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은 써서 안 먹는데... 한국인들은 지폐에 그릴 정도로 많이 먹는 식재료

2025-02-04 16:58

add remove print link

중국도 한약재나 차의 재료로 사용... 한국인들은 밥상 위에 올린다

도라지는 꽃이 예뻐 관상용으로도 기르는 식물이다. / 뉴스1
도라지는 꽃이 예뻐 관상용으로도 기르는 식물이다. / 뉴스1

한국인들이 즐겨 먹지만 서양에서는 거의 소비되지 않는 특별한 식재료가 있다. 도라지. 한국에선 5000원권 지폐 뒷면에 그려져 있을 정도로 친숙하지만 서양인들은 거의 식용하지 않는 도라지에 대해 알아본다.

도라지 / 뉴스1
도라지 / 뉴스1

도라지는 초롱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생한다. 줄기는 곧게 자라며, 줄기에 톱니 모양의 잎이 세 개씩 마주보고 달린다. 키는 1~1.5미터까지 자란다. 꽃말은 '소망', '영원한 사랑'이다.

도라지 뿌리는 약용으로 사용된다. '길경(桔梗)'으로 불린다. 주로 추운 지방에서 잘 자란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식재료로 사용되는 도라지 뿌리는 특유의 아린 맛과 쓴맛으로 인해 조리 과정에서 특별한 처리 과정을 거친다. 껍질을 벗긴 후 소금물에 반복적으로 우려내거나 데쳐서 맛을 부드럽게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렇게 처리된 도라지는 무침·튀김·전·차 등 다양한 형태로 조리되며, 특히 추석과 설 명절에 차려지는 나물 반찬 중 하나로 빠지지 않는 자리를 차지한다.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에 콩나물, 고사리 등과 함께 도라지 나물이 식탁에 오른다.

도라지는 5000원권 지폐에도 등장할 정도로 한국인에게 친숙하다. 그림은 신사임당이 그린 것이다.
도라지는 5000원권 지폐에도 등장할 정도로 한국인에게 친숙하다. 그림은 신사임당이 그린 것이다.

도라지는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조리법은 도라지무침이다. 손으로 찢어낸 도라지에 고추장·설탕·다진 마늘·참기름을 넣고 버무리는 이 음식은 쌉쌀한 맛과 아린 맛이 조화를 이뤄 밥반찬으로 인기가 높다. 나물로 먹을 때는 쓴맛을 빼낸 도라지를 식용유에 볶다가 양념을 한 후에 다시 볶아준다.

도라지 튀김은 얇게 저민 도라지에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조리한 후 간장 소스와 함께 내는 경우가 많으며, 도라지전은 다른 나물과 함께 반죽해 지져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또한 도라지로 쇠고기를 꼬치에 꿰어 도라지산적을 만들거나, 도라지장아찌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도라지에 고추장을 발라 구워 먹어도 별미다.

차도 만들 수 있다. 생뿌리를 껍질째 깨끗이 씻어 말린 뒤 대추·감초와 함께 물에 우려내는데, 이때 재료와 물의 비율을 1:2로 맞추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도라지의 영양학적 가치는 현대 과학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도라지의 주요 영양 성분으로는 사포닌, 이눌린, 플라보노이드 등이 있다. 비타민 B1·B2·C와 칼슘·철분 등 무기질도 함유돼 있다. 사포닌은 도라지의 쓴맛을 내는 성분으로, 항염증, 항산화, 면역 증진 등 다양한 생리활성 효과를 가지고 있다. 기침 완화와 가래 제거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용성 식이섬유인 이눌린은 프리바이오틱스로 작용하여 장내 유익균의 성장을 촉진하고 소화기 건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플라보노이드는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며, 자유 라디칼을 제거하여 세포 손상을 방지하고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무기질로는 칼륨, 칼슘, 마그네슘 등이 포함돼 있어 신체의 여러 기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21년 3월 국내 연구진이 도라지 추출물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증식 억제 물질을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의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동의보감 등 고문헌에 따르면 길경은 폐기능 강화와 목의 통증 완화, 해독 작용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것으로 기록됐다. 특히 도라지는 호흡기 건강에 특히 좋다고 알려져 있다. 도라지에 함유된 사포닌은 호흡기의 점액 분비를 촉진하여 가래를 없애주고, 기침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도라지는 기침약으로 유명한 용각산의 주성분으로 사용된다. 또한 도라지는 혈관계 질환에도 효과적이며, 혈당 수치를 정상화하여 당뇨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목구멍이 붓고 염증이 생기는 증상을 완화해주며, 천식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어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들에게 좋다.

