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에 침 뱉던 사람들이…세계에서 한식 문화가 가장 전통적으로 발달한 외국 지역

2025-02-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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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노역으로 조선인들이 많이 끌려간 곳

한식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한식 문화가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발달한 곳 중 한 곳을 꼽으라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이 아니라 바로 '사할린'일 것이다. 사할린은 어떤 곳이길래 한식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을까.

러시아 사할린 / Pototskiy-shutterstock.com
러시아 사할린 / Pototskiy-shutterstock.com
러시아 사할린 한 마을의 모습 / Andrei Stepanov-shutterstock.com
러시아 사할린 한 마을의 모습 / Andrei Stepanov-shutterstock.com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강제노역을 당해 사할린으로 끌려갔다. 일본은 석탄을 비롯한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이에 따라 수많은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 사할린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혹독한 노동을 강요당했고 광복 후에도 일본 정부가 이들을 방치하면서 귀국길이 막혔다.

이후 이들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거나 무국적자로 남으며 사할린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할린에 뿌리내린 한인들은 고된 삶 속에서도 전통을 지키며 한식 문화를 유지했다.

사할린 한인들은 고향의 맛을 잊지 않기 위해 제한된 재료 속에서도 한식을 만들어 먹었다. 한국에서 흔한 식재료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김치, 나물 반찬, 된장국 등을 변형된 형태로 재현했다.

김치 / bigshot01-shutterstock.com
김치 / bigshot01-shutterstock.com

배추김치는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젓갈 대신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고춧가루가 부족할 때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향신료를 활용했다. 된장국도 한국식 된장이 아닌 러시아산 발효된 콩 제품을 활용해 비슷한 맛을 냈다. 이러한 노력은 사할린 한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특히 사할린 한인들에게 고사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곳의 한인들은 봄철이면 산과 들에서 고사리를 채취해 말린 후 판매하거나 식재료로 활용한다.

고사리나물 무침 / Dr. Victor Wong-shutterstock.com
고사리나물 무침 / Dr. Victor Wong-shutterstock.com

이런 사할린 한인들의 삶은 2007년 방영된 SBS 특집 다큐멘터리 '사할린 고사리 빠빠르닉'을 통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방송에서는 사할린 한인들이 직접 고사리를 채취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들은 고사리를 손질해 나물로 만들어 먹거나 국에 넣어 끓였다. 현지 시장에서도 고사리는 인기 있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고 일부 러시아인들도 이를 활용한 요리에 관심을 보였다. 사할린에서 고사리는 단순한 생업 수단이 아니라 한국의 맛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

한식 문화는 사할린에서 러시아 음식과 융합되면서 독특한 변화를 겪기도 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수프인 보르시치에 김치를 넣어 감칠맛을 더한 요리가 등장했으며 한식 불고기와 러시아식 고기 요리를 접목해 양념 된 쇠고기를 사워크림과 함께 즐기는 방식도 생겼다. 러시아 전통 만두인 펠메니는 한식 만두의 영향을 받아 속 재료로 김치를 넣거나 간장 양념을 곁들이는 변형이 이뤄졌다. 이러한 음식들은 사할린 한인들뿐만 아니라 현지 러시아인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명태국 / photohwan-shutterstock.com
명태국 / photohwan-shutterstock.com

러시아인들이 처음부터 한식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한 사할린 한인은 "물고기를 바다에서 잡아가면 러시아 사람들이 침을 뱉었다"라며 "문어도 안 먹고 조개도 안 먹고 다시마도 안 먹고 해산물은 아무것도 안 먹고 침을 뱉었다"라며 한국 음식을 접하기 전 러시아인들의 과거 모습을 회상했다.

사할린에 살았던 한국인 노인도 "문어 보면서, 오징어도 보면 무섭다고 하던 사람들이다"라며 "우리가 (해산물을 요리해 먹는 방법을) 가르쳐 줬지만 이제는 (해산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얻어먹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 시절 러시아인들에게 돼지머리나 꼬리, 내장, 족발 등은 모두 버리는 부분이었으며 기껏해야 동물 사료였다. 한 사할린 대학 교수도 "(전통적인 한국 음식은) 사할린에서만 먹어봤다"라며 한식 문화가 발달하기 전 명태는 짐승 먹이나 고양이 밥으로만 썼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현재 한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는 김치찌개와 불고기를 찾는 현지인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일부 러시아인들은 직접 김치를 담그는 법을 배우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한국 음식을 만드는 업체의 작업반장은 사할린 현지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한국 반찬으로 명태회, 오징어무침, 숙주나물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식은 사할린에서 러시아 문화와 자연스럽게 융합되며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사할린에는 한국과 러시아 음식이 결합된 다양한 요리들도 등장하고 있다. 한국식 양념장을 사용한 러시아식 꼬치구이, 감자전을 활용한 한식 스타일의 러시아 팬케이크 등이 있다. 사할린 한인들은 여전히 명절이면 송편을 빚고 잡채를 만들어 먹으며 한국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명태찜 / mnimage-shutterstock.com
명태찜 / mnimage-shutterstock.com

사할린에서 한식 문화는 단순히 음식의 의미를 넘어 한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일본의 강제노역으로 인해 시작된 한인들의 사할린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들은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고 문화를 보존해 왔다. 지금도 한식은 러시아와의 문화적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한식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다.

유튜브, Nomad Kwon
home 한소원 기자 qllk338r@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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