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귀신 머리카락 같은 비주얼... 외국인들이 보면 기겁한다는 한국 수산물
2025-02-2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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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만 국으로 끓여 먹는다는 한국 해산물

겨울바람이 온몸을 할퀴는 계절.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녹색 실타래가 국물에 녹아드는 순간 마음까지 뜨뜻해진다. 매생이. 바다에서 갓 건져낸 신선함,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따뜻함, 그리고 소박한 맛 속에 깃든 영양까지. 거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식재료라는 점까지. 이 신비로운 해조류는 한국의 겨울을 대표하는 별미로 어느덧 자리 잡았다. 한 숟갈 떠먹는 순간 바다의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는 매생이에 대해 알아봤다.
매생이는 갈매패목에 속하는 녹조류다. 짙은 녹색을 띠며 머리카락보다 더 가는 실처럼 생겼다. 처음 보면 그 생김새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한번 맛보면 부드러운 식감과 깊은 향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바다 내음이 진하게 느껴져 삼키면 목구멍에서 바다가 올라오는 듯한 착각을 준다. 파래와 비슷해 보이지만 훨씬 가늘고 미끈거리는 점이 다르다. 깨끗한 바다에서만 자란다는 점도 매생이의 특징이다.
한국에서 매생이를 언제부터 먹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드물지만, 최소한 조선 시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야 섭취의 기원을 그나마 어림짐작할 수 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매생이에 대해 "누에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른다"고 묘사한다. 빛깔은 검푸르며,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워 서로 엉키면 풀리지 않는다고 썼다. 맛은 달고 향기롭다고 했다. 당시에도 이미 식재료로 사랑받았음을 알 수 있다. 장흥군에서 진상품으로 바쳐졌다는 기록도 있기에 단순한 잉여 수산물이 아니라 귀한 음식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다만 운반과 보관이 어려워 해안지방에 머물렀고, 전남 지역 외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귀신 머리카락처럼 생겼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일부 동양권 외국인은 귀신 머리카락처럼 생겨 먹기 무섭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매생이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남 산지에서만 주로 소비됐고 대도시엔 낯선 식재료였다. 그러다 만화 ‘식객’에서 매생이국 에피소드가 소개되며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계기로 매생이는 남도의 숨은 별미에서 전국적인 겨울 음식으로 떠올랐다. 수확철은 11~2월이다. 한철 음식이었지만 냉동 보관 기술이 발달한 덕에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다. 전남 완도군 고금면에서 연간 2600톤을 생산하며 국내 매생이의 60%를 책임진다.
매생이를 요리하는 법은 다양하다. 가장 흔한 건 매생이국이다. 굴을 넣고 끓이는 게 대표적이다. 육수를 낸 뒤 굴을 넣고 끓이다가 매생이를 살짝 넣어 끓여낸다. 너무 오래 끓이면 녹아버리니 주의해야 한다. 청양고추를 썰어 넣으면 얼큰한 맛이 더해져 매력이 배가 된다. 죽으로 만들 땐 쌀과 함께 끓여 부드럽게 즐긴다. 무쳐서 먹을 땐 매생이를 데친 뒤 양념장에 버무린다. 떡국에 넣으면 색다른 풍미를 부여한다. 부침개로 먹으려면 매생이를 반죽에 섞어 바삭하게 부친다.
달걀말이에 매생이를 넣어 돌돌 말아도 별미다. 최근엔 인스턴트 매생이 라면까지 등장했다. 파스타에 접목한 퓨전 요리도 있다. 건조 블록 형태로 판매돼 물만 부으면 간편하게 먹을 수도 있다. 장흥군에선 염산 대신 유기산을 써 김을 가공하며, 이 과정에서 깨끗한 매생이가 생산된다. 장흥 매생이는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돼 품질을 인정받는다. 요리 전엔 반드시 세척해야 한다. 바다에서 온 이물질, 나뭇조각이나 비닐이 섞여 있을 수 있기에 손으로 꼼꼼히 골라내야 한다.
매생이는 영양도 풍부하다. 철분이 100g당 43.1mg이나 함유돼 있다. 우유보다 40배 많은 양이다. 그런 만큼 빈혈 예방에 좋다. 칼륨, 아이오딘, 칼슘이 뼈 건강과 어린이 성장에 도움을 준다. 아스파라긴산과 비타민은 숙취 해소에 탁월하고,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주목받는다. 식이섬유가 많아 포만감을 주고, 비타민은 피부 미용에도 효과적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매생이를 먹을까? 일본에선 카푸사아오노리라고 부른다. 한국처럼 국이나 죽으로 먹기보단 건조해 가루로 만들어 밥에 뿌리거나 반찬으로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적인 식재료는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선 매생이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해조류 요리가 익숙하지 않은 문화 탓에 비슷한 식재료도 드물다. 중국인들은 해조류를 많이 먹지만 매생이와 정확히 일치하는 식재료가 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그중에서도 대체로 한국에 국한된 식재료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최근 한국을 다녀간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매생이국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일본 현지에서도 매생이국을 소비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엔 김 양식장에서 매생이를 없애려 염산을 뿌리기도 했다. 매생이가 김 품질을 떨어뜨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산 사용은 환경 오염 우려로 금지됐고, 지금은 유기산으로 대체됐다. 이 과정에서 매생이는 김 양식장 잡초에서 별미로 재조명받게 됐다. 냉동 기술 발달과 미디어 노출로 매생이의 인기는 계속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