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대부분이 잘 모르는 내용… 일본을 망하게 한 의외의 '생선'
2025-02-2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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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 데 있는 '생선' TMI
한국인 식탁에서 정어리는 찾기 쉬운 생선은 아니다. 대중적인 생선인 고등어나 갈치, 꽁치와 달리 정어리는 국내 소비량이 많지 않아 익숙하지 않은 존재다. 하지만 193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 바다에서 정어리는 흔히 잡히던 어종이었다. 특히 1923년부터 갑자기 동해에 엄청난 정어리 떼가 몰려들면서 한반도 어업 풍경을 바꿔놨다.
'50가지 기름 이야기 세상을 바꾼 한 방울' 책에 서술된 내용 등에 따르면 당시 정어리 떼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동해 바다는 바닷물 절반, 정어리 절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배가 정어리 떼에 부딪쳐 침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동해가 정어리로 넘쳐나자 이를 눈여겨본 것은 다름 아닌 조선을 지배하던 일본이었다.
일본은 서기 8세기부터 불교 영향을 받아 소, 돼지, 닭과 같은 육식을 금지하는 전통이 있었다. 대신 바다에서 단백질을 공급받았고, 그중 하나가 정어리였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이 되자 일본 근해의 정어리 자원이 고갈됐다.
이때 한반도 동해에서 엄청난 정어리 떼가 발견되자 일본 어부들은 앞다퉈 배를 몰고 와 무차별적으로 남획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일본 어선 한 척이 700마리에서 2천 마리까지 잡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일본이 정어리를 남획한 이유는 단순한 식량 확보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어리는 지방 함량이 높은 생선이다. 이를 활용해 일본은 '온유(鰮油)'라고 불리는 정어리 기름을 정제해 공업용으로 사용했다. 정어리 기름은 화약, 글리세린, 비료, 화장품, 마가린, 비누, 양초 등을 만드는 데 활용됐다. 특히 일본군에게 정어리 기름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원이 됐다.
1930년대 일본이 사용하던 석유 80%는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일본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일본이 중국 침략을 계속하자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규제할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일본 군부는 석유 수입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대체 자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조선 동해에서 대량으로 잡히는 정어리였다.
1935년 조선에서 생산된 정어리 기름은 10만 톤에 달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석유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40년에는 일본군이 사용할 기름 절반 이상을 정어리 기름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939년 120만 톤이었던 정어리 어획량은 1940년 90만 톤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1941년에는 63만 톤, 1942년에는 2500톤으로 급감했고, 1943년이 되자 정어리는 동해에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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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는 "해류의 변화로 정어리 떼가 사라졌다"고 발표했지만, 일부는 일본의 과도한 남획으로 인해 정어리 개체 수가 급감한 것이 원인으로 손꼽았다.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일본의 탐욕이 초래한 자원 고갈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은 동해 어족 자원을 마구잡이로 남획했다. 한때 '고래들의 바다'로 불릴 만큼 귀신고래가 많았던 동해에서 고래들이 사라졌고, 독도에 서식하던 강치도 남획으로 인해 멸종했다. 정어리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1943년 정어리 떼가 사라지면서 조선총독부는 조선 어부들에게 정어리 잡이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석유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어리도 잡히지 않으니 어선 운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이에 미국은 일본으로 수출하는 모든 석유를 끊어버렸다. 당시 일본이 비축한 석유는 3년 6개월분에 불과했다.
여기에 정어리 기름마저 사라지자 일본은 극심한 연료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1945년 일본군은 전쟁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연료 부족에 빠졌고, 같은 해 8월 15일 미국에 항복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조선에서는 정어리를 '일망치'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기에는 정어리가 일본을 궁지에 몰아넣은 생선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때 조선의 동해를 가득 메웠던 정어리는 일본의 탐욕적인 남획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했다. 결국 정어리 기름을 전쟁 자원으로 삼으려던 일본 계획은 무산됐고, 이는 일본이 전쟁을 지속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타격이 됐다. 일본을 패망으로 몰고 간 의외의 생선, 그것이 바로 정어리다.
한편 정어리는 청어과에 속하는 작은 바닷물고기로, 전 세계 온대 해역에서 서식하는 어종이다. 지방 함량이 높고 단백질이 풍부해 과거부터 중요한 식량 자원으로 활용돼 왔다.
정어리는 몸길이가 약 15~30cm 정도이며, 은백색 비늘과 길쭉한 몸통을 가지고 있다. 회유성 어종으로 대규모 떼를 지어 다니며,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특징이 있다. 번식력이 강해 개체 수가 빠르게 증가하지만, 남획이 지속되면 개체 수가 급감할 수 있다.
지방 함량이 높아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며, 주로 통조림, 훈제, 말린 생선, 젓갈 등의 형태로 가공된다. 또한 기름을 추출해 공업용(비료, 화약, 화장품, 마가린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어리는 현재 한반도 일부 지역에서 다시 어획량이 회복되고 있으며, 유럽,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어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