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전부 다르다… 지금 감칠맛이 '최고조'에 오른 해산물
2025-03-1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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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월 제철을 맞아 맛이 가장 좋은 '해산물'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전부 다른 해산물에 관심이 쏠린다. 지금 감칠맛이 '최고조'에 오른 이 해산물은 오래전부터 사람들 손에 채취돼 식탁 위에 올랐다.

해산물의 정체는 '바지락'이다. 바지락은 백합과에 속하는 작은 조개다. 이매패류 연체동물로, 두 개의 껍질이 서로 맞물려 단단히 닫힌 모습이 특징이다. 크기는 보통 3cm 안팎으로 작지만, 그 속에 담긴 맛과 영양은 결코 작지 않다. 주로 얕은 바다나 갯벌, 모래와 뻘이 섞인 곳에서 산다. 우리나라 전 해안에 걸쳐 분포하며, 특히 서해안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남시베리아에서 중국, 일본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에서도 자생하는데, 염분 농도가 낮은 곳을 좋아해 깊은 바다보단 해안 가까이에서 더 잘 자란다.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으며 살아가기에 갯벌의 풍부한 먹이 환경이 이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국물 요리에 잘 어울리는 바지락은 다양하게 조리할 수 있다. 칼국수, 된장찌개, 순두부찌개에 넣으면 시원하고 깊은 맛이 우러난다. 하지만 해감을 먼저 해야 한다.
해감은 바지락 요리의 첫걸음이다. 깨끗한 물에 2~3번 문질러 씻은 뒤, 물 1L에 소금 2큰술을 넣어 소금물을 만든다. 바지락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스테인리스 체 위에 올려놓는다. 이때 숟가락이나 포크를 같이 넣으면 해감이 더 잘 된다. 신문지나 검은 비닐로 덮어 어둡고 서늘한 곳에 2~3시간 두면 된다.

바지락 칼국수를 만들 땐 물에 멸치와 다시마로 기본 육수를 내고, 끓기 시작하면 해감한 바지락을 넣어 한소끔 끓인다. 면이 익을 때쯤 대파와 청양고추를 더하면 깔끔하면서도 얼큰한 한 그릇이 완성된다.
봉골레 파스타도 인기 바지락을 활용한 인기 메뉴다. 올리브 오일에 마늘과 건고추를 볶다가 바지락을 넣고, 화이트와인을 살짝 부어 알코올을 날린다. 이후 삶은 면을 버무려내면 담백한 이탈리아식 요리가 된다. 술찜도 별미다. 냄비에 바지락을 수북이 쌓고, 물을 조금 넣어 끓이면 조개가 입을 벌리며 국물이 배어 나온다. 여기에 버터나 고추를 더하면 감칠맛이 배가 된다. 바지락 전은 통통한 살을 까서 밀가루와 계란물을 입혀 부치면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낸다.
바지락은 단맛과 감칠맛이 조화를 이루는 해산물이다. 숙신산과 글라이신 덕에 달큰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특히 국물을 내면 그 시원함이 혀끝을 사로잡는다. 다른 조개처럼 진한 해산물 맛은 덜하지만, 부드럽고 깔끔한 여운이 남는다.
하지만 섭취 시에는 주의해야 한다. 바지락은 산란기인 7월 초순부터 8월 중순 사이에 독성 물질을 품을 수 있다. 이때 잡힌 건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니 날로 먹는 건 피하는 게 좋다. 또한 신장 기능이 약하거나 관련 질환이 있는 사람은 과식하지 말아야 한다. 하루 500g 정도가 적당하다. 해감이 제대로 안 된 바지락을 먹으면 모래가 씹혀 맛을 망칠 수 있으니 요리 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바지락의 제철은 2~4월이다. 이때 바지락은 산란을 앞두고, 영양을 축적해 살이 통통하고 맛이 가장 좋다. 바지락에는 철분과 비타민 B12가 많아 빈혈 예방에 도움을 주고, 헤모글로빈 합성을 돕는다. 칼슘, 마그네슘, 크롬 같은 미네랄도 풍부해 당뇨 예방과 근육 형성에 유익하고,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이다. 바지락 100g에 타우린 약 1052mg, 철 3.8mg, 칼슘 66mg이 들어 있어 적은 양으로도 영양을 채울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바지락을 먹어왔다. 1814년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는 ‘천합(淺蛤)’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살이 풍부하고 맛이 좋다”고 기록돼 있으며, 얕은 바다에 사는 조개라는 뜻이다. 동의보감에도 “술독을 풀어 취한 것을 깨어나게 한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바지락의 베타인 성분이 해독 작용을 돕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옛날부터 쉽게 구할 수 있는 영양 공급원으로 사랑받았던 셈이다.
이름의 기원도 흥미롭다. 갯벌에서 호미로 채취할 때, 껍질이 부딪히며 ‘바지락 바지락’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바지락은 동해안에서 ‘빤지락’, 경남에선 ‘반지래기’, 인천이나 전라도에선 ‘반지락’, 황해도에선 ‘바스레기’라 부른다. 본래 ‘바지라기’에서 줄어든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국민 조개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큼 한국인에게 친숙한 해산물이다.
바지락은 국산과 수입산으로 나뉜다. 국산은 연한 황갈색 껍질에 표면이 거칠다. 또한 노란 씨알이 선명하다. 수입산은 푸른빛이 돌고 길쭉하며, 표면이 매끄럽고 씨알이 희미하다. 바지락은 체외수정을 하기 때문에 암컷이 알을 바닷물에 뿌리고, 수컷이 정자를 뿌려 수정이 이뤄진다. 수정된 알은 바위나 암초에 붙어 유생으로 자란다. 이런 생태 덕에 갯벌에서 조개잡이 체험의 단골 손님으로 꼽힌다.
바지락은 요리뿐 아니라 약재로도 활용됐다. 간 해독, 피로 회복, 빈혈 예방 등 민간요법에 자주 쓰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껍질은 장식품이나 비료로 재활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방식으로 소비되는 바지락은 채취할 때 주의해야 한다.
갯벌에서 호미로 캘 경우, 죽은 조개는 버려야 한다. 껍질이 열리거나 냄새가 나면 부패한 경우가 많다. 오염된 지역에서 잡힌 건 중금속이나 독소를 품을 수 있으니 신뢰할 만한 곳에서 구입하거나 채취해야 한다. 신선한 건 껍질에 윤기가 나고 입이 닫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