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급격한 몰락,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 때문"

2024-12-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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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윤 대통령 무너뜨리는 데 기여“

4일 울산 남구 롯데백화점 앞 광장에서 민주노총 울산본부를 비롯한 16개 노조 연맹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전날(3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 뉴스1
4일 울산 남구 롯데백화점 앞 광장에서 민주노총 울산본부를 비롯한 16개 노조 연맹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전날(3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 뉴스1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연관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블룸버그 통신이 17일(현지시각)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대통령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줬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처럼 보도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늦은 밤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했다. 그의 발표는 한국 사회를 순식간에 격동으로 몰아넣었다. 몇 시간 만에 서울 거리에 수만 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었고, 국회의원들이 계엄 저지를 위해 국회 담장을 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며칠 뒤 윤 대통령은 간신히 탄핵 시도를 피해갔으나 야당의 집중적인 압박으로 퇴진 위기를 맞았다. 이후 야당의 탄핵 시도가 성공해 윤 대통령은 결국 직무정지 상태를 맞았다. 시민은 풍선을 하늘로 띄우며 기쁨을 만끽했다.

블룸버그는 윤 대통령의 몰락이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지난 몇십 년간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직접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통해 빠른 산업화를 이뤄낸 나라다. 이 같은 문화적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게 '빨리빨리' 문화다.

매체에 따르면 '빨리빨리' 정신은 한국 사회의 모든 측면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이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창조적 파괴와 과감한 도전을 통해 성공을 거둔 비결이기도 하다. 기술 개발, 인프라 프로젝트, 심지어 정치적 의사결정까지도 이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900만 명과 군인들이 동원돼 예정보다 1년 앞서 완공됐다. 이처럼 빠른 결과를 향한 압박은 한국 경제를 단시간에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는 정치적으로 과도한 드라마를 낳기도 한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언은 단 5분간의 회의 끝에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급박한 결정 방식은 한국 정치의 특징인 동시에 '빨리빨리'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직원인 윤수연 씨는 블룸버그에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이 다른 나라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라고 말했다. 다만 윤 씨는 빨리빨리 문화가 지나치게 빨리 달아오르고 식는 성격, 일명 '냄비근성'과도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저는 이 성격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번 불붙으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건 사실입니다.“

한국은 지난 100년 동안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됐고, 한국전쟁을 겪은 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국 중 하나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빨리빨리' 정신은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전후 복구와 경제 성장은 극도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요구했고, 이로 인해 오늘날의 한국적 특성이 형성됐다. 하지만 이제 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된 상황에서 과거의 극단적 속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언 이후, 한국은 극심한 사회적, 경제적 혼란에 휩싸였다. 금융 시장은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원화 가치는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민의 분노는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고, 탄핵안은 신속히 처리돼 국회에서 가결됐다. 탄핵안을 헌법재판소가 인용할 경우 대선이 조기에 치러진다.

많은 한국인은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금 단결과 저항 정신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한 연구자는 "한국인들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이것은 100년에 걸친 저항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야당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이번 계엄령 선언을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윤 대통령의 행동이 그 시절의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이번 시위가 단순한 정치적 저항을 넘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집단적 행동이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단순히 대통령의 퇴진만 요구한 것이 아니다. 이번 행동은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 시민의 말처럼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특성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