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신발끈으로 썼는데…전 세계서 한국인만 먹는다는 '의외의 음식'
2025-02-20 17:13
add remove print link
징그러운 외모와 특이한 생태 때문에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인만이 즐겨 먹는 독특한 식재료
4억 년의 역사를 지닌 원시 어종이자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곰장어. 징그러운 외모와 특이한 생태 때문에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인만이 즐겨 먹는 이 독특한 식재료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함께 발전해온 특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꼼장어, 먹장어, 묵장어, 꾀장어, 푸장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생물은 원래 '먹장어'가 정식 명칭이었으나,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곰장어'도 현재는 올바른 표기로 인정받고 있다. 흔히 장어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종이다.
곰장어는 다른 물고기에 달라붙어 살과 내장을 파먹고 살아가는 기생 어류다. 가장 큰 특징은 턱이 없다는 점이다. 대신 머리에 있는 둥근 구멍 하나가 입이자 항문 역할을 하는 원구류에 속한다. 거무튀튀한 몸통은 끈적끈적한 점액으로 덮여있어 보기에도 식욕을 자극하지 않는다. 장어를 즐겨 먹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조차 이 특이한 외모 때문에 곰장어는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제주도 근처 남해와 일본 중부 이남에 걸친 북서태평양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곰장어는 야행성 어류로, 연안의 얕은 바다 밑에서 활동한다. 산란기가 되면 더 깊은 바다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특히 부산 기장 앞바다는 예로부터 곰장어가 많이 잡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런 곰장어가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곰장어의 가죽은 특이한 성질 때문에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반 가죽과 달리 물에 젖어도 말리면 원상태로 완벽하게 복원되는 특성 덕분에 지갑, 구두, 벨트, 가방은 물론 일본 전통 나막신인 게다의 끈과 모자챙 등 다양한 가죽제품의 재료로 사용됐다. 이런 수요 때문에 대부분의 곰장어 가죽은 일본으로 수출됐다.
가죽만 벗겨진 곰장어 살은 부산 아지매들의 손끝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가죽 공장들에서 나온 부산물인 곰장어를 시장 상인들이 저렴하게 구입해 매운 양념을 발라 연탄불에 구워 팔기 시작한 것이다. 6·25 전쟁을 거치며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부산 자갈치시장의 저렴한 안주로 자리 잡은 곰장어는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곰장어 가게들은 197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골목을 형성하게 됐다. 현재 자갈치시장 곰장어 골목에는 100여 개의 식당과 노점이 성업 중이다. 대부분 30~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들 식당은 그만큼 오랜 세월 단골을 지켜오며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영양학적으로도 곰장어는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비타민 A, E와 칼슘이 풍부해 피로회복과 기력 증진에 도움을 주며, 오메가-3와 레티놀 같은 지방산이 혈관 건강에 이롭다. 단백질이 풍부해 면역력 강화에도 효과적이며, 특히 DHA와 EPA는 두뇌 발달과 치매 예방, 암 억제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선한 곰장어를 고를 때는 표피가 두껍고 윤기가 있으며, 눈이 투명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냉동 보관 시 영하 25도에서 0도 사이의 온도에서 약 1개월간 보관이 가능하지만, 한번 해동한 것을 다시 냉동하면 맛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곰장어를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뜨거울 때 먹어야 한다. 식으면 특유의 냄새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연탄불에 구운 매콤한 곰장어를 상추에 싸서 한입에 먹고 소주 한 잔을 곁들이는 것이 정석이다. 부산 기장에서는 짚불구이로도 즐길 수 있는데, 짚불에 구우면 가죽은 새카맣게 타고 속살은 하얗게 익어, 탄 가죽을 벗기고 하얗게 익은 속살을 기름장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이렇게 한국인의 독특한 식문화를 대표하는 곰장어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이라는 고단한 현대사 속에서 탄생한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다. 가죽은 일본으로 수출되고 남은 살코기로 시작된 곰장어 요리는 이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독특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맛과 영양가로 사랑받는 곰장어는 오늘도 부산을 찾는 미식가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