어 밥을 지었다. 나라가 망해 산으로 도망친 선비들도 청미래덩굴 뿌리로 연명했다. 토복령으로 불리는 뿌리는 약재로도 쓰인다. 이뇨, 해독, 거풍 효능이 있어 관절염, 요통, 종기에 효과적이다. 수은 중독 해소에 특히 뛰어나고, 감기나 신경통엔 뿌리를 잘게 썰어 달여 땀을 내며 치료했다. 본초강목에선 토복령이 간과 위에 좋고, 습기를 제거하며 관절 통증을 푼다고 기록돼 있다. 뿌리엔 디오스게닌이 들어 있어 항암, 항바이러스, 혈압 강화, 고지혈증 개선, 중금속 배출에 효과가 있다. 약으로 쓰려면 물 1리터에 한 줌 넣고 반쯤 줄 때까지 달여 하루 세 번 마시면 좋다고 한다. 청미래덩굴 잎도 약용으로 활용된다. 백가지 독을 푼다는 말을 듣는다.

일본 수출이 청미래덩굴 잎의 가치를 더 키운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시작된 청미래덩굴 잎 수출은 1960년대에 본격화됐다. 일본에선 단오 절기음식인 가시와모치(떡갈잎 떡)를 만들 때 떡갈나무가 부족한 지역에서 청미래덩굴 잎을 대용으로 썼다. 잎을 소금에 절여 염도 20도를 유지하며 20일 이상 염침해 1캔에 70속(50장)씩 포장해 보냈다. 낮게 자라 따기 쉬운 특성 덕에 떡갈잎보다 더 많이 수출됐다.
일본인들은 이 잎으로 싼 떡을 먹으면 자손이 번창한다고 믿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이 한국에 대한 일반관세특혜를 폐지하며 관세가 오르고, 값싼 중국산에 밀려 수출이 줄었다. 요즘에도 수출되긴 하지만 과거만큼의 양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망개떡은 일본 가시와모치가 토착화한 음식이다. 멥쌀로 가래떡을 뽑아 네모나게 자르고 팥소를 넣어 접은 뒤, 청미래덩굴 잎 두 장으로 싼다. 잎은 떡이 달라붙지 않게 하고 말랑한 상태를 유지하며 상큼한 향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의령에선 망개떡탑을 세워 그 유래를 알린다. 1956년 한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망개떡이 소문이 나며 번창했는데, 지금은 시장에 여러 가게가 몰려 있다. 전국에서 망개떡 행상이 사라져가는 동안 의령군에선 향토음식으로 자리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