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보양식 재료인데... 미국에서는 생태계 파괴종인 물고기

2025-03-0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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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골치 아프게 만드는 물고기의 정체

미국 일리노이 폭스 강에서 뛰어오르는 아시아 잉어. /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
미국 일리노이 폭스 강에서 뛰어오르는 아시아 잉어. /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고요한 강과 호수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잉어는 민물고기를 상징하는 물고기다.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잉어는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하며 식탁을 채우고 문화를 엮어왔다. 잉어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봤다.

80cm급 대형 잉어 / '낚시가家' 유튜브 영상 캡처
80cm급 대형 잉어 / '낚시가家' 유튜브 영상 캡처

잉엇과에 속하는 민물고기인 잉어는 크게는 122cm까지 자란다. 여러 대형 바닷물고기에 비할 수 없지만 민물고기 치고는 대형 어종이다. 무게는 환경에 따라 30kg을 넘기기도 한다. 잉어는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한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거의 모든 대륙에서 발견된다. 원산지는 유라시아로 추정되며, 특히 중국에서는 기원전 500년경부터 양식 기록이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도 오래전부터 알려져 ‘난호어목지’나 ‘전어지’ 같은 고문헌에 그 형태와 특징이 기록돼 있다. 흐르는 강, 호수, 연못 등 담수 환경에서 잘 적응하며, 3~4급수처럼 수질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살아남는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양식도 활발히 이뤄지는 까닭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길러지는 민물고기 중 하나로 꼽힌다.

잉어 / 연합뉴스
잉어 / 연합뉴스

잉어를 요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한반도에서는 과거 단백질이 귀하던 시절 잉어를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다. 참기름과 마늘을 넣고 푹 고아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병자나 산모의 산후조리에 특히 애용됐다. 다만 기름기가 많아 느끼한 데다 특유의 흙냄새 때문에 비위가 약한 사람은 먹는 게 곤욕인 음식이다. 먹을 것이 풍족한 요즘엔 잉어를 거의 찾지 않는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물고기로 전락한 물고기라고 할 수 있다.

잉어는 양념을 진하게 해 찌거나 매운탕으로 끓여 먹으면 별미다. 특히 매운탕은 오랫동안 고아도 살이 으스러지지 않아 걸쭉한 국물을 내기 좋다. 국수를 넣어 어탕국수로 발전하기도 했다. 회로 먹는 경우도 있다. 북한 주석인 김일성은 잉어회를 좋아해 식탁에 자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잉어의 맛은 독특하다. 살은 기름기가 많고 부드러우며, 약간의 흙내가 섞인 고소함이 특징이다. 회로 먹으면 육회처럼 붉은 살에 기름기가 돌며 숭어와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더 무르고 흙냄새가 날 수 있다. 익히면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담백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낸다. 하지만 잔가시가 많은 데다 민물고기 특유의 흙냄새 때문에 조리 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먹기 힘들다. 요즘엔 흙냄새를 줄이는 조리법을 통해 현대적인 입맛에 맞추려는 시도도 보인다. 잉어 특유의 흙냄새를 줄이려면 손질을 철저히 하고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본에선 이케지메(즉사 후 피 빼기) 같은 방법을 써 비린내를 줄이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잉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한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고급 식재료로 다뤘는데, 황하에서 잡힌 잉어를 최고로 꼽았다. 찜, 탕, 튀김 등이 흔하다. 내장과 비늘을 제거하고 머리째 통으로 튀겨 소스를 뿌리는 탕추리위(탕수 잉어)가 대표적이다. 가슴지느러미 주변 살이 가장 맛있다. 잉어 대가리를 젖은 수건으로 감싸 몸만 튀겨 머리가 살아 움직이는 잔인한 요리도 있다. 공자가 아내의 출산 때 잉어를 고아 먹이고 아들 이름을 잉어(리·鯉)라고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강남 지역에서는 잉어를 얇게 썰어 회로 먹기도 했다. 수·당·송 시대에는 생선회가 유행해 당나라 시인 왕유가 잉어회를 시제로 삼아 읊은 기록도 있다.

