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아버지를 읽다’展, 투박한 ‘아버지의 언어’에 함축된 속 깊은 애정
2025-03-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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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만여 명에게 묵직한 울림 선사한 ‘진심 아버지를 읽다’展, 전주서 열려
가슴 먹먹한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하는 ‘가족애 회복의 장’으로 큰 호응!
아버지와의 통화는 늘 짧다. 어색한 안부 인사 몇 마디 하면, 금세 이야깃거리가 떨어진다. 간결하고 투박한 듯해도 아버지의 언어에는 깊은 애정이 감춰져 있다. 가족을 위해 살아왔지만 정작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 존재. 우리는 그런 아버지의 진심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진심 아버지를 읽다’展(이하 아버지전)은 우리 곁에서 묵묵히 가족을 지켜온 아버지들의 숨은 사랑을 조명한다.

2019년 서울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로 부산, 광주, 대전, 창원 등을 순회한 아버지전은, 지난 2월 6일 전주호성 하나님의교회에서 10회째 전시를 열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이하 하나님의 교회)가 주최하고 ㈜멜기세덱출판사가 주관한 아버지전은 6년간 27만여 관람객에게 큰 울림을 선사했다.
시인 나태주, 정호승, 하청호, 이정록, 만화가 이현세 등 기성 문인의 글과 ㈜멜기세덱출판사에 투고된 독자들의 글과 사진 등 총 170여 점의 작품들로 전시장이 채워졌다. '아버지 왔다'(1관), '나는 됐다'(2관), “….”(3관), '아비란 그런 거지'(4관) 등 아버지들이 사용하는 간결한 일상어를 테마명으로 정했다. 평범한 우리네 아버지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따뜻한 작품에 마음이 몽글몽글”
지난 6일, 전주 지역 전시장에는 아버지전의 개관 소식을 듣고 온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첫 작품, 나태주 시인의 <행복 1> 앞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40대 주부가 보였다. 작품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던 그는 “따뜻한 작품을 보니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 같아요.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아내와 딸의 모습을 보며 행복을 얻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어요.”

어린 자녀들과 함께 빙판에서 나무 썰매를 타는 아버지의 사진 앞에 선 한 중년 남성은, “내가 어릴 때는 비료 포대를 타고 다녔는데”라며 아련한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소품존 ‘추억의 방’에서 유아기 자녀들과 아빠들의 행복한 순간을 담은 영상을 보고 “어린 딸에게 젖병을 물려주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외로움이 숙명인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도 인상적이다. 가족과 나라의 미래를 일군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삶을 조명한 특별존, ‘격동의 시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는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건설 현장에서 인부들이 사용하는 비계(飛階)에, 파독 광부, 베트남전 참전, 중동 건설 붐, 외환 위기 등 굵직한 시대사에 얽힌 감동적인 스토리를 실은 패널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이곳에서 무뚝뚝해 보였던 중년 남성들은 눈가에 물기가 맺히기도 했다. 한 시의원은 “아버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고난과 어려움을 상징하는 것 같다. 아버지들이 있어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런 발전을 이루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가정을 건사한 아버지들의 고독감에 대해 깨닫는 이들도 있었다. 정호승 시인의 작품 <아버지의 나이>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한 관람객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버지 사랑을 알게 되었다" “글을 읽으면서 노곤하게 살았던 가장의 무게에 공감했어요. 세월 앞에 작아져 버린 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고, 아버지의 인생이 안쓰럽게 느껴졌어요” 라고 말했다.
막내딸과 손주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임종 전까지 비누 만들기에 몰두한 한 아버지의 사연을 담은 그림 에세이 <특별한 유산>은 관람객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일까. 관람객들의 동선이 이 작품에 가까워질수록 훌쩍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이날 관람객 중에는 지난 2023년 4월부터 1년 6개월 넘게 전주 지역에서 열린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이하 어머니전)을 관람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어머니전과는 사뭇 다른 감동을, 아버지전에서 느꼈다고 한다.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차희정 씨(40대)는 “어머니전은 같은 여자로서 공감이 됐다면, 아버지전은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아버지라는 존재를 바라보게 해 주었다. 나중에 아버지랑 같이 와보고 싶다”고 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잊힌 것들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추억 여행 같은 전시”라고 소감을 전했다.
주 전시장을 나서면 부대행사장에서 아버지에게 쓴 엽서나 편지를 무료로 발송해 주는 ‘진심 우체국’ 서비스도 운영한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지친 일상에 여유를 가지며 가족 간에 소원했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관람객들은 그동안 쑥스러워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종이에 꾹꾹 눌러 담는다. 아버지와 자녀 간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소통을 돕기 위해 마련된 ‘한뼘더’ 캠페인도 같이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온라인(thankfather.org)에서 진행된 아버지와 자녀 간의 관계에 대한 설문 조사 통계 결과가 전시된다. 아버지와 나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
관람이 마쳐지면 관람객들은, 아버지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된다”, “아빠에게 전화 한 통 하고 싶다”, “아버지 뵈러 고향에 한번 가야겠다”는 등 가족애가 돈독해진 관람 후기가 주최 측에 답지하고 있다.
효·인성 교육의 장으로 호평
아버지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흘러간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은 뒤늦게 체감되곤 한다. 이처럼 묵묵한 부성애를 조명한 아버지전은 많은 이들에게 아버지 또는 가족과 더 끈끈해지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러한 아버지전의 긍정적 효과는 관람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지역사회에 알려져 각계각층 인사들의 방문도 쇄도하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밀리언셀러 《아버지》를 출간,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정현 작가는 전시장을 둘러본 뒤 “나조차도 잊고 있었던 내 아버지와 가족이 새롭게 기억될 것 같다. 한번 보고 마는 전시회가 아닌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전시회”라고 호평했다.
영화 《국제시장》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고(故) 권이종 전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는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전문적으로 준비한 전시회는 국내에 없을 것 같다. 모든 국민이 다 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대구지역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전시를 보고 아버지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또렷하게 느껴졌다. 역사와 효·인성 교육을 한꺼번에 다 할 수 있는 상당히 유익한 전시”라고 말했다.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감정이 보편화된 요즘, 진심 어린 사랑의 형태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전망이다.
아버지전은 현재 전주, 대구, 성남에서 열리고 있다. 추후에도 전국 주요 도시에서 순회할 계획이다. 관람은 무료. 화요일과 토요일은 휴관이다.
전시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thankfather.org)를 참고하면 된다. 문의 063-253-1922(전주 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