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표 한 장이 4000원도 안 돼... 극장들 '이게 말이 되느냐' 폭발
2025-02-13 08:55
add remove print link
헌혈할 때 주는 답례품 영화 티켓을 둘러싼 논란
헌혈할 때 주는 영화 티켓의 원가는 얼마일까.
대한적십자사가 헌혈 답례품으로 제공하는 영화 관람권을 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대량 구매하면서, 영화계가 ‘가격 후려치기’라며 반발하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13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적십자사는 지난달 22일 영화 티켓 65만 3000여 장의 공급처를 찾는 입찰 공고를 냈다. 배정된 예산은 32억 6000여만 원. 티켓 한 장당 5000원 수준이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헌혈 기념품 영화 티켓. / 당근마켓](https://cdnweb01.wikitree.co.kr/webdata/editor/202502/13/img_20250213084456_8a2f6d4c.webp)
입찰엔 롯데시네마만 단독 참여했다. 협의 끝에 이달 6일 티켓 한 장당 3924원에 수의계약이 체결됐다. 이는 평일 기준 정가(1만 4000원)의 28%에 불과한 금액이다. CGV와 메가박스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적십자사는 매년 130만 장 이상의 영화 관람권을 구매하는 주요 고객임에도 멀티플렉스 3사 중 2곳이 입찰을 포기했다. CGV와 메가박스는 적십자사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요구하며 극장 간 출혈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해 입찰을 포기했다.
적십자사가 책정한 영화 티켓 예산은 2020년 상반기부터 작년 하반기까지 대부분 장당 6000원이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예산은 5000원으로 줄었다.
영화계는 적십자사가 제시하는 기초 금액이 터무니없이 낮다고 지적한다. 기초 금액은 입찰 시 참고하는 기준 가격인데, 일반적으로 기초 금액의 80% 수준에서 낙찰가가 결정돼 왔다.
2020년 상반기 5800원이던 기초 금액은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상반기에는 4500원까지 내려갔다. 당시 낙찰가는 3621원으로, 정가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적십자사는 영화 티켓 외에도 편의점 교환권과 모바일 상품권을 답례품으로 활용하는데, 이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편의점 교환권과 모바일 상품권의 정가는 각각 8000원이지만, 적십자사가 제시한 기초 금액은 7800원과 7600원이었다.
영화계는 코로나19 이후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적십자사가 지나친 가격 경쟁을 조장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130만 장이라는 물량이 보장된 만큼 극장들은 남는 게 없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해 왔다면서 가격이 계속 내려가면 결국 기초 금액이 바닥을 치고 출혈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티켓 가격이 영화 제작 환경과 콘텐츠 품질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극장과 배급사는 티켓 판매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다. 따라서 티켓 가격이 낮아지면 배급사의 수익도 줄어, 결국 신작 제작에 투자할 여력이 감소하게 된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티켓 가격 문제는 극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는 현재 객단가(관객 1인당 평균 입장권 가격) 9700원도 이미 너무 낮아 제작사와 배급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3900원대로 티켓을 판매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적십자사는 과거 입찰·계약 사례를 검토하고, 계약 성사 가능성을 고려해 예산과 기초 금액을 책정했다는 입장이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국가계약법에 따라 투명하게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예산 절감은 국가기관이 지향해야 할 기본 원칙이며 명확한 근거 없이 예산을 증액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