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르, 왜 한국에서는 힘을 못 쓸까...“팬층 부재가 원인”
2025-01-1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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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SF 장르
핵심 팬층이 형성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
최근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가 초반부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하며 SF를 소재로 한 한국 콘텐츠의 고질적인 약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별들에게 물어봐'는 이민호와 공효진이라는 스타 배우 캐스팅에 더해 5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었지만, 지난 14일 시청률 조사 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첫 회 평균 시청률이 3.3%로 시작해 단 3회 만에 2%대로 하락했다. 이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한국 콘텐츠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지목된다.
한국 콘텐츠는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세계적인 인정과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SF, 특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는 여전히 부족함을 드러내며 국내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23년 개봉한 영화 '더 문'은 약 28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51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2021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허술한 설정과 감정선 부족으로 혹평을 받았다. 역시 같은 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승리호'는 화려한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신파적인 연출로 아쉬움을 남겼다.
'충무로 흥행불패'로 이름을 날린 최동훈 감독조차 SF 영화 '외계+인'에서 쓴맛을 봤다. 영화 '외계+인'은 2022년 1부를 시작으로 2024년 2부까지 개봉됐지만, 모두 손익분기점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영화는 한국 영화의 높은 CG 퀄리티를 증명했다는 평을 받았으나, 여러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특히 매력적인 설정과 비주얼을 제외하면 캐릭터와 스토리의 빈약함이 큰 단점으로 지적됐다.
영화의 주요 설정인 '신검'은 흥미를 끌었지만, 전체적인 전개가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했다. 또, 작중 배경인 고려시대와 현대를 잇는 과정이 다소 언밸런스하다는 평도 있었다.
과거에도 한국의 SF는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2000년대 초반 개봉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내츄럴 시티'는 거액을 투입하고도 혹평과 흥행 실패를 면치 못했다. 저예산 SF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불청객'은 키치적 감성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나마 성공에 가까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장르적으로 SF보다는 우화에 가깝다.
SF 콘텐츠가 한국 시장에서 부진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요인을 지적한다. 한국 관객에게 우주는 여전히 낯선 소재로 받아들여지며, 미국처럼 항공우주국(NASA)과 같은 기관이나 대중화된 영화 산업이 기반을 제공하지 못한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또 고비용 제작 환경과 관객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주요 문제로 지목된다.
노철환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는 위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SF 영화의 부진한 성적을 단지 관객의 취향 문제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특정 영화들이 한국 관객과의 문화적·역사적 배경 차이로 인해 호응을 얻지 못한 사례를 언급하며, 대표적으로 영화 '스타워즈'를 꼽았다.
노 교수는 "스타워즈는 70년대 말에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한국은 군사정권 아래에 있었고, 이 영화의 독재 대 민주주의라는 주제가 당시 사회와 맞지 않았다"라며 "그 결과, 스타워즈는 한국에서 제때 개봉되지 않았고, 문화적·역사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 교수는 '인터스텔라'와 같이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외국 SF 영화에 대해 "인터스텔라는 SF 장르라서 성공했다기보다는 당시의 특별한 문화적 흐름을 탄 것이 컸다"라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교육열이 높은 만큼, 강남의 극성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건 공부다'라며 영화를 관람했던 걸 본 기억이 난다"고 첨언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SF 영화는 국내 관객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개봉한 '듄'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주로 IMAX 관객들에게만 제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는 한국 관객층의 SF 장르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노 교수는 "우리나라 관객이 SF를 좋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개별 영화의 흥행 성공과 실패가 있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마블 시리즈의 경우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시장 중 하나였다.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나라 관객들의 마블에 대한 애정이 식었고, 마블 시리즈 자체의 매력도 점차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노 교수는 SF 영화의 한국 시장에서의 부진에 대해 연출이나 각본 문제보다는 팬층 부족을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뻔하지 않은 상업영화가 어디 있겠느냐"며 "SF는 원래 메이저 장르가 아니었지만, 미국은 스타워즈를 계기로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았고, 최근에는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도 주요 장르로 부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기술력과 제작비 문제로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SF 장르의 핵심 관객층인 10대에서 40대 남성 사이에서 팬층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SF 장르의 흥행은 팬층의 충성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노 교수는 또 "우리나라에서 SF 장르의 문제는 감독들이 그 장르의 팬이 아니거나, 어릴 때부터 팬이었던 경우라 해도 충분한 팬층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 있다"며 "곧 봉준호 감독의 SF 영화 '미키 17'이 개봉하는데, 이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고 감독이 원작을 어떻게 재해석했냐에 따라 SF 장르의 성공 여부가 다시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SF 장르의 흥행은 팬층 형성과 영화의 재해석에 달려 있다고 본다"고 강조하며 말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