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음식 색깔 보고 기겁했다가 먹으면 곧바로 빠져든다는 한국요리
2025-03-0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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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향으로 만들어졌지만 중국엔 없다... 이제는 '한국인의 영혼'이 된 요리

짜장면의 시작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산둥 지역에서 건너온 화교들이 인천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정착하면서 이 음식을 전파했다. 원래 중국의 자장몐(炸醬麵)이 뿌리다. 자장몐은 춘장을 볶아 고기와 채소를 버무려 면에 얹어 먹는 요리였다. 하지만 한국에 오면서 현지 입맛에 맞춰 변형이 시작됐다. 중국식 자장몐은 대체로 짜고 맵거나 기름진 맛이 강했지만, 한국에선 단맛을 살리기 위해 양파와 설탕을 더하고 고기 대신 저렴한 채소를 활용하며 독자적인 스타일로 발전했다. 1905년 무렵 인천의 화교 식당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짜장면은 점차 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1950~1960년대 경제 성장기엔 값싸고 배부른 음식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대중화됐다.
한국에서 짜장면이 인기를 끄는 건 맛 때문만은 아니다. 이 음식은 일상과 특별한 순간을 모두 아우른다. 가족 외식의 단골 메뉴로 자리 잡았고, 졸업식이나 이사처럼 기념할 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짜장면을 시켜 먹는 풍경이 익숙하다. 배달 문화와도 떼려야 뗄 수 없다. 1970년대부터 오토바이 배달이 본격화되며 짜장면은 한국 배달 음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중화요리점 수는 약 3만 곳에 달하고 그중 80% 이상이 짜장면을 주력 메뉴로 내세운다. 연간 소비량은 약 7억 그릇으로 추정된다. 국민 1인당 연평균 14그릇을 먹는 셈이다.

북한에도 짜장면이 있다. 1985년 김정일 교시에서 “짜장면과 우동은 우리 인민들에게 인기 있는 외국 음식이다”라고 언급돼 있다. 북한에선 짜장면을 ‘중국국수’라 부르기도 하지만, 김정일은 ‘짜장면’이란 이름을 그대로 썼다. 해외 북한식당에서도 팔리고 함흥시 신흥관이나 신의주시 같은 지방에서도 판다. 남한처럼 전화 주문으로 배달까지 가능하는 등 대중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만 북한식 짜장면은 남한과 확연히 다르다. 북한에선 춘장 대신 된장을 주로 사용한다. 이로 인해 남한의 검은색과 달리 누런 빛이 돈다. 일부에선 춘장에 된장을 섞고 기름을 줄여 구수한 맛을 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북한식 짜장면이 짜장면의 원형에 더 가까울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땐 짜장면을 된장국수라고 불렀다. 1936년 박태원 소설 ‘천변 풍경’과 1961년 염상섭 ‘의처증’에 등장하는 된장국수는 짜장면을 뜻한다. 춘장이 중국식 된장이란 점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은 ‘짜장’을 “고기, 홍당무, 된장을 기름에 볶은 양념장”으로, ‘짜장면’을 “짜장을 넣고 버무려 먹는 국수”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정작 짜장면의 고향인 중국엔 짜장면이 있을까? 놀랍게도 없다. 중국에서 짜장면이란 이름으로 한국식 짜장면을 찾기는 어렵다. 앞서 말했듯 중국엔 자장몐이 존재하지만 한국 짜장면과는 맛과 형태가 전혀 다르다. 중국 자장몐은 지역마다 차이가 크지만 대체로 춘장을 기본으로 짠맛이 강하고 채소나 고기를 듬뿍 넣어 먹는다. 반면 한국 짜장면은 단맛과 걸쭉함이 특징이다. 중국인들이 한국 짜장면을 처음 보면 생소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엔 짜장면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짜장면은 화교들이 한국에 와서 현지화한 독창적인 요리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음식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짜장면의 영양학적 가치는 어떨까. 기본적으로 짜장면은 탄수화물 덩어리다. 면은 밀가루로 만들어졌고, 소스엔 전분이 들어가 칼로리가 높은 편이다. 한 그릇(약 600g)에 약 700~900kcal다. 성인 하루 권장 섭취량의 3분의 1을 훌쩍 넘는다. 단백질은 고기 함량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적고, 채소가 들어가긴 해도 양이 많지 않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포만감이 크고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건 짜장면의 매력이다. 최근엔 건강을 생각해 현미 면이나 잡곡 면을 사용하는 변주도 등장했다. 또 소스에 해산물이나 불고기를 추가하거나 매운맛을 더한 불짜장 같은 메뉴도 인기다.
짜장면엔 논란도 따른다. 그중 하나가 MSG(글루타민산나트륨) 사용이다. 중화요리에서 감칠맛을 내는 데 자주 쓰이는 MSG는 과다 섭취 시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으로 인해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돼왔다. 전문가들은 적정량 사용 시 무해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여전히 소비자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남아 있다. 일부 식당은 MSG를 쓰지 않는다고 홍보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리사들은 MSG가 짜장면 특유의 깊은 맛을 내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고 반박한다. 짜장면이 대중 음식인 만큼 MSG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통계청은 ‘짜장면 지수’를 발표한다. 물가지수를 측정하는 여러 식료품 중 유일한 완제품이다. 202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짜장면 한 그릇 평균 가격은 약 7000원이다. 10년 전(4500원)보다 55%가량 올랐다. 쌀이나 채소 같은 원재료 가격 상승과 인건비 증가가 반영된 결과다. 짜장면 지수는 서민 경제를 가늠하는 척도로도 활용된다.
짜장면의 이름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원래는 ‘자장면’이 표준어였다. ‘짜장’은 중국어 발음 ‘zhajiang’을 한국식으로 옮긴 말인데, 사람들이 더 자주 쓰는 ‘짜장면’이 자연스럽게 퍼졌다. 결국 2011년 국립국어원이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하며 두 이름이 공존하게 됐다. 이는 짜장면이 한국에서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짜장면은 진화 중이다. 간짜장은 소스를 따로 내 면과 비벼 먹고, 쟁반짜장은 큰 접시에 담아 여러 명이 나눠 먹는다. 삼선짜장은 해산물을 넣어 고급스럽게 즐긴다. 최근엔 백짬뽕처럼 흰 소스의 ‘백짜장’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마다 특색도 있다. 부산에선 돼지기름을 더해 진한 맛을 내고, 강원도 일부 지역에선 고추장을 섞기도 한다. 심지어 냉짜장처럼 여름철 시원하게 먹는 버전도 있다. 이런 변주는 짜장면이 단순한 음식을 넘어 끊임없이 진화하는 문화임을 보여준다.
짜장면은 한국인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외국인에겐 기묘한 검은 면일지 몰라도, 한 입 먹으면 누구나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화교의 손에서 시작돼 한국인의 입맛과 생활에 맞춰 재탄생한 짜장면은 이제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K-팝과 드라마가 세계를 휩쓰는 만큼 짜장면이 글로벌 메뉴로 자리를 잡을 날도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