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잡는 즉시 버리지만 중국선 고급 식재료여서 양식까지 하는 생선
2025-03-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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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도 없어서 못 먹는 배스, 한국만 푸대접
배스의 정식 명칭은 ‘큰입배스’(Micropterus salmoides)다. 북미가 원산지인 담수어다. 몸길이는 평균 30~50cm이며 최대 75cm까지 자란다. 큰 배스는 11kg까지 자라기도 한다. 몸은 올리브빛 녹색에서 회녹색을 띠고, 옆구리엔 검은 점들이 불규칙한 줄무늬를 이룬다. 입이 크고 턱이 눈 뒤까지 뻗어 있어 ‘큰입’이란 이름이 붙었다. 육식성으로 물고기, 곤충, 갑각류, 개구리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포식자다. 따뜻한 물을 좋아해 수온 16~30도에서 잘 자란다. 얕은 호수나 강의 수초가 많은 곳을 선호한다.
한국에 배스가 들어온 건 1970년대 초반이다. 1973년 낚시 애호가와 수산업 관계자들이 미국에서 배스를 들여왔다. 당시 정부는 스포츠 낚시를 장려하고 수산 자원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이 도입을 승인했다. 처음엔 양어장에서 사육되며 낚시터에 방류됐는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배스는 빠른 번식력과 강한 적응력으로 자연 생태계에 퍼져나갔다. 암컷 한 마리가 봄철에 2만~10만 개 알을 낳고, 수컷이 둥지를 지켜 새끼를 보호한다. 게다가 천적이 거의 없으니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1980년대엔 한강, 낙동강, 금강 등 주요 하천에서 배스가 발견됐고, 1990년대엔 전국 호수와 강으로 확산했다.

2000년대 들어선 배스가 토착화돼 생태계를 교란하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현재 잡았다 풀어주면 불법인 물고기로 취급받는다. 생태교란종을 포획한 뒤 다른 장소로 옮겨 방생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 생태계에서 배스는 토착 물고기를 잡아먹고 경쟁하며 큰 피해를 끼친다. 환경부는 2002년 배스를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했다. 연구에 따르면, 배스가 서식하는 곳에선 토종 물고기인 피라미, 참붕어, 버들치 등이 급감한다. 낙동강 유역에선 배스 도입 후 토종 어류 다양성이 30% 이상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 배스는 먹이사슬 상위에 위치해 작은 물고기부터 중형 어류까지 싹쓸이한다. 게다가 수초를 파괴하며 다른 생물의 서식지를 망가뜨린다. 전문가들은 배스가 한국 수생태계의 균형을 깨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경고한다.
한국에서 배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낚시꾼들 사이에선 스포츠 피시로 인기가 있지만, 일반인은 배스를 생태계 파괴종으로 여긴다. 환경단체들은 배스 퇴치를 위해 포획 캠페인을 벌이고, 일부 지역에선 배스를 잡아 없애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 식용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다. 배스가 맛없거나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생선 요리 재료로 여겨지지 않는 탓이 크다.
미국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에서 배스는 낚시 대상이자 식탁에 오르는 인기 식재료다. 원산지인 만큼 생태계 교란 걱정 없이 자연스럽게 소비된다. 특히 남부 주(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등)와 중서부 지역에서 배스는 흔한 요리 재료로, 연간 수백만 파운드가 낚여 사람들에게 먹힌다. 일본에서도 1980년대 배스가 도입된 뒤 식용으로 조금씩 활용되고 있다. 중국도 배스 양식을 늘리며 아시아 시장에서 살아있는 배스를 고급 재료로 판다.
해외에서 배스는 다양한 요리로 변신한다. 미국 남부에선 배스를 튀김으로 즐긴다. 껍질을 벗기고 필레로 만든 뒤 옥수수 가루나 맥주 반죽에 묻혀 기름에 튀긴다. 레몬즙이나 타르타르 소스를 곁들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릴에 굽는 방법도 인기다. 소금, 후추, 허브로 간을 한 뒤 중불에서 5~7분 굽는다. 일본에선 배스를 찜이나 구이로 먹는다. 간장과 미림으로 양념해 부드럽게 찌거나, 숯불에 구워 담백하게 즐긴다. 중국에선 배스를 통째로 찜통에 넣고 생강, 파, 고추로 맛을 낸다. 포르투갈에선 올리브오일과 마늘로 볶아 와인에 곁들인다.
