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비트코인 비축?... 한국은행, 처음으로 입장 밝혔다
2025-03-16 10:43
add remove print link
“비트코인을 외환보유액에 편입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국은행이 비트코인을 외환보유액으로 편입하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관련 논의가 뜨거워졌고, 국내 정치권에서도 이와 유사한 제안이 나왔지만 외환보유액을 직접 관리하는 한국은행이 강하게 제동을 건 것이다.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과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특성 등이 주요 이유로 꼽혔다.
한국은행은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낸 서면 질의에 답하며 "비트코인을 외환보유액에 편입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은행이 비트코인 비축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첫 사례다. 그동안 비트코인은 투자자와 일부 정부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을 끌었지만, 한국은행은 이를 국가 차원의 자산으로 관리하는 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국은행이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인 첫 번째 이유는 가격의 극심한 변동성이다. 실제로 1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월 1억6000만 원대까지 급등했다가 최근에는 1억1000만 원대로 떨어지는 등 롤러코스터 같은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쪽에서는 비트코인이 미래에 10억 원을 돌파할 가능성을 점치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극단적인 경우 가치가 0원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가상자산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거래비용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로 한국은행은 비트코인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보유액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봤다. IMF는 외환보유액으로 인정하려면 자산이 ▲필요 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유동성과 시장성을 갖출 것 ▲태환성(통화가 다른 통화나 금과 같은 자산으로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는 정도)이 있는 통화로 표시될 것 ▲신용등급이 투자 적격 등급 이상일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게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특히 비트코인은 법정화폐가 아니며, 가격 안정성을 보장할 중앙기관도 없어 외환보유액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현재까지 비트코인을 외환보유액에 편입하는 문제를 논의하거나 검토한 적이 없다"고 차 의원에게 회신했다. 이어 "체코나 브라질 같은 일부 국가는 비트코인 비축에 긍정적인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럽중앙은행(ECB), 스위스 중앙은행, 일본 정부 등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규근 의원도 비트코인 편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추진하는 비트코인 전략 자산 지정은 새로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게 아니라 범죄 수익 등으로 몰수된 비트코인을 활용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로로 보유한 비트코인이 있다면 활용 방안을 검토해볼 수는 있겠지만, 외환보유액에 편입하는 건 지금으로선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각) 대선 공약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다만 이는 민·형사 몰수 절차로 확보된 연방 정부 소유 비트코인을 대상으로 하며, 당장 시장에서 추가 매입에 나서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비트코인을 둘러싼 글로벌 논쟁에 불을 지폈고, 다른 국가들도 자국 상황에 맞춘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집권플랜본부가 연 정책 세미나에서 비트코인을 외환보유액으로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온 바 있다. 이 세미나에서는 비트코인이 디지털 경제 시대의 새로운 자산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국가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반대 입장으로 인해 당분간 이 논의가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