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사기] 전세 계약 후 경매로 날아간 내 보증금… 공인중개사도 책임진다
2025-02-0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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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부동산, 전세 계약 전 필수 확인 사항
공인중개사의 책임 강화… 법적 보호 장치 필요
[대전•세종=위키트리 양완영 기자] 전세 계약을 맺고 안정적인 거주를 기대했던 A씨는 2년 만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오피스텔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계약 당시 집주인과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믿었지만 신탁 사기라는 함정에 빠져 전세금을 모두 잃고 말았다
A씨가 전세 계약을 체결한 오피스텔은 등기상 신탁회사 명의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집주인은 이를 숨긴 채 자신이 소유자인 것처럼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집주인은 신탁회사의 수익증서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이 대출을 갚지 못하자 은행은 해당 부동산을 경매로 넘겼다. A씨는 순식간에 보증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문제는 이러한 전세 사기가 단순한 개인의 실수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탁 부동산에 대한 임대차 계약은 신탁회사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를 명확히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인중개사가 이를 정확히 설명해 주지 않으면 임차인은 집주인이 계약 권한이 없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전세 계약을 체결하기 전, 등기부등본을 통해 신탁등기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신탁부동산의 경우 ‘갑구’에서 소유권이 신탁회사 명의로 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하며, ‘을구’에서는 ‘신탁 설정’ 여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여기서 신탁이 설정되어 있다면 추가로 ‘신탁원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이 문서는 내용이 복잡하여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석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사건번호 대법원 2023다224327 판결에서 대법원은 공인중개사가 신탁부동산의 소유권 관계와 법적 의미를 임차인에게 성실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신탁부동산의 경우 신탁회사의 동의 없이 임대차 계약이 체결될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판결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신탁원부를 제시하고, 해당 부동산의 소유자가 신탁회사임을 알리는 것은 물론, 임대차 계약이 임대인 개인 소유가 아닌 부동산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또한, 신탁회사의 사전 승낙이나 사후 승인이 없는 경우 임차인이 신탁회사에 대항할 수 없다는 점도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신탁부동산을 둘러싼 전세 사기에서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사례로, 중개업자의 법적 책임을 보다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세 계약이 더 이상 ‘믿고 맡기는’ 거래가 될 수 없는 시대다. 임차인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계약서뿐만 아니라 등기부등본과 신탁 관련 서류를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공인중개사의 설명만을 맹신하지 말고, 필요할 경우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