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너무 흔해서 개밥으로 줄 정도였는데... 최고급 식재료 된 한국 생선

2025-02-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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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금값이 된 귀한 물고기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갈치가 진열돼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신선 냉장 갈치 수입가격은 1kg당 1만 3692원으로 전년 동월(7983원) 대비 71.5% 상승했다. / 뉴스1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갈치가 진열돼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신선 냉장 갈치 수입가격은 1kg당 1만 3692원으로 전년 동월(7983원) 대비 71.5% 상승했다. / 뉴스1
한때 서민들의 일상적인 반찬이었지만 이제 귀한 대접을 받는 고급 생선이 있다. 1980년대만 해도 다른 생선을 살 때 덤으로 얻을 수 있었고, 남은 살은 개밥으로 줄 정도로 흔했던 이 물고기가 이제는 금값이 됐다. 갈치. 길쭉한 몸통과 날카로운 이빨, 마치 무기를 든 전사처럼 심해를 누비는 물고기 갈치에 대해 알아봤다.
갈치 / 뉴스1 자료사진
갈치 / 뉴스1 자료사진

갈치는 어떤 생선일까. 갈치는 고등어목 갈치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그 독특한 외형과 맛으로 오랜 세월 인간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심해에 사는 갈치는 보통 50~100cm까지 자라지만 드물게 2.3m 길이에 6kg에 이르는 거대한 개체도 발견된다. 몸 전체를 덮은 은백색 펄은 구아닌이라는 물질로 이뤄졌는데, 이건 화장품이나 인조 진주 코팅에 쓰일 만큼 독특한 특징이다. 날것으로 먹으면 복통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익히면 문제없다. 심해어답게 조직이 말랑하고, 물 밖으로 나오면 높은 수압에 적응한 장기가 대기압을 견디지 못해 금세 죽어버린다. 그래서 살아있는 갈치를 보기란 쉽지 않다. 물속에선 꼿꼿이 서서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헤엄친다. 포항 신생대 마이오세 층에서도 출토될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한국에서 갈치는 예로부터 친숙한 생선이다. 구이, 조림, 국으로 다양하게 조리돼 밥상 위에 오른다. 갈치구이는 고소하고 담백한 맛으로 사랑받는다.

조림은 남해안 스타일로 얼큰하게 양념해 호박, 무, 감자와 함께 끓여낸다. 국물이 많아 조림과 찌개 중간쯤 되는 조림은 밥에 비벼 먹으면 밥도둑 소리를 들을 만하다.

국 요리도 있다. 제주산 갈칫국은 맑은 지리 스타일에 고추와 마늘로 비린내를 잡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싱싱한 갈치가 아니면 비린내가 강해질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긴 하다.

어린 갈치는 염장해서 말려 간식으로 즐기기도 한다. 내장은 따로 갈치속젓으로 담가 밥반찬이나 고기 쌈장 대용으로 먹는다. 감칠맛이 매우 뛰어나지만 독특한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갈치 맛은 어떨까. 구이는 고소함과 담백함이 조화를 이루고, 조림은 양념과 어우러져 깊은 감칠맛을 낸다. 뱃살은 기름져 부드럽고, 살집은 촉촉하면서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싱싱할 때는 회로 먹기도 한다. 지방이 많아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산지 주민들은 막걸리에 헹궈 기름기를 빼고 먹는다. 다만 회로 먹기에는 그다지 뛰어난 맛이 아니어서 고급 스시집에서도 드물게 취급된다. 냉동 갈치는 수분 손실로 맛이 떨어지니 생물과의 차이가 크다. 한국인에겐 추억과 정겨움이 깃든 맛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잔가시와 비린내가 낯설 수 있다.

외국에서는 갈치를 어떻게 먹을까. 일본에선 타치우오(太刀魚)라 부르며 초밥이나 회의 재료로로 사용한다. 운송 기술이 발달해 산지뿐 아니라 도쿄 고급 스시집에서도 가끔 보이지만, 활발하게 취급되진 않는다.

중국에선 다이위(带鱼)라 부르며 주로 튀기거나 찜으로 먹는다. 서양에선 커틀러스피쉬(Cutlassfish)라 불리는데, 식용으로 인기가 있진 않다. 낚시 중 걸리면 토막 내 미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다만 갈치를 먹는 문화권에서 서양식으로 변형해 파스타나 만두 재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예전엔 쌌던 갈치의 가격이 지금 비싸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1980년대까진 동해안에서 흔히 잡혀 연평균 12만 톤이 넘었다. 어시장에서 고등어 한 손 사면 갈치 토막을 덤으로 안겨줄 정도였다. 1960년대엔 말린 갈치 조각을 간식으로 먹거나 개밥으로 줄 만큼 넘쳐났다. 당시엔 고등어보다 쌌다.

21세기로 넘어오며 상황이 역전됐다. 어획량이 줄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현재 갈치는 고급 생선의 대명사다. 이유가 뭘까.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갈치는 난류성 어종이다. 수온이 올라가면 개체 수가 늘어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이상기온으로 어획량이 전년 대비 10배나 폭증해 경매장에 갈치가 넘쳐났다. 그럼에도 가격이 내리지 않았다. 남획과 유통 구조 탓이다.

경쟁적인 남획이 문제다. 성어가 되기 전 새끼 갈치, 즉 풀치까지 마구잡이로 잡아 개체 수가 급감했다. 풀치는 방파제에서도 쉽게 낚이는 어종이라 8~10월이면 낚시배가 몰려든다. 방송에서 풀치가 소개되며 남획이 더 심해졌다. 정부가 7월을 금어기로 지정하고 항문장 18cm 미만 포획을 금지했지만 효과가 미비하다. 유통도 문제다. 경매 독점, 유통 담합, 소매점 간 부당 거래 등이 얽히며 정상적인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 다만 갈치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러 이유가 얽혀 서민 생선이었던 갈치는 명절 할인 행사로 반값에 사도 비싸게 느껴질 만큼 귀한 생선이 됐다.

갈치는 한국에서만 특별한 게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칼을 닮은 외형 덕에 비슷한 이름으로 불린다. 영어로는 커틀러스피쉬, 러시아어로는 사브랴 릐바(세이버 물고기), 포르투갈어로는 페이세 에스파다(칼 물고기)다. 일본의 타치우오도 태도(칼)를 뜻한다. 중국어 다이위는 끈 물고기란 뜻으로 예외지만, 방언으론 칼과 관련된 이름이 쓰인다. 한국에선 칼의 옛말 ‘갈’과 물고기 접미사 ‘치’가 합쳐져 갈치라 불렀고, 사투리로 칼치라 부르는 이도 많다. 이처럼 갈치는 외형만큼이나 이름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갈치조림 만드는 법 / 요리왕비룡 유튜브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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