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드라마 시장, 이제는 제작비 칼질해야 살아남을까
2025-02-2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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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 다른 용도로 바꾸는 게 낫다고 생각된다”
영화 1편을 보기 위해 관람객 1명이 실제로 낸 돈이 3년 만에 9000원대로 하락했다. 평균 관람 횟수, 극장 수, 스크린 수도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24년 한국영화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관 관람권 전체 매출액을 전체 관객 수로 나눈 값인 영화관 평균 관람 요금은 9702원으로 전년(1만 80원)보다 3.8% 하락했다.

멀티플렉스 3사의 주말 성인 관람권 정가(1만 5000원) 중 실제 지불된 금액은 64.7%에 불과했다. 이는 해외 영화 흥행 부진으로 인해 특수상영(아이맥스, 4D, 스크린X 등) 관람이 줄어든 데다, 할인 프로모션 활용이 증가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특수상영 매출액은 759억 원으로 전년 대비 32.5% 감소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일부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히트맨2'(제작비 85억 원)는 230만 명, '검은 수녀들'(제작비 103억 원)은 160만 명을 동원했다. 특히 '검은 수녀들'은 배우 송혜교의 글로벌 인지도를 바탕으로 개봉 전부터 160개국에 선판매되며 비교적 낮은 손익분기점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제작비 절감이 흥행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극장 시장의 위축과 함께 영화 제작자들은 배급 경로를 영화관으로 할지, OTT로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영화 관람 요금이 낮아졌음에도 관객 수는 기대만큼 증가하지 않았으며, 소비자들은 점점 OTT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OTT는 가격 경쟁력이 높고,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편리함이 있어 선호도가 증가하고 있다.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는 여전히 영화관에서 보는 재미가 크겠지만, 소규모 영화들은 OTT를 통해 감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위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관객이 영화관을 찾지 않는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 행동이 한 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라며 "OTT는 가격적인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고, 퇴근 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편리함이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선호되고 있다.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는 여전히 영화관에서 보는 재미가 크겠지만, 소규모 영화들은 OTT로 보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질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영화관을 다른 용도로 바꾸는 게 낫다고 생각된다"며 "특정 영화를 제외하고 상영관 수를 줄이면서 오락 스테이션 형태로 바꾸지 않으면 운영이 어려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OTT 시장에서는 넷플릭스가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달 넷플릭스 월간 사용자 수는 1416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월(1317만 명) 대비 99만 명 증가한 수치다. 이어 쿠팡플레이(760만 명), 티빙(626만 명), 웨이브(272만 명), 디즈니플러스(236만 명), 왓챠(69만 명) 순으로 집계됐다. 넷플릭스의 사용 시간 점유율도 61.1%에 달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성장세는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와 '중증외상센터'의 연이은 흥행 덕분으로 분석된다.
이에 국내 OTT 시장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SBS, KBS, MBC 등 지상파 3사와 웨이브가 체결한 콘텐츠 독점 계약이 만료된 가운데, SBS와 MBC가 각각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에 구작과 신작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OTT 업체들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업계에 따르면 티빙은 지난달 모바일인덱스 기준 OTT앱 월간 MAU는 733만명으로 집계됐다. 전월대비 1.1% 증가했지만 지난해 11월 수준에 그쳤다. 티빙은 지난해 10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영향에 MAU가 810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이후 프로야구가 끝나자 MAU가 대폭 줄었다. 프로야구가 끝난 지난해 11월부터는 MAU가 730만명으로 10%나 빠졌다. 지난해 12월에는 725만명으로 더 떨어졌다.
현재 토종 OTT들은 차별화된 콘텐츠를 선보이며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티빙의 경우 KBS와 협력해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강화하며, '태양의 후예', '쌈, 마이웨이', '구르미 그린 달빛', '화랑' 등의 명작 드라마를 순차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또 사극 드라마 '원경'을 통해 강력한 스토리라인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원경'은 15세 시청 버전은 tvN에서, 19세 시청 버전은 OTT인 티빙을 통해 제공하는 독특한 방영 방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외에도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장르물 ‘스터디그룹’은 OTT 플랫폼의 특성을 잘 살려 대사와 연출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드라마는 학원물을 소재로 하지만, 특히 40대 이상의 중년층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웨이브는 두뇌 서바이벌 장르의 특성을 살려 더욱 잔혹하고 긴장감 넘치는 ‘피의 게임’을 선보이며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다.
이 교수는 "국내 OTT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지만, 결국 핵심은 자본과 콘텐츠의 경쟁력이 중요하다"라며 "정부 개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영화 및 드라마 제작 시장에서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신인 배우를 기용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유명 배우 없이도 연극이나 독립영화에서 경험을 쌓은 신인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제작비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 배우가 없는 작품은 초기 흥행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 해외 시장 및 특정 팬층을 겨냥해 아이돌 가수를 영화배우로 기용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트와이스 멤버 다현의 경우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통해 연기에 도전한다. 트와이스로 데뷔한 지 10년 만이다. 이 영화는 철없던 열여덟 살, 한 소녀에게 깊이 빠져 있던 학창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담은 작품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2011년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그룹 B1A4 출신 배우 진영과 다현이 남녀 주인공을 맡아 호흡을 맞췄다. 진영이 10대부터 20대까지 선아만을 바라보는 순정파 진우 역을, 다현이 진우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선아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인기 아이돌이 연기자로 전향할 경우, 연기력이 부족하면 소비자들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어 신중한 캐스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히 팬층을 고려한 캐스팅보다는 연기력과 캐릭터 적합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 교수는 "아이돌이 연기자로 전향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연기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다"며 "단순히 팬층을 고려한 기용보다는 연기력과 이미지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