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선 한없이 하찮은데... 값 비싸져 최고급 식재료 된 한국 해산물
2025-03-0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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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값비싼 식재료로 자리잡아 위상 뒤바뀐 한국 해산물


꼴뚜기는 연체동물문 두족강 폐안목 꼴뚜기과(Loliginidae)에 속하는 해산물이다. 오징어와 비슷한 외형을 가졌지만 몸집이 작다. 다 큰 성체의 몸길이가 10~15cm 정도에 불과하다. 외투막은 원통형으로 뒤로 갈수록 가늘어져 뾰족해진다. 다리는 10개로 몸통의 절반 길이쯤 되고, 몸은 흰 바탕에 자줏빛 반점이 흩어져 있다. 뼈는 얇고 투명한 각질로 돼 있어 오징어보다 부드럽고 연한 식감을 자랑한다. 새끼 오징어로 흔히 오해받지만 꼴뚜기는 독립된 종이다. 한반도 해역에는 반원니꼴뚜기, 참꼴뚜기, 꼬마꼴뚜기 등이 서식한다. 지역마다 이름이 다르다. 경상도에서는 ‘호래기’, 전라도에서는 ‘고록’, 이북에서는 ‘홀째기’나 ‘호디기’라 부른다. 일본에서는 ‘호타루이까’(반딧불이 꼴뚜기)로 불린다. 어두운 바다에서 파란 불빛을 내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꼴뚜기는 한반도 모든 연안에서 잡히지만 특히 남해와 서해 얕은 바다에서 풍부하다. 남해의 죽방렴 어업은 빠른 조류를 활용해 싱싱한 꼴뚜기를 잡는 전통 방식으로 유명하다. 안강망과 들망이 주된 어획법이다. 안강망은 물살 빠른 곳에 그물을 고정해 물고기를 잡고, 들망은 밤에 집어등으로 꼴뚜기를 유인한 뒤 그물을 들어 올린다. 통영과 사천에서는 낚시로 활호래기를 잡아 시장에 공급한다. 일본에서는 도야마 만을 중심으로 호타루이까가 많이 잡힌다. 꼴뚜기는 아연안대에서 바닥에 붙어 살거나 바닥 가까이에서 생활한다.
한국인들에게 꼴뚜기는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속담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다. 다만 좋은 뜻으로 쓰이진 않는다. 재산을 탕진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 ‘꼴뚜기장수’란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꼴뚜기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작고 화려하지 않아 민폐 캐릭터로 굳은 해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꼴뚜기의 제철은 날로 먹어도 좋은 11월에서 2월까지다. 다만 4, 5월에 남해에서 많이 잡히기에 그때를 제철로 보는 시각도 있다. 통영 서호시장이나 부산 부평시장에서는 활호래기가 거래된다. 제철 꼴뚜기는 살이 통통하고 쫀득하며 감칠맛이 강해 회나 젓갈로 먹기에 최적이다.
꼴뚜기는 한국에서 다양하게 요리된다. 생으로 젓갈을 담그거나 말려서 먹는 게 기본이다. 꼴뚜기젓은 지역마다 만드는 법이 다르다. 경남에선 생꼴뚜기의 먹통과 눈을 떼고 굵은 소금에 절여 사나흘 둔 뒤 물을 뺀다. 이후 켜켜이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담아 석 달 삭히고, 건져서 냉수에 씻은 다음 다진 파, 마늘, 생강을 넣어 무친다. 먹을 때는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으로 버무려 낸다. 전남에선 씻은 꼴뚜기를 소금에 버무려 항아리에 밀봉해 삭혀 만든다. 전북에서는 소금을 두 번 쳐 만든다. 경남에서는 꼴뚜기무생채도 만들어 먹는다. 절인 무채와 소금에 씻은 꼴뚜기를 고추장, 설탕, 식초, 참기름, 다진 파, 마늘, 깨소금으로 무친다.
말린 꼴뚜기는 볶거나 조려 반찬으로 활용한다. 멸치볶음처럼 양념에 졸이면 감칠맛이 좋아 술안주로 훌륭하다. 해물라면에 넣으면 국물 맛이 깊어진다. 1980~1990년대 삼양식품 해물라면에 말린 꼴뚜기가 포함된 적도 있다.
