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미국 최고 전문가 “그 시설 있었다면 참사 막았을 것” 단언
2024-12-3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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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항엔 단 하나도 없는 EMAS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로버트 섬월트(68) 전 미국 연방교통위원회(NTSB) 위원장이 EMAS(항공기 이탈방지 시스템)가 있었다면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조선일보가 31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섬월트 전 위원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활주로 끝에 EMAS가 있었다면 사고의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MAS는 ‘engineered materials arresting system’의 약자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속도를 줄이지 못하는 ‘오버런’ 상황에서 비행기를 멈추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이 장치는 활주로 끝에 경량 콘크리트 블록을 설치해 항공기가 진입할 경우 해당 블록이 부서지면서 항공기의 속도를 급격히 줄여준다. FAA(미국 연방항공국) 규정에 따르면 상업용 공항은 활주로 양쪽 끝으로부터 300m 이상의 안전 구역을 확보해야 하지만,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대안으로 EMAS를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 FAA는 1990년대 후반부터 EMAS 기술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미국대표부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15건의 활주로 이탈 사고를 막아 총 406명의 생명을 구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0년 1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찰스턴 예거 공항에서 발생한 US에어웨이스 여객기 사고가 있다. 이 사고에서 EMAS는 활주로를 벗어난 항공기의 속도를 줄여 큰 피해 없이 정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제주항공 참사에서는 활주로 끝과 항공기가 충돌한 콘크리트 구조물 간의 거리가 약 251m에 불과했다. 이는 FAA가 규정하는 300m 이상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며, EMAS와 같은 추가적인 안전 장치의 부재가 사고 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섬월트 전 위원장은 활주로 끝에 안전 대책이 없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EMAS 설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섬월트 전 위원장은 항공 및 교통사고 조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전문가다. 그는 2006년 NTSB 위원으로 임명된 후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는 2013년 아시아나항공 214편의 샌프란시스코 착륙 사고 조사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현재는 세계 최대 항공우주 교육 기관인 엠브리리들 항공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섬월트 전 위원장은 사고 원인을 분석할 때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인사로 잘 알려져 있다.
섬월트 전 위원장은 제주항공 참사 영상과 사진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EMAS가 있었더라면’이었다면서 EMAS는 활주로 이탈 사고를 막는 데 효과적인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2016년 마이크 펜스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탑승한 비행기가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활주로를 벗어났을 때도 EMAS가 큰 피해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섬월트 전 위원장은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가 제주항공 참사 원인으로 거론되는 데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조류 충돌이 사고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지만 결정적 요인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조류 충돌이 엔진 고장을 일으켜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못했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섬월트 전 위원장은 과거 보잉 737 기종을 직접 조종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조류 충돌이 랜딩기어나 플랩 작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랜딩기어와 플랩의 작동 문제는 별도의 기술적 결함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EMAS를 설치한 공항이 없다. 다만 내년 완공 예정인 울릉공항에 대해 EMAS 설치가 검토되고 있다. 섬월트 전 위원장은 EMAS는 설치 비용이 들더라도 활주로 안전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한국도 이 시스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