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아무것도 안 들어있는 소주를 흔들어 마실까

2025-02-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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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세대도 모르는 소주의 비밀

이하 소주 회오리. / 유튜브 채널 '가리레드'
이하 소주 회오리. / 유튜브 채널 '가리레드'

술자리가 많은 연말연시, 소주병을 따기 전 우리는 무의식중에 소주병을 한 번 흔들게 된다. 소주병을 흔들어 회오리를 만들고 마지막엔 '독'을 뺸다며 소주 목을 쳐서 일부를 빼내 버리는 짓을 잘 알 것이다.

주당들 사이의 재미있는 퍼포먼스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행동이다. 식혜나 막걸리처럼 내부에 다른 내용물이 있는 음료는 먹기 전에 병을 흔드는 것이 이해되지만, 소주는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기에 흔들 이유가 없다.

유튜브 채널 'blackknife_tv'
유튜브 채널 'blackknife_tv'

나이 60을 넘은 베이비부머에게 물어봐도 "옛날에 소주에 메탄올이~" 같은 수준의 답변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메탄올이 섞여 있어도 고작 손으로 흔든 회오리에 병목을 조금 친다고 덜어내질 리가 없다.

술자리서 소주를 흔들어 재낀 이유는 따로 있다.

1950년대 소주병은 뚜껑이 지금과 같은 재질이 아니었다. 당시 소주병의 뚜껑은 와인병 등에 이용되는 코르크 마개였다.

와인은커녕 소주도 비싸서 밀가루 막걸리 먹던 그 시절에 제대로 된 코르크 마개를 썼을 리가 없다.

조악한 코르크 마개는 병을 세워서 보관할 경우 코르크가 조금씩 부스러지면서 내부에 코르크 가루가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옛날 코르크 마개를 뚜껑으로 쓰던 소주병은 소주에 코르크 가루가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병에 꽂힌 코르크 마개. / 픽사베이
병에 꽂힌 코르크 마개. / 픽사베이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소주를 따르기 전에 코르크 가루를 제거해야 했고, 병을 흔든 뒤 목을 쳐서 소주를 조금 흘려버리는 행동을 하게 됐다.

즉 불순물 버리는 용도는 맞는데 메탄올이나 독이 아니고 그냥 못 먹는 찌거기 건더기 버리는 행위였다. 오늘날에도 하고 있는 소주 '병목 치기'와 소주를 뒤집어 '병 바닥치기'는 모두가 소주 속 코르크 가루를 처리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

50년대~60년대생 베이비부머 세대도 이를 잘 몰랐던 이유는 그들이 그 당시 아기나 아이였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가 본격적으로 소주를 먹기 시작한 80년대에는 이미 코르크 마개 소주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으니까.

이제는 소주병에 코르크 마개가 장착되지 않으므로 굳이 병을 흔드는 야단법석을 떨지 않아도 되지만, 술자리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기 때문에 이 전통은 오랫동안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home 안준영 기자 andrew@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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