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탄핵안 통과] 윤 대통령은 어쩌다 스스로를 나락의 길로 내몰았을까
2024-12-1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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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 검사' 이미지로 인기... 불통 이미지로 인기 잃어
국무위원들 반대에도 충동적인 계엄 선포하며 자멸의 길
윤석열 대통령은 어쩌다가 ‘나락의 길’을 걷게 됐을까. 14일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면서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서게 된 윤 대통령의 정치 인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과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제1야당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찬 데 이어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접전 끝에 대권을 차지했다. 정치권 진출 약 8개월 만에 이뤄낸 초고속 성공이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비상계엄이라는 자충수를 둠으로써 스스로를 정치적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
윤 대통령이 처음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건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국정원과 국방부를 상대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며 박근혜 정부와 충돌하다 결국 대구고검으로 좌천됐다. 당시 남긴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그를 ‘강골 검사’로 각인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 후반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윤 대통령은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했고,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대중적 주목을 받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그는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지휘하며 문재인 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충돌 과정를 거치며 윤 대통령은 보수 진영의 차기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윤 대통령은 결국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내 경선에서 홍준표 대구시장, 유승민 전 의원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꺾고 대선 후보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0.73%포인트 차이로 꺾고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권력의 정점에 섰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점차 지지층과의 괴리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취임 직후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52%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부인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 야당과의 극한 대립, 국민의힘 내부 갈등 등이 연이어 터지며 지지율이 하락했다. 2024년 12월 탄핵소추안 통과 직전에는 지지율이 11%까지 떨어졌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 등이 주요 리스크로 작용했다. 여기에 더해 2023년 말 불거진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의 폭로는 사태를 더욱 악화했다. 명태균 씨는 김 여사가 2022년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개입했다고 주장해 윤 대통령 부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윤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를 외면하고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다. 야당이 네 차례에 걸쳐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단독 처리하며 압박을 가하자 매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맞섰다. 취임 후 25건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의 45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런 강경 대응으로 인해 야당과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윤 대통령은 여당과도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켰다. 지난해 12월 여당은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하며 총선을 준비하려 했으나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갈등의 골은 급속히 깊어졌다. 두 사람의 대립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입장 차로 정점을 찍었고, 이를 계기로 국민의힘은 내분에 휩싸였다. 친윤계와 친한계로 분열된 여당은 총선에서 대패했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정치적 오판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였다. 여야 갈등과 정치적 혼란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내린 이 결단은 윤 대통령의 정치적 고립을 더욱 심화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국무회의에서 다수의 국무위원이 반대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국무회의장을 뛰쳐나가더니 계엄을 선포했다. 하지만 계엄은 6시간 만에 종료됐다. 이 사태는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혔고, 윤 대통령이 더 이상 국가 운영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말이 국내는 물론 미국 등 해외에서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