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무안공항 참사?…명칭에서부터 논란

2024-12-3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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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바다 기름 유출 사고,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사건 초기 명명 중요

지난 29일 오전 9시경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중 활주로 외벽에 충돌한 뒤 화재가 발생해 179명이 숨지고 2명이 구조됐다.

합동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헌화하는 모습 / 뉴스1
합동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헌화하는 모습 / 뉴스1

언론에선 해당 사건을 '제주항공 참사', '무안공항 참사' 등으로 명명하고 있는데, 지역명을 앞세운 명칭은 지역 혐오를 조장하고 책임 주체를 가린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건의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차별이나 책임주체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참사 초기 언론의 명명이 중요하다.

사고 초기 제주항공과 정부·여당에서는 사건명에 무안공항을 강조했다.

활주로 이탈 참사를 낸 제주항공은 지난 29일 자사 홈페이지 안내문에서 이번 사건을 '무안공항 사고'라고 표현해 책임을 희석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국토교통부도 이날 보도참고자료에서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 대응'이라는 제목을 사용해 비판받았다.

지난 30일 김대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이번 사고가 특정 지역 비하로 이어지면 안 된다며 사고 대책을 위해 마련된 기존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 대책위원회'를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대책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지역명을 부각시킨 보도는 지역혐오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실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 뉴스 댓글에는 사고가 발생한 호남 지역과 지역민들에 대한 비하와 혐오 내용을 담은 글이 게시되고 있다.

언론에서도 이번 사건 관련해 지역명과 항공명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다수였다.

그러나 무안국제공항에 설치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과 이를 지지하기 위해 지상으로 돌출된 형태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구조물(둔덕)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기에 사건의 주체인 무안 공항 참사로 명칭을 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설치 규정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항안전운영기준 제42조에 따르면 설치가 허가된 물체를 지지하는 기초 구조물은 지반보다 7.5cm 이상 높지 않고 부러지기 쉬운 구조로 세워져야 한다. 이에 따르면 무안공항 로컬라이저는 규정(지반 7.5cm 이하)보다 한참 높다.

하지만 국토부 관계자는 “무안공항 로컬라이저는 안전 구역의 물리적 범위 바깥에 위치해 해당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로컬라이저는 항공기 착륙시 수평을 맞춰 활주로에 착륙 유도 시스템의 일부인데,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2m 높이의 콘크리트 담벼락 위에 설치돼 있어 사고 기체가 이에 충돌하며 반파됐다.

과거 많은 사건에서 사건 초기 특정 지역이 들어간 이름을 쓰다가 문제가 제기되곤 했다.

2007년 12월 7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태안바다 기름유출사고는 '태안'이 강조돼 '태안기름유출사건'으로 불렸지만 언론이 '태안'이라는 지명을 강조하여 사건을 규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가해자인 삼성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피해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역시 사건 초기엔 '진도 여객선 침몰 사건' 등으로 부르다가 사건이 발생한 지역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에 세월호 참사로 부르고 있다.

2020년 노동자 38명이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로 사망한 '한익스프레스 참사'도 초기에 '이천 물류센터 참사'라고 불렸지만, 물류창고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의 책임이 드러나야 한다는 문제제기에 기업명을 부각했다.

코로나19 역시 초기에 '우한 폐렴'으로 불렸던 것을 고려할 때 이번 사건에서도 특정 지역을 부각하는 것보다는 이번 사건의 책임자를 부각하는 방식의 명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전날 “이번 사고와 관련해 국토부가 항공안전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경찰 등과 중대시민재해 위반 여부도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