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들판에 널려 있는데... 세계적인 셰프도 그 맛에 감동한 한국식재료

2025-03-0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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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먹을 수 있다면 고기 먹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극찬

냉이를 캐는 어르신들 / 연합뉴스
냉이를 캐는 어르신들 / 연합뉴스
찬바람이 잦아들고 있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이 남아 있지만 낮에는 햇살이 제법 따뜻해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리에 나설 수도 있다. 이런 날이면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봄의 전령사라 불리는 냉이다. '봄나물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풍부한 영양소를 자랑하는 냉이에 대해 알아봤다.

냉이 / 뉴스1
냉이 / 뉴스1

냉이는 배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이다. 나생이, 나숭이, 나상이 등 지역마다 다채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영어권에서는 삼각형 열매 모양 때문에 ‘목동의 주머니(shepherd’s purse)’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나즈나’라 한다. 길이 10~50cm 정도로 자라며, 톱니 모양의 민들레 같은 잎이 뿌리 주변을 빙 둘러싼다. 꽃은 4~6월에 작고 하얗게 피어나 긴 대롱에 촘촘히 달리고, 열매는 6, 7월에 맺힌다.

냉이 / 뉴스1
냉이 / 뉴스1

냉이는 내한성이 강해 겨울에도 살아남는 월년초다. 가을에 싹이 터 로제트 상태로 겨울을 나고, 늦겨울에서 초봄에 줄기가 자라기 시작한다. 원산지는 소아시아와 동유럽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전 세계 온대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한반도 전역의 논밭 둑, 들판, 산등성이 등에서 흔히 자생한다. 종류도 다양하다. 싸리냉이, 황새냉이, 좁쌀냉이, 논냉이, 나도냉이, 갯갓냉이 등이 있다. 연 생산량의 70~80%는 3월에 출하돼 봄철 식탁을 장식한다.

냉이는 뿌리에서 나는 독특한 향이 특징이다. 추울수록 이 향이 강해지기에 뿌리째 먹어야 제 맛과 영양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비슷한 식물로는 지칭개와 속속이풀이 있는데, 지칭개는 잎 뒤에 털이 나 하얗게 보이고, 속속이풀은 노란 꽃이 피며 습한 땅에서 자란다. 냉이는 농촌의 논밭 둑이나 들판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차량이 많은 도로변, 공원, 하천변 등에서 채취하면 중금속 오염 위험이 있으니 피해야 한다. 실제로 도로변 냉이에서 납과 카드뮴이 기준치를 초과한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 농약을 많이 쓰는 골프장이나 과수원 근처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냉이를 예로부터 식용과 약용으로 썼다. 생약명으로 향선채, 청명초라 불리며, 뿌리째 말려 약재로 활용하거나 국을 끓여 먹었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고, 간기를 잘 통하게 해 속을 풀어주며 오장을 돕는다. 국을 끓여 먹으면 피가 간에 들어가 눈을 밝게 한다”고 적혀 있다. 씨에도 약용 성분이 있다면서 “오장을 풀어주고 풍독과 사기를 없애며 눈을 밝게 한다”며 4월 초파일에 채취해 쓰라고 했다.

냉이 / 뉴스1
냉이 / 뉴스1

오늘날에도 냉이는 봄나물의 여왕으로 불리며 널리 소비된다. 주로 국이나 찌개에 넣어 향을 내거나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 냉이 된장국은 된장의 구수함에 냉이의 산뜻한 향이 어우러져 물리지 않는 맛을 낸다. 냉이 수제비 된장국은 시원하고 향긋해 별미로 꼽힌다. 냉이 볶음밥은 고소한 밥에 냉이 향이 더해져 입맛을 돋운다. 오징어 냉이전은 바삭한 전과 냉이의 조화가 돋보인다. 냉이 콩가루국은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지는 음식이다. 비빔밥, 부침개, 튀김, 라면에도 넣어 먹고, 냉이 김치나 장아찌로 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스파게티에 활용하면 이색적인 퓨전 요리가 된다. 소고기와 조합한 냉이 된장찌개는 감칠맛이 배가되고, 소고기 냉이 육전은 씹히는 맛이 새롭다. 냉이나물무침에 콩가루를 뿌리면 씁쓸함이 고소함으로 변한다.

외국에서도 냉이는 오랜 역사를 가진다. 중국 ‘본초강목’에는 “경기를 진정시키고 뱃속을 고르게 하며 오장에 이롭다”고 기록돼 있다. 상하이 주변에서 식재료로 쓴다. 일본에서는 1월 7일 냉이를 포함한 7가지 채소를 넣은 죽을 먹는 풍습이 있다. 티베트, 인도, 유럽에서도 약용으로 쓰인다. 영국 요크셔에서는 씨앗 색으로 부와 가난을 점치기도 했다.

