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인 자리서 폭언·망신 비일비재…오요안나 지인들, 괴롭힘 폭로하며 학을 뗐다
2025-02-0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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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생전 “살면서 이렇게 토할 정도로 울어본 적이 없다” 하소연하기도
MBC가 지난해 숨진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유족에게 사망 관련 진상조사위원회 참여를 제안했으나 유족이 거절했다. 유족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MBC 기상캐스터로 활약했던 고 오요안나의 생전 모습 / MBC뉴스](https://cdnweb01.wikitree.co.kr/webdata/editor/202502/07/img_20250207081615_3e3c5800.webp)
7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MBC는 최근 오요안나 유족에게 진상조사위원회 참여를 제안했다. 그러나 유족은 "MBC가 이번 사건을 중하게 여겼다면 처음부터 유족에게 연락했을 것"이라며 "이제 와서 진상조사위에 참여하라는 건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MBC는 첫 입장문에서 '프리랜서인 오요안나'라며 회사와 선을 그으려고 했다"라며 "죽음에 대한 회사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었다. 이번 일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요안나와 같은 을과 병들의 죽음에 경종을 울렸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앞서 오요안나의 사망 후 그가 생전 휴대폰에 남긴 유서가 발견되며 생전 직장 동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MBC는 지난 3일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했다.
MBC는 지난달 31일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에 법무법인 혜명의 채양희 변호사를, 외부 위원으로는 법무법인 바른의 정인진 변호사를 위촉했다"라고 했다.
![기상캐스터로 활동했던 고인의 생전 모습 / 오요안나 인스타그램](https://cdnweb01.wikitree.co.kr/webdata/editor/202502/07/img_20250207081644_a94dae64.webp)
오요안나가 생전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유족의 증언과 관계자들의 주장이 쏟아지며 고인의 지인들도 입을 열었다. 지인들은 고인이 선배들의 괴롭힘에 대해 자주 하소연했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고인이 생전 지인들에게 하소연한 내용이 담긴 메신저 대화 내용도 공개했다.
고인의 지인들은 그를 '일을 사랑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고인의 중학교 친구 A씨는 "비정규직이다 보니 신분이 불안정해 돈을 아끼겠다며 회사 숙직실에서 3개월 동안 생활하기도 했다"라며 "불편했을 텐데 '택시비도 아낄 수 있고 새벽 방송에 늦을까 봐 걱정도 안 해도 된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친구끼리 모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요안나는 'MBC 기상캐스터가 된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입사가 비극이 될 줄 몰랐다"라고 털어놨다.
지인들이 고인에게 생전 들은 것에 따르면 고인의 선배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폭언을 하는 등 망신을 주거나 당일 방송을 대신 해달라고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발음이나 방송 태도 등으로 꾸짖는 일도 많아 고인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지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고인의 고등학교 친구 B씨는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 나가서 '너무 잘 됐다'고 했더니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고 하더라"라며 "선배들이 '네가 뭔데, 뭘 할 수 있길래 거기를 나가느냐'며 더 뭐라고 했다고 했다"라고 했다.
![오요안나 인스타그램](https://cdnweb01.wikitree.co.kr/webdata/editor/202502/07/img_20250207081705_eba96063.webp)
B씨는 지난해 9월 16일 고향인 광주에서 고인과 만나기로 했었다며 사망 전날인 같은 달 14일 오후 고인과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대화에 따르면 고인은 "할 말이 너무 많아. KTX도 예매했으니 곧 만나자"라고 말했다. B씨는 "평소 '회사에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항상 죄송합니다를 달고 산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어느 날은 '내가 살면서 이렇게 토할 정도로 울어본 적이 없다'고 한 적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나서 잘 위로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대학교 후배 C씨는 고인을 '착하고 속 깊은 든든한 언니'라고 불렀다. 장애를 가진 C씨는 고인과 학교 장애인 도우미 활동으로 연을 맺었다. C씨는 "언니가 학사관리부터 필기까지 도와줬는데 졸업하고 더욱 친해졌다"라며 "사망 3일 전쯤 '이제 선선해졌으니 만나자. 휠체어 다니기 좋은 장소를 찾아볼게'라고 한 게 마지막 대화였다"라고 말했다.
C씨는 "언니가 그렇게까지 힘든 줄 모르고 내 직장 생활 하소연을 했는데 그때마다 '절대 억울한 채로 있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조언해 줬다"라며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까 싶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