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일본에 수출했지만... 이젠 오히려 일본서 수입해먹는 한국인 최애 수산물
2025-02-1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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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선이 불과 10년 만에 한국의 대표적 겨울 음식 된 이유

겨울이 되면 서울 연남동의 한 횟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방어 철이 시작되면서 많은 이들이 대방어를 맛보기 위해 몰려드는 것이다. 이곳은 국내에서 10kg 이상의 대방어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횟집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이면 전국 어디서든 대방어 인기가 높아진다. 11월 말부터 SNS에는 방어 관련 사진과 게시물이 넘쳐난다. 방어 맛집을 찾아다니며 인증하는 문화도 자리 잡았다. 이제 방어는 한국의 대표적인 겨울 음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한국에서 방어가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방어는 예전부터 국내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이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됐다. 최근 10년 사이에 급격히 인기가 높아졌고, 이제는 겨울이 되면 방어회를 찾는 사람이 급증하는 상황이다. 방어회가 이렇게 갑자기 한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이유가 뭘까. 유튜버 김바비(김영준)가 최근 유튜브 채널 일사에프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나섰다.
방어는 쫀득한 식감과 기름진 풍미가 특징이다. 머리부터 껍질, 등살, 뱃살, 배꼽살, 가맛살까지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다. 신선한 내장은 수육으로도 즐길 수 있다.
역사적으로 방어는 한국에서 흔하게 잡히는 어종이었다. 조선 시대 실록을 보면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에서 방어가 많이 잡혔다고 기록돼 있다. 지금은 제주도가 주산지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동해안에서 많이 잡혔다. 방어진이라는 지명도 방어가 많이 잡히던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방어는 겨울철에 맛이 가장 좋다. 산란을 준비하면서 기름기가 올라 풍미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먹었던 방어는 여름철에 잡힌 것이 대부분이었다. 여름 방어는 기름기가 적고 맛이 덜하다. 개도 안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선호도가 낮았다. 하지만 겨울철 방어는 제주도 인근에서만 잡혔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다. 1980, 1990년대 이후 제주에서 잡힌 방어를 육지로 운송하는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겨울 방어가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방어는 크기가 크기 때문에 보관이 쉽지 않았다. 고등어처럼 염장하는 것도 어려웠다.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박찬일 셰프는 "살이 오른 방어는 거대한 포탄처럼 생겼다"고 표현하기도 할 정도다. 여름 방어는 맛이 없어서 염장할 필요도 없었고, 함경도에서는 방어를 잡아 기름을 짜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방어가 예전부터 고급 어종으로 취급됐다. 일본에서는 참치와 함께 방어가 가장 인기 있는 생선 중 하나였다. 일본 근해에서 겨울 방어가 많이 잡혔고, 방어잡이 기술도 일찍부터 발달했다.
일본의 방어잡이 기술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많은 일본인이 한국으로 건너왔고, 방어잡이 기술도 전해졌다. 그전까지 방어는 한국에서 다른 생선을 잡다가 덤으로 잡히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본격적으로 방어를 잡기 시작했다. 매년 수천 톤씩 잡힐 정도로 어획량이 증가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방어 생산량이 급감했다. 일본인이 떠나면서 방어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한국은 방어 치어를 잡아 일본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일본이 방어 양식을 본격화하면서 치어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방어 양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한국에서 처음 양식을 시도한 생선은 광어가 아니라 방어였다. 1968~1970년 여수 국립수산진흥원 가두리 양식장에서 방어 양식이 시험적으로 이뤄졌다. 광어 양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1986년이다. 방어 양식이 훨씬 빨랐던 셈이다.
방어는 봄에 산란한다. 6개월 정도 자라면 1kg 크기가 된다. 이렇게 자란 방어 치어를 일본으로 수출했다. 다만 완전히 키워서 수출하는 것은 어려웠다. 겨울철이 되면 바닷물이 너무 차가워 방어를 더 이상 양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어 양식은 자연산 방어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자연산 방어의 어획량도 증가했다. 1970년대까지 방어 생산량은 연간 1200톤 정도였지만, 1980년대에는 3000~5000톤까지 증가했다. 양식 방어 생산량도 연간 1000톤 이상으로 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일본의 방어 소비가 정체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방어 수출량도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방어 양식을 지속할 필요성이 감소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방어를 많이 소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광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한국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고급 생선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고, 당시 광어는 방어보다 두 배 비싼 고급 어종으로 취급됐다.
2000년대까지도 한국에서 방어의 인기는 높지 않았다. 당시까지 한국의 회 문화는 활어회 중심이었다. 숙성회는 외면받았고 갓 잡은 광어나 돔 같은 흰 살 생선이 인기를 끌었다. 방어는 크기가 커서 한 번에 소비하기 어렵고 주로 숙성시켜 선어로 먹어야 했는데, 이는 쫄깃한 흰 살 생선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생소했다.
2000년대 들어 참치가 유행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참치는 방어와 비슷한 맛과 특성을 가졌지만 더 고급 어종으로 인식됐다. 참치를 통해 선어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지만, 참치가 방어의 상위 호환 격으로 여겨져 방어의 인기는 여전히 낮았다.
방어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제주도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현지에서 즐겨 먹던 방어를 육지 사람들이 접하게 됐고, 블로그에 리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한 방어 전문점이 TV 프로그램 '식신로드'에 소개됐고, '무한도전' 등 예능에서도 다뤄지면서 대중에게 익숙해졌다.
2010년대 초반 일본식 선술집이 늘어나면서 숙성회 문화도 확산됐다. 또한 연어회의 인기가 방어회 수요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청년층은 광어나 우럭보다 연어를 선호했는데, 2010년대 초반 연어 수입량은 연간 2만 톤을 넘었다. 붉은 살 생선 특유의 지방질 맛을 즐기게 된 소비자들이 방어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2010년대 중반 2030 세대가 방어를 찾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14년 142톤이던 방어 수입량은 2015년 300톤, 2019년에는 2,250톤까지 증가했다. 현재는 약 3000톤을 수입하는데, 대부분이 일본산이다. 과거 일본에 방어를 수출하던 한국이 이제는 일본의 양식 방어를 수입해 먹는 상황이 됐다.
방어의 계절성은 과거에는 대중화를 막는 요인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강점이 됐다. 특별한 음식을 찾는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겨울에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격이 많이 올랐음에도 '이때가 아니면 못 먹는다'는 인식 때문에 수요가 꾸준하다.
방어는 부위별로 맛이 달라 큰 것을 시켜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지만, 지방이 많아 쉽게 물리는 특성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함께 먹기에 적합하다. 이러한 특성은 연말연시 모임 음식으로 자리 잡는 데 한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