배스 요리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국식 배스 튀김은 필레 500g에 소금 1작은술, 후추 0.5작은술을 뿌리고, 옥수수 가루 1컵과 계란 1개를 섞은 반죽에 담갔다가 180도 기름에 3~4분 튀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일본식 배스구이는 필레 300g에 간장 2큰술, 미림 1큰술, 사케 1큰술을 발라 200도 오븐에서 10분 구워 만든다. 중국식 찜은 배스 1kg을 깨끗이 손질한 뒤 생강 20g, 파 3대, 고추 2개를 얹고 20분 쪄서 만든다. 조리법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배스의 담백한 맛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배스를 손질할 땐 주의가 필요하다. 먼저 날카로운 가시와 비늘을 조심해야 한다.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에 단단한 가시가 있어 맨손으로 잡으면 찔릴 수 있다. 칼로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뒤 비늘을 긁어내고 껍질을 벗기는 게 좋다. 배스 손질의 핵심은 비린내를 잘 제거하는 데 있다. 비린내의 대부분은 머리와 껍질에서 나오기 때문에 머리를 제거하고 껍질을 깨끗이 벗겨 요리해야 한다. 또 혈관이 있는 붉은 살에서도 비린내가 나기에 깨끗이 떼어낸다. 배스 특유의 흙냄새는 내장과 부레의 지방질로부터 난다. 내장을 뺀 뒤 갈비뼈 안쪽과 항문 근처를 도려내어 지방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이런저런 손질법이 귀찮으면 가위로 내장, 머리, 지느러미, 피가 들어 있는 등뼈까지 모조리 제거하면 된다.
배스 맛은 어떨까. 흰 살 생선인 만큼 단단하고 부드럽다. 담백하고 약간 달달하다. 미국에선 월아이(walleye)와 맛이 비슷하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튀겼을 때 맛있는 생선으로 알려졌다. 살이 새하얗고 부드러우며 담백한 맛이 난다. 냉동 대구나 명태살로 만든 생선가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는 의견도 있다. 영양도 뛰어나다. 닭가슴살의 3배에 달하는 단백질 비율을 자랑한다. 실제로 꽤 오래 전부터 학교 급식 재료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생충만 제대로 제거하면 회로 먹어도 매우 맛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회로 먹을 수 있느냐는 질문엔 답이 갈린다. 미국과 일본 일부 지역에선 배스를 회로 먹지만, 기생충과 오염 위험 때문에 권장되진 않는다. 한국 수질에서 자란 배스는 생으로 먹기엔 부적합하다는 전문가들 견해도 있다.
배스는 이연복 셰프의 손끝에서 놀라운 요리로 재탄생한 바 있다. 물속의 골칫거리로 여겨지는 배스는 이 셰프의 창의적인 조리법을 만나 중식의 별미로 변신했다. 이연복 셰프는 2022년 SBS ‘공생의 법칙’에서 배스를 활용해 두 가지 요리를 선보였다.
이 셰프는 배스를 주재료로 ‘배스 멤보샤’와 ‘어향 배스’를 만들었다. 배스 멤보샤를 만들 때 이 셰프는 배스 살을 곱게 다진 뒤 새우와 생강을 섞어 비린내를 잡았다. 여기에 버터, 치킨스톡, 감자전분, 참치액을 더해 반죽을 완성했다. 이 반죽을 빵 사이에 넣고 기름에 튀겨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멤보샤를 만들었다. 튀김 온도는 180도로 유지하며, 온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조절했다. 결과물은 겉의 빵이 빠삭하고, 속의 배스 살이 담백한 생선가스 맛을 냈다.
이어 어향 배스는 배스 필레를 소금과 후추로 간한 뒤, 고추기름, 맛간장, 굴소스, 전분물로 만든 어향소스를 곁들여 만들었다. 생강과 함께 조리해 비린내를 잡았다. 이 요리는 고급 중식당에서 나올 법한 깊은 풍미를 자랑했다. 배스 살은 두툼하고 실해, 씹을수록 담백함과 어향소스의 매콤함이 어우러졌다. 출연진은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나고 생선가스 같다”며 “진짜 맛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멤보샤에 대해선 “아이들이 좋아할 맛”이라고 감탄했다.
이 셰프는 배스의 잠재력을 높이 봤다. 그는 “배스가 크니까 부치거나 찌면 상품 가치가 크다. 적당한 가격으로 대중화하면 없어선 안 될 물고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