아시아 지역에서 도라지 소비 양상을 살펴보면 일본에서는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되며 약용으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중국에서는 도라지 뿌리를 말려 한약재로 활용하거나 전통 차 문화에 도입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국처럼 일상적인 식재료로 대량 소비되지는 않는다. 베트남·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도라지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아 현지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도라지를 본격적인 식문화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라지가 서양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독특한 맛 프로파일과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다. 아린 맛과 쓴맛이 혼합된 풍미는 서양인의 미각에 낯설게 느껴지며, 뿌리채소 자체에 대한 선입견도 한몪 한다. 반면 한국인들은 수 세대에 걸쳐 도라지의 맛을 재해석하고 조리법을 발전시켜왔다. 오천원권 지폐에 새겨진 도라지꽃 문양은 이 같은 문화적 가치를 국가적 차원에서 인정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식품 소비 트렌드가 건강 기능성 식품으로 이동함에 따라 도라지의 국제적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유럽 일부 건강식품 매장에서는 도라지 분말과 추출액이 면역력 강화 제품으로 소개되기 시작했으며, 북미 지역에서는 한국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도라지차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 정부도 도라지를 K-푸드의 대표 주자로 육성하기 위해 해외 박람회 참가와 현지 시장 테스트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선 도라지 관련 제품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전통적인 무침용 도라지 외에 도라지 사탕·도라지 추출액을 첨가한 건강기능식품·도라지 막걸리 등이 시중에 출시됐다. 특히 도라지차는 차가운 겨울철 핫음료로 각광받으며 캔 제품과 티백 형태로 편의점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식당에서는 도라지를 활용한 퓨전 요리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도라지 크림 파스타나 도라지 샐러드 같은 메뉴가 젊은 소비자층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도라지는 호흡기 질환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뉴스1
도라지는 호흡기 질환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뉴스1

산업적 측면에서 도라지 가공은 일부 지역에서 중요한 경제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강원도와 충청북도 일대에서는 도라지 말림·무침 가공 공장이 운영되며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중장년층 여성들이 도라지 껍질 벗기기와 가늘게 찢는 작업에 참여해 소득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수작업 과정을 거친 도라지 제품은 프리미엄 가격으로 판매되며, 전통 식재료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도라지는 꽃이 예뻐서 관상용으로도 키워진다. 가끔 길거리나 건물 화단 등에 도라지가 무리지어 피어난 것을 볼 수 있다. 도라지꽃은 보라색이 많고, 흰색은 드물지만 재배 도라지꽃은 흰색이 대부분이다. 원예용으로 개량된 분홍색 도라지도 있다.

도라지 재배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은 두더지와 쥐의 피해를 막기 위해 3~4년 주기로 재배지를 옮기는 전통적 농법이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방법은 뿌리 수확량을 유지하면서도 해충 방지 효과를 거두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해온 지혜에서 비롯됐다. 최근에는 재배 기술 발전으로 흙이 묻은 상태의 생도라지 수입이 가능해졌지만,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깐 도라지는 중국산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국산과 수입산을 구분하기 위해 제품 표기 확인이 필요하다.

문화적 상징 측면에서 도라지꽃은 '소망'과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니며, 한국 민담 속에서 애절한 사랑 이야기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설화로는 청년을 기다리다 숨진 도라지라는 여인의 영혼이 꽃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이처럼 도라지는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한국의 역사·문화·과학이 결합된 복합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조리 기술과 현대적 응용 방법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 식재료로 평가받고 있다. 서양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이 뿌리 채소가 한국인들의 식탁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도라지는 쓴맛을 제거하고 요리해야 한다. / MBN '알토란'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