냉이를 캐는 모습 / 연합뉴스
냉이를 캐는 모습 / 연합뉴스

한국계 미국인 셰프 에드워드 리는 냉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가 강원 정선군에서 나물 대가에게 냉이 요리에 대해 배우는 모습이 최근 tvN ‘에드워드리의 컨츄리쿡’에 나왔다. 냉이를 직접 무쳐 맛본 그는 “가볍고 산뜻하며 끝맛이 길게 남는다”며 냉이의 맛을 극찬했다. 그는 “이런 나물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고기를 먹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하며 냉이의 풍부한 식감과 향에 푹 빠졌다. 에드워드 리 셰프의 극찬은 냉이가 단순한 나물을 넘어 글로벌 미식의 주재료로 주목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냉이의 영양성분은 놀라울 정도로 풍부하다. 단백질, 칼슘, 철분이 대표적이다. 비타민 A, C, K, 베타카로틴, 식이섬유, 아미노산도 가득하다. 100g당 단백질이 4.23g이나 들어 있는데, 삶으면 5.09g까지 늘어난다. 달래(1.9g), 미나리(2.2g), 두릅(2.4g), 시금치(3.3g), 브로콜리(3g)보다 월등히 많다. 에드워드 리 셰프도 냉이의 단백질 함량에 주목하며 “채소 중 최고 수준”이라 평가했다.

아르기닌(324mg), 프롤린, 메티오닌 등 아미노산은 총 3019mg 들어 있다. 아르기닌은 기력 회복과 근육 관리에, 프롤린은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2014년 ‘경남대 기초과학지’ 연구에 따르면 냉이 추출물은 DNA 손상을 막는다. 삶으면 비타민 A가 78㎍에서 138㎍으로, 비타민 C는 24.29mg에서 35.8mg으로 증가한다. 귤이나 레몬보다 비타민 C가 많아 면역력 강화와 감기 예방에 효과적이다. 칼슘은 193mg으로 달래(62mg), 쑥(109mg), 씀바귀(74mg)를 압도한다. 철분은 13.24mg으로 하루 권장량(9~14mg)에 근접해 빈혈과 탈모 예방에 도움을 준다. 식이섬유는 5.3g, 삶으면 8.1g으로 변비와 대장암 예방, 다이어트에 유익하다. 베타카로틴은 939㎍, 삶으면 1655㎍으로 피부 노화와 암 예방에 기여한다.

냉이 무침 / '시골엄마 자연밥상' 유튜브 영상 캡처
냉이 무침 / '시골엄마 자연밥상' 유튜브 영상 캡처

냉이에는 플라보노이드류도 풍부하다. 캠페롤(1.59mg), 퀘르세틴(11.85mg), 아피게닌(6.38mg), 크리소에리올(10.05mg), 루테올린(198.99mg)이 들어 있어 항암, 항산화, 면역 증진 효과가 있다. 글루코시놀레이트는 배추과 특유의 쌉쓸함을 내며 암 예방과 노화 방지에 좋다. 콜린은 간 해독과 혈압 조절, 소화 촉진에, 르노르산은 혈관 건강과 콜레스테롤 감소에, 칼륨은 혈압 조절과 독소 배출에 효과적이다.

한방에서는 비장 기능 강화, 이뇨, 해독, 지혈, 수종에 쓴다. 한국식품연구원은 냉이가 비알코올성 지방간 예방에 효과적임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민간에서는 뿌리째 말린 냉이를 가루로 만들어 식후 복용하기도 한다. 춘곤증, 눈 피로, 고혈압, 골다공증 예방에도 탁월하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냉이의 이런 효능에 주목하며 “봄철 천연 영양제”라고 칭했다.

냉이와 잘 맞는 음식도 있다. 식초는 간 기능과 눈 피로를 덜어주고, 질경이는 부종 치료에, 결명자는 이뇨와 간·눈 질환에 좋다. 소고기는 단백질과 감칠맛을 더하고, 콩가루는 고소함을 보탠다. 저나트륨식을 위해 소금 대신 들깨가루나 식초를 쓰면 좋다. 다만 과다 섭취는 주의해야 한다. 칼슘이 많아 결석이 있으면 악화할 수 있고, 비타민 K가 풍부해 항응고제를 먹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냉이를 고를 때는 잎이 짙은 녹색이고 작으며, 향이 진한 것이 좋다. 뿌리가 너무 굵고 단단하면 피한다. 손질은 뿌리와 잎 사이 거뭇한 부분을 제거하는 게 핵심이다. 흙을 털고 누런 겉잎을 다듬은 뒤, 잔뿌리를 칼로 긁어내고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군다. 흙이 많으면 10분 정도 물에 담갔다가 흔들어 씻는다. 보관은 흙이 묻은 채 키친타월이나 비닐랩에 싸서 비닐팩에 넣어 냉장하면 2~3일 신선하다. 남으면 데쳐서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짜 썰어 냉동한다.

'시골엄마 자연밥상' 유튜브 채널이 알려주는 냉이무침 레시피.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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