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달음식의 시초, 짜장면인 줄 알지만 아니다... 바로 이 음식이다
2025-03-1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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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양반들이 즐기던 해장국

우리 삶에서 배달 음식은 일상적인 문화가 됐다. 그런데 음식 배달의 역사는 최근에 태동한 게 아니다. 교통·통신수단이 변변찮았던 조선시대에도 음식 배달 서비스가 존재했다.
한국어 좀 한다는 외국인이 어려워하는 표현 중 하나가 "아~ 시원하다~"이다.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 터져 나오는 우리만의 감탄사다.
그래서일까 한반도의 첫 배달 음식도 국물 음식, 이름하여 ‘효종갱(曉鐘羹)’이다.
조선 후기 시인이자 관리인 최영년이 1921년에 쓴 '해동죽지'라는 책에 효종갱이라는 음식이 소개된다. 북벌을 주장한 임금 효종과 관련된 음식이 아니라 새벽 효(曉)와 쇠북 종(鐘) 그리고 국 갱(羹)자를 쓰는 음식이다. 그러니까 새벽에 종이 울리면 먹는 국이라는 뜻의 효종갱은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효종갱은 소갈비와 콩나물, 표고, 송이, 해삼, 전복을 된장을 푼 물에 푹 고아 만든 음식이다. 곰탕과 비슷하지만, 전복과 해삼을 더해 고급스러움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이걸 밤에 한양으로 보낸다. 남한산성에서 한양까지는 직선거리로도 20km나 된다. 거기에 부유한 양반들이 모여 살았던 북촌(지금의 서울 종로구 일대)에 가려면 당시 경강으로 불리는 한강까지 건너야만 했다. 하긴 날이 궂으면 길이 막히니 매일 나를 수도 없다.
어쨌든 아마 자정이 되기 전에 출발해야 했을 것이다. 오토바이나 철가방 같은 게 없을 때였으니, 항아리에 효종갱을 넣고 지게로 짊어지고 가야 했다. 이때 효종갱이 식을까 봐 항아리를 솜에 싸서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밤새 걸어서 새벽에 한양의 성문들이 열릴 즈음에 도착할 때까지 효종갱이 식지 않았다고 한다.

상술한 대로 주고객층은 전날 과음을 한 양반들이었을 것이다. 들어간 재료부터 거리, 배달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지금의 해장국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왠지 가끔 바치는 뇌물로도 비친다.
효종갱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아주 오래 전부터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문헌상으로 보면 의외로 배달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런데 실제 조선 시대에 주로 배달해 먹었던 것은 뜨거운 해장국보다는 차가운 냉면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재 황윤석이 평생에 걸쳐서 쓴 일기인 '이재난고(頤齋亂藁)'에는 영조 44년인 1768년,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가 친구들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 세대쯤 뒤인 1800년에는 임금 순조가 달구경을 하다가 군사를 시켜서 냉면을 사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배달보다는 포장 판매에 가까운 형태였지만, 이 시기쯤 배달이나 포장 판매가 비교적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냉면과 해장국으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배달의 역사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1960~70년대 한국에서는 중국집에서 자전거를 이용한 짜장면 배달이 성행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치킨, 피자, 족발 등 다양한 음식 배달이 본격화됐다. 이후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배달 앱이 등장하면서 배달 서비스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