신선한 꼴뚜기는 회로 먹는다. 통영이나 부산 시장에서 활호래기로 팔린다. 살아 있는 꼴뚜기 한 마리당 가격은 5000원 안팎에 이를 정도로 비싸다. 인터넷에서는 횟감용 꼴뚜기 500g이 2만 원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갓 잡은 꼴뚜기를 초장에 찍어 먹으면 쫀득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데쳐서 먹어도 맛있다. 데치고 남은 국물은 라면을 끓을 때 쓰거나 육수로 쓰면 좋다. 통영 중화항에서는 야광 낚싯바늘과 생새우 미끼로 낚은 호래기를 즉석에서 초장에 버무려 소주와 즐긴다. 낚은 꼴뚜기를 배 위에서 회로 썰어 기름소금장이나 젓갈 장에 찍어 먹는 풍습도 남해안에서 흔하다.
외국에서도 꼴뚜기를 먹는다. 일본에서는 도야마 지역에서 많이 잡힌다. 선상에서 간장양념에 절인 오키즈케(沖漬け)가 대표적이다. 갓 잡은 꼴뚜기를 씻어 물기를 뺀 뒤 간장 3큰술, 미림 2큰술, 설탕 1작은술을 섞은 양념에 한두 시간 절인다. 짭조름하고 달콤한 맛이 일본 술과 잘 어울려 이자카야에서 ‘10대 안주’로 꼽힌다. 쪄서 츠케모노(절임 채소)나 어란과 곁들이거나, 김초밥 위에 얹어 ‘호타루이까 스시’로 먹기도 한다.
한국 역사에서 꼴뚜기는 조선 시대부터 문헌에 나온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기록됐다. 정약전은 ‘자산어보’(1814년)에서 꼴뚜기를 유어(柔魚)라고 칭하며 “형상은 오징어와 비슷하지만 몸통은 더 길고 좁다. 3, 4월에 잡아 젓갈을 담근다”고 썼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1820년)에는 “호남 사람들은 호독이라 하고, 해서 사람들은 꼴독이라 한다”고 나와 지역별 명칭 차이를 보여준다. 1798년 이만영의 ‘재물보’와 1842~1845년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는 ‘유어’로, 1855년 심노순의 외조부 이공의 ‘사류박해’에서는 ‘망조어’로 기록됐다. ‘여지도서’(1760년쯤)와 ‘여도비지’(1851년) 등 조선 후기 읍지에는 안산, 수원 등지에서 나는 물산으로 꼴뚜기가 나온다. 1924년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도 꼴뚜기젓이 소개돼 조선 시대부터 식용으로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
만화 ‘아기공룡 둘리’에는 꼴뚜기별 외계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꼴뚜기별의 왕자(오렌지색 모자)와 부하(갈색 모자)는 망해가는 꼴뚜기별을 재건하려 보물을 찾으러 지구에 불시착한다. 1988년 KBS판 애니메이션에서 ‘꼴뚜기별의 왕자님’ 에피소드로 2회 방송돼 단발성 캐릭터 중 지명도가 매우 높다.
꼴뚜기는 노래 ‘독도는 우리땅’ 3절에도 나온다. 개정 전 가사(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알 물새알 해녀 대합실)는 물론 2012년 개정 후 가사(오징어 꼴뚜기 대구 홍합 따개비 주민등록 최종덕 이장 김성도)에도 등장하며 독도 주변에서 잡히는 해산물에 꼴뚜기를 포함했다. 독도 연안이 꼴뚜기 서식지임을 드러내며 한국 영토임을 강조하는 가사다.
참고로 오징어과에서 가장 큰 종인 흰꼴뚜기는 몸길이가 최대 500mm에 이른다. 무늬오징어란 이름으로 잘 알려졌다. 꼴뚜기과에는 한치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창꼴뚜기와 화살꼴뚜기도 있다. 한치는 본명이 아니다. 다리 길이가 약 3cm, 즉 한 치 정도로 짧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실제로 한치의 다리는 사람 손가락 길이 정도로 오징어보다 몸통이 길쭉한 편이다. 한치는 크게 제주 한치와 동해 한치로 나뉜다. 제주 한치는 창꼴뚜기, 동해 한치는 화살꼴뚜기가 표준 이름이다. 이 둘은 생김새와 산란 시기, 제철이 다르다. 창꼴뚜기는 제주도에서 주로 잡히며 여름에 산란한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어획되고 맛도 좋다. 반면 화살꼴뚜기는 동해에서 잡히고 봄에 산란하며, 겨울부터 봄까지 맛이 최고다. 한치는 오징어보다 부드럽고 감칠맛이 뛰어나 제주도 속담에 “한치가 쌀밥이라면 오징어는 보리밥이고, 한치가 인절미라면 오징어는 개떡이다”라 할 정도로 한 수 위로 여겨진다. 값도 오징어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