일본에서는 노년층이 보양식으로 잉어를 찜이나 국으로 먹는다. 잉어가 장수 이미지를 가져 몸을 보충해준다는 믿음이 있다. 활어로 요리한다. 주문 즉시 수조에서 꺼내 머리를 쳐 기절시킨 뒤 손질한다. 비늘을 벗기지 않고 간장양념에 찌는 전통 방식이 맛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늘의 젤라틴 성분이 쫀득한 식감을 준다. 현대에는 비늘을 벗기고 조리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잉어를 주로 양식해 회로 먹기도 한다. 일본의 잉어회 문화는 특히 흥미롭다. 깨끗한 양식 환경에서 사육한 잉어를 얇게 썰어 생으로 내놓는다. 일본 중부 지역인 나가노현이나 야마나시현 같은 내륙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에도 시대(1603~1868) 이전부터 일본 내륙에서는 잉어를 생으로 먹는 풍습이 있었다. 바다 생선이 귀한 지역적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요리사들은 잉어를 깨끗이 손질한 뒤 간장과 와사비, 또는 초간장에 찍어 먹으며, 때로는 얇게 썬 파나 생강을 곁들인다. 맛은 담백하고 쫄깃하며, 광어회보다 묵직한 식감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에는 코이노 타키즈메라는 독특한 요리도 있다. 살아있는 잉어를 얇게 썰어 얼음물에 담가 신선도를 유지하며 먹는 방식이다. 드물지만 일부 지역에서 전통으로 남아 있다. 일본의 잉어회는 주로 간단한 양념으로 먹으며, 숭어회와 비슷하지만 더 기름진 맛을 낸다고 한다. 다만 일본에서도 잉어회는 대중화되지 않아 전문점이나 특정 계절에만 그것도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다.

유럽에서도 중세부터 잉어가 주요 식재료로 사용됐다. 수도원에서 양식해 금요일 금육재나 사순절에 단백질 공급원으로 활용했다. 맛이 좋아 주민도 즐겨 찾았다. 독일에서는 잉어를 튀기거나 구워 크리스마스 식탁에 올리고, 폴란드에서는 잉어 수프를 전통 요리로 즐긴다. 유대교 아슈케나지 공동체에서는 잉어로 게필테 피시라는 요리를 만들어 안식일에 먹는다. 잉어를 갈아 양파, 당근과 섞어 삶거나 찐 요리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잉어 튀김과 스프를, 동유럽 국가들(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에서는 튀김, 스튜, 구이로 먹는다.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에서는 전통 잉어 요리가 있다. 불가리아의 포우넨 셰란은 잉어구이다. 중동의 이라크에서는 ‘마스코프’라는 잉어 구이를 즐기는데, 등뼈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장작에 구워 먹는다. 시리아, 터키, 요르단에서도 비슷한 요리가 있으며, 위구르인들은 배를 갈라 구이로 조리한다.

이와 달리 영미권에서는 조리법이 부족한 까닭에 잘 먹지 않기에 낚시 후 놓아주거나 버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은 아시아 잉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70년대 양식용으로 들여온 아시아 잉어가 강과 호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지역 당국은 아시아 잉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했지만 개체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아시아 잉어는 미시시피강 유역을 넘어 일리노이강, 미주리강, 오하이오강 등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아시아 잉어는 토종 어류의 먹이를 먹고 서식지를 파괴해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리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정부까지 나서 아시아 잉어가 훌륭한 식재료라고 홍보하고 일부 주정부가 중국 업체와 수출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못 찾고 있다.

잉어를 잡는 방법은 환경과 목적에 따라 다르다. 한국에서는 낚시로 잡는 경우가 많다. 힘이 세고 저항이 강한 잉어는 낚시꾼들에게 인기 어종이다. 미끼로는 지렁이, 옥수수, 떡밥 등이 사용된다. 강이나 호수에서 긴 낚싯대를 이용해 잡는다. 양식장에서는 그물을 써 대량으로 건져 올린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코이 구제라는 방법으로 잉어를 잡았다. 연못이나 강에서 물을 퍼내거나 그물을 쳐 잉어를 몰아 잡는 방식이다. 유럽에서는 중세에 연못을 만들어 잉어를 기르고 필요할 때 그물로 잡아 식용으로 썼다.

잉어를 회로 먹을 때는 크게 주의해야 한다. 민물고기는 바닷물고기와 달리 기생충 감염 위험이 높다. 특히 자연산 잉어에서 흔히 발견되는 간흡충(디스토마)이 문제다. 간흡충은 간 손상이나 황달을 일으킬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하다. 양식 잉어는 사료를 먹여 기생충 감염이 적지만 완전히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민물고기를 날로 먹는 건 기본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한국에선 잉어회를 먹은 뒤 간디스토마 감염 사례가 자주 보고된다. 예방하려면 회를 먹기 전후에 기생충 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아예 익혀 먹는 것이 안전하다.

잉어 쓸개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잉어, 붕어 등 민물고기 쓸개에 들어있는 독성이 콩팥을 손상해 급성신부전증을 일으킬 수 있다. 잉어 등 민물고기의 쓸개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구토, 설사, 복통, 혈뇨, 극심한 소변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콩팥이나 간 손상 여부를 병원에서 꼭 확인해야 한다.

'[경북의 맛집] 안동 잉어찜 편'이란 제목으로 경북일보TV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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