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이 금보다 비쌌는데… 지금은 집마다 하나씩 꼭 있다는 '국민 향신료'

후추는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향신료 중 하나다. 오늘날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후추지만, 과거에는 금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다. 특히 중세 유럽에서는 후추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유럽 탐험가들이 신항로 개척에 나섰던 이유 중 하나도 후추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후추에 대해 알아보자.

후추는 인도 남서부 말라바르 해안에서 기원했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인도에서 재배됐다. 이후 중국, 페르시아, 이집트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됐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후추가 중요한 무역품이었다.

로마인들은 후추를 동방에서 수입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세금이나 임금으로 후추를 사용할 정도였다. 로마가 멸망한 후에도 후추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았고,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과 상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후추는 운송 과정이 길고, 중개상이 많았기 때문에 유럽에서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아랍 상인들이 후추 무역을 독점하면서 가격이 더욱 치솟았다. 특히 중세 유럽에서는 후추 1파운드(약 450g)의 가격이 당시 노동자의 몇 개월 치 월급에 해당할 정도였다.

어떤 시기에는 후추 한 알이 금화 한 닢과 맞먹는 가치로 거래된 적도 있었다. 후추가 금처럼 귀한 향신료였기에 '검은 금(Black Gold)'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처럼 후추의 높은 가격은 탐험과 항로 개척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15세기 말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항해한 이유도 후추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이 후추 무역을 장악하면서 시장 경쟁이 치열해졌고, 가격이 점차 낮아졌다. 17세기 무렵에는 후추가 유럽 전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향신료가 됐지만, 여전히 가치는 높았다.

후추는 가공 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검은 후추로, 익지 않은 후추 열매를 수확해 건조한 상품이다. 매운맛과 강한 향이 특징이고, 여러 요리에 활용된다.

흰 후추는 완전히 익은 후추 열매의 껍질을 제거한 것으로, 검은 후추보다 부드러운 맛을 가진다. 녹색 후추는 미성숙한 상태에서 수확해 건조하거나 절인 상품이다.

후추의 주요 성분은 피페린(piperine)으로, 매운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피페린은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소화를 돕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과거에는 향신료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사용됐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후추를 감기, 소화 불량, 관절염 치료에 활용했다. 유럽에서도 후추는 흑사병을 예방하는 용도로 사용됐으며, 심지어 치료 약으로도 여겨졌다.

방부제로도 사용됐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 육류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후추를 뿌려 부패를 방지했다. 이러한 이유로 후추는 중세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부유한 가정에서는 후추를 대량으로 보관하며, 부의 상징으로 삼았다.

현재 후추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향신료 중 하나다. 예전처럼 희귀한 상품은 아니지만, 요리에 꼭 필요한 조미료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