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선 ‘악마의 풀’로 불리는데... 한국인들은 밥반찬으로 늘상 먹는 식재료
2025-02-0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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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식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식재료
![고사리 채취 모습. / 연합뉴스](https://cdnweb01.wikitree.co.kr/webdata/editor/202501/28/img_20250128094100_519b61b8.webp)
한국인들의 식탁에는 다양한 산나물이 오른다. 그중에서도 고사리는 독특한 맛과 향으로 거의 모든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산나물이다. 고사리는 한국인의 식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식재료로,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사리의 역사, 영양성분, 요리법, 그리고 세계 각국의 고사리 문화까지 살펴보며 고사리의 매력을 파헤쳐본다.
고사리는 양치식물인 고사리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주로 산기슭이나 들판에서 자란다. 봄철에 어린 순을 채취해 먹는다. 독특한 쌉싸름한 맛과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이다. 고사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지만 한국에서 특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린순을 삶아 말린 뒤 보관해두면 연중 내내 다양한 요리에 활용된다.
한국인들이 고사리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고대부터 산나물을 식재료로 활용해 온 것으로 보인다. 고사리는 산간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였기에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비타민과 미네랄 공급원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시대 땐 궁중음식에서도 고사리가 사용됐으며, 민간에서는 봄철 별미로 즐겨 먹었다. 이 때문에 고사리는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담아내는 상징적인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고사리는 단순히 맛만 좋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양성분을 함유해 건강에도 이롭다. 고사리에는 비타민 A, 비타민 C, 철분, 칼슘, 식이섬유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특히, 고사리의 쌉싸름한 맛을 내는 탄닌 성분은 항산화 작용을 하며, 체내 독소를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고사리는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적합하며,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기능 개선에도 효과적이다.
고사리에는 미량의 독성 성분이 포함돼 있다. 생으로 절대 먹어선 안 된다. 잘못 섭취하면 프타퀼로사이드(ptaquiloside)라는 발암물질 때문에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고사리 독성을 제거하고 안전하게 먹으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따라야 한다.
끓는 물에 데쳐야 한다. 고사리를 끓는 물에 10분 이상 데친 후 찬물에 여러 번 헹궈 독성을 줄인다. 그런 다음 물에 담가 독성을 뺀다. 데친 고사리를 12시간 이상 찬물에 담가 프타퀼로사이드를 제거한다. 물을 두세 번 갈아주면 효과가 더 좋다. 이후 햇볕이나 건조기를 이용해 고사리를 완전히 말린다. 건조 과정에서 프타퀼로사이드가 휘발돼 독성이 제거된다. 건조한 고사리를 다시 물에 넣고 삶아 잔여 독성을 제거하고 찬물에 헹궈 마무리한다. 독성 제거 과정을 거친 후에도 과다 섭취는 피하도록 한다. 고사리를 삶을 때 쌀뜨물을 사용하거나 베이킹소다를 약간 넣으면 독성 제거 및 식감 개선에 도움이 된다. 쓴맛을 제거하려면 소금을 넣어 삶는다.
한국인들은 고사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해 먹는다. 가장 대표적인 요리는 고사리나물이다. 고사리를 데친 후 양념장과 무쳐 먹는 이 요리는 봄철 밥상의 필수품이다. 고사리나물은 간단하면서도 고사리의 독특한 맛을 살릴 수 있는 요리로, 밥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고사리나물을 만들 때는 고사리를 데친 후 물기를 꼭 짜서 양념장과 버무려야 한다. 양념장은 간장, 다진 마늘, 참기름, 깨소금, 설탕 등을 섞어 만들며, 간은 취향에 따라 조절한다. 고사리나물은 상큼하고 쌉싸름해 없는 입맛을 돋우는 데 안성맞춤이다.
고사리는 국물 요리에도 자주 사용된다. 고사리된장국은 고사리의 쌉싸름한 맛과 된장의 구수한 맛이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는 요리다. 고사리된장국을 만들 때는 된장을 풀어 끓인 물에 데친 고사리를 넣고, 두부, 애호박, 양파 등을 함께 넣어 끓인다. 된장국의 구수한 맛과 고사리의 쌉쌀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고사리를 넣은 비빔밥은 고사리의 식감과 맛이 어우러져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비빔밥을 만들 때는 고사리를 데친 후 양념장과 버무려 밥 위에 올리고, 다른 나물과 고추장을 함께 넣어 비벼 먹는다. 고사리의 쌉싸름한 맛이 비빔밥의 풍미를 한층 더해준다.
고사리는 튀김 요리에도 활용된다. 고사리를 데친 후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고사리튀김은 술안주로도 인기가 높다. 고사리튀김을 만들 때는 고사리를 데친 후 물기를 제거하고, 튀김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긴다. 튀김옷은 밀가루와 계란, 빵가루를 순서대로 묻혀 바삭한 식감을 내는 것이 포인트다. 고사리튀김은 바삭한 식감과 고사리의 부드러운 맛이 조화를 이루며,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또한, 고사리를 넣은 전(煎)은 고사리의 부드러운 질감과 바삭한 식감이 조화를 이루는 별미 요리다. 고사리전을 만들 때는 데친 고사리를 다져서 밀가루 반죽과 섞은 후, 기름에 지져낸다. 고사리전은 고사리의 쌉싸름한 맛과 바삭한 식감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고사리는 말려서 보관한 후 연중 내내 요리에 활용할 수도 있다. 건고사리는 물에 불려서 사용한다. 나물이나 국물 요리에 넣어 먹는다. 건고사리는 신선한 고사리와는 또 다른 맛을 낸다. 특히 겨울철에 고사리의 맛을 즐기고 싶을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건고사리를 활용한 요리엔 건고사리 볶음이 있다. 건고사리를 물에 불린 후, 간장, 마늘, 참기름 등을 넣어 볶아내면 간단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요리가 완성된다. 건고사리볶음은 밥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며, 반찬으로도 인기가 높다.
다른 나라에서는 고사리를 어떻게 먹을까. 고사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북미,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지만, 식문화에 따라 그 활용도는 다르다. 일본은 고사리를 전통 요리에서 자주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고사리를 데친 후 간장과 설탕으로 조려 먹는 '와라비니'라는 요리가 유명하다. 고사리를 밥에 섞어 먹는 '와라비메시'도 일본의 대표적인 고사리 요리다. 중국에서는 고사리를 '절채'라고 부른다. 주로 볶음 요리나 샐러드에 사용된다. 중국의 고사리 요리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간장과 마늘, 고추기름 등으로 강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고사리를 식재료로 활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고사리를 식용으로 즐겨 먹지 않는다. 오히려 독성이 있는 식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독풀(poisonous weed) 또는 악마의 풀(devil's brush)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고사리에 함유된 프타퀼로사이드라는 발암물질 때문다. 이 물질은 가축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사람에게도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고사리를 샐러드나 볶음 요리에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고사리를 고급 레스토랑에서 특별 요리로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서양에서도 고사리의 영양학적 가치와 독특한 식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안전한 조리법을 소개하고 섭취를 권장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고사리를 식용보다는 관상용 식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