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측하게 생겨 한국만 먹는데... '회 끝판왕'일 정도로 맛이 엄청난 생선
2025-03-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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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는 괴물 같지만 천상의 맛 자랑하는 한국 물고기

흉측하게 생겼지만 천상의 맛으로 모든 편견을 날려버리는 생선이 있다. 바로 괴도라치다. 얼핏 보면 괴물처럼 생겼다. 머리에 솟은 돌기, 두툼한 입술, 납작한 몸매는 미식가들조차 처음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생선은 ‘잡어회의 끝판왕’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회 맛이 뛰어나다. 겉모습과 달리 쫄깃하고 고소한 육질, 씹을수록 퍼지는 감칠맛과 단맛은 괴도라치를 단순한 잡어 이상의 존재로 만든다. 괴도라치가 어떤 물고기인지 알아본다.
괴도라치는 농어목 장갱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한국에선 주로 전복치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전복을 먹고 산다는 속설 때문에 붙은 이름이지만 사실 괴도라치는 전복을 먹을 수 있는 구강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잡식성으로 미역이나 작은 해양 생물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괴도라치 몸길이는 보통 25~40cm 정도로 자란다. 최대 55cm를 넘지 않는다. 몸은 원기둥 모양에 가까운데 꼬리 쪽으로 갈수록 납작해진다. 머리엔 피질 돌기가 나 있어 용머리를 닮았다는 이유로 남해 지역에선 용빼드락지라고도 부른다. 진해에선 빼드락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비슷하게 생긴 배도라치와 혼동되기도 한다. 한국 연안 전역, 즉 동해, 서해, 남해에서 모두 잡히지만, 지역마다 대접이 다르다. 동해와 서해에선 귀한 횟감으로 취급돼 kg당 5만~8만 원 수준의 높은 가격에 거래되지만, 남해에선 잡어로 분류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유통된다.
괴도라치의 외모는 확실히 독특하다. 큰 입과 넙데데한 얼굴, 두툼한 입술, 그리고 몸 여기저기에 돋아난 자잘한 돌기는 위장용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 때문에 과거엔 식용으로 잘 쓰이지 않았지만, 최근엔 그 맛이 재조명되며 인기가 치솟았다. 특히 6~9월이 제철인데, 이때 잡힌 괴도라치는 기름기가 돌면서 고소한 맛이 강해진다.
회 맛은 어떨까. 어류 전문가이자 입질의추억TV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지민 씨는 괴도라치와 보리멸을 ‘잡어회의 끝판왕’으로 꼽으며, 탱탱한 육질과 오래 씹을수록 나는 단맛을 극찬한 바 있다. 그만큼 회 맛이 대단하다. 쫀득하고 달달하고 담백하다. 한번 맛보면 다른 회를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서울의 유명 횟집 바다회OO은 괴도라치 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방어 회로 유명세를 탄 곳이지만 괴도라치 회 역시 아는 사람은 아는 별미로 통한다. 회 외에도 매운탕으로 요리해 먹는 경우도 많다. 회를 뜨고 남은 머리와 뼈를 활용해 끓이면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다. 강원도 속초의 동명항 활어판매장에선 40cm 정도 크기의 괴도라치 800g짜리가 5만 원에 거래되는데, 회를 뜨면 절반 정도 양이 남아 3~4인 가족이 먹기에 적당하다고 한다.
괴도라치의 치어는 실치라고 불리며, 이를 말려 뱅어포로 만든다. 원래 뱅어는 다른 어종을 가리키지만, 실치로 만든 뱅어포가 워낙 널리 퍼지며 국어사전에도 괴도라치 치어로 만든 것이 뱅어로 등재돼 있다. 강원도 수산자원연구원에서 부화율과 치어 생존율을 높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동해안에서 명태와 오징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괴도라치 같은 맛 좋은 어종을 새 수입원으로 키우려는 시도다.
외국에선 괴도라치가 식용으로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일본 북부와 러시아 해안에서도 서식하지만, 산업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돼 어획이나 요리 정보가 거의 없다. 영어로는 ‘Japanese warbonnet’이라 불리는데,머리 돌기가 전사의 투구를 닮았다는 데서 온 이름으로 보인다. 한국처럼 회나 탕으로 먹는 문화는 없고 연구나 관상용으로만 주목받는 수준이다. 다른 나라에서 식용을 하지 않는 이유는 외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험악하다 못해 흉측하게까지 보이는 괴도라치의 생김새는 처음 접하는 이들에겐 거부감을 줄 수 있다.

괴도라치는 귀한 생선이다. 속초 동명항에선 하루 10여 척 어선이 잡아도 20마리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우 통발에 우연히 걸려드는 정도라 어획량이 많지 않다. 2023년엔 해수온도 저하로 어획량이 예년의 절반 이하로 줄었고, 이로 인해 가격이 다른 생선보다 2배가량 비싸지기도 했다. 귀한 생선이라는 입소문이 난 까닭에 서울, 경기 등지에서 괴도라치 회를 맛보러 속초나 고성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
괴도라치는 대중문화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다. 2022년 MBC ‘안 싸우면 다행이야’에서 홍현희가 괴도라치의 얼굴을 묘사해 화제를 모았다. 무인도에서 멤버들이 괴도라치를 잡아 기뻐하는 장면에서 홍현희는 얼굴 표정으로 괴도라치 생김새를 따라해 웃음을 안겼다. 붐은 “국내 최초 괴도라치 얼굴 묘사”라며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