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체결함으로 결항해놓고 자연재해라며 보상 거부한 대한항공

2024-12-1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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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피해 겪은 유튜버 “대한항공이 내 여행 박살냈다” 분노

인천공항 활주로에 있는 대한항공 자료 사진. / 뉴스1
인천공항 활주로에 있는 대한항공 자료 사진. / 뉴스1

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국내 유일 초대형 항공사가 된 대한항공이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기체 결함으로 국제선을 결항해 놓고 자연재해가 원인이라며 말을 바꿨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보상을 회피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해외 도착지에서 수천만원짜리 크루즈 관광이 예정된 승객도 있었다는데 돈만 날리게 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한항공은 무성의한 대응으로 승객들의 불만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최근 구독자 57만여명의 여행 유튜버 '또 떠나는 남자(또떠남)'의 채널에 '대한항공이 제 여행을 박살 냈습니다'라는 셀프 제보 영상이 올라와 누리꾼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유튜버는 지난달 27일 오전 8시 5분 인천공항에서 일본 오키나와로 떠나는 대한항공 KE 755편에 탑승했다.

이륙이 지연되는 오키나와행 대한항공. / 유튜브 채널 '또떠남'
이륙이 지연되는 오키나와행 대한항공. / 유튜브 채널 '또떠남'

영상에 따르면 항공기는 오전 8시 12분 출입문을 닫고 출발했는데, 새벽부터 내린 눈으로 디아이싱 절차를 거친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디아이싱은 항공기 날개와 동체에 쌓인 눈이나 얼음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항공기는 당초 출발 시간을 2시간 가까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활주로 위에 있었다. 그때 '기체 결함으로 게이트로 돌아간다(램프리턴)'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고 한다.

유튜브 채널 '또떠남'
유튜브 채널 '또떠남'

이후 오후 11시 20분에 '235번 게이트에서 재탑승할 예정이며 밀 바우처를 나눠 준다'는 안내 방송이 떴다.

기체에 쌓인 눈을 치우고 이륙할 준비가 끝났는데 갑자기 발생한 기체 결함 때문에 다시 게이트에 돌아가 정비를 마치고 떠난다는 얘기였다.

할 수 없이 게이트로 복귀한 유튜버는 2만원짜리 밀 바우처를 받아 공항 면세구역 음식점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유튜버는 "대한항공이어서 결항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대체편 투입을 할 것이다"며 침착하게 대한항공의 추후 조치를 기다렸다.

폭설에 따른 기상 악화로 재출발 시각과 재탑승 게이트는 수차례 바뀌더니 원래 출발 예정 시간을 7시간 넘긴 오후 3시 반이 돼서야 결항 결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대한항공 게이트 직원은 결항 사유를 기체 결함이 아닌 자연재해로 댔다. 자연재해여도 승객에게 불이익 가는 일은 없다고 유튜버를 안심시켰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결항 사유가 기체 결함이면 승객들에게 보상해야 하지만, 불가피한 자연재해라면 항공사는 면책된다.

판례도 있다. 2018년 부산지방법원은 기체 결함으로 2차례 연속 결항해 승객들에게 37시간의 지연손해를 끼친 이스타항공사에 승객 1인당 9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유튜버는 "자연재해 등 항공사가 책임 없는 사유로 항공편이 지연되면 항공사는 어떤 편의도 제공하지 않는데, 밀 바우처를 지급한 것은 게이트로의 복귀가 눈 때문이 아닌 기체 결함이라는 의미다"고 항의했지만, 현장 직원은 '나 몰라라' 했다고 한다.

유튜브 채널 '또떠남'
유튜브 채널 '또떠남'

유튜버는 운항 정보 데이터를 근거로 "램프리턴하던 시각에 다른 비행기가 다 떴다. 오전 9시 이전에 출발 예정이었던 91편의 항공편 중 KE 755편 포함 딱 두편 빼고 모두 이륙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튜브 채널 '또떠남'
유튜브 채널 '또떠남'

대한항공의 응대 매뉴얼도 낙제점이었다. 직원은 승객들에게 '환불이나 출발 날짜 변경은 콜센터에 문의하라'고 통보했다. 자연재해로 인한 결항이어서 보상도 대체편도 없으니, 항공편 취소나 변경은 각자 콜센터에 전화해 해결하라는 소리였다.

"대체편 확보와 호텔, 식사는 제공해 줘야 하지 않나. 항공사 귀책으로 인한 결항이니 피해를 보상해 줘야 하지 않나"고 따지는 유튜버에게 직원은 "의사 결정권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승객 중에는 다음날 현지에서 노모, 가족들과 함께 수천만원짜리 크루즈 여행 상품을 예약한 이도 있었다.

전화 폭주로 1시간 넘게 씨름한 끝에 간신히 콜센터에 연락이 닿은 유튜버는 다음날로 출발 시간을 변경했지만, 폭설이 그치지 않아 이마저도 출발 5시간 전에 취소됐다.

인천에서 자비로 강제 2박을 하게 됐다는 유튜버는 "차라리 LCC(저가 항공사)라면 화가 안 났을 것이다. 이게 우리가 믿었던 대한항공 1등 항공사의 모습이냐"고 분노하면서 "굳이 더 높은 비용을 들여 대한항공을 타야 할까"라고 탄식했다.

본지 질의에 대한항공 관계자는 "출발 후 디아이싱 과정에서 정비가 요구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항공기 교체후 대기했지만 폭설로 인해 결항한 것이다"고 해명했다.

home 안준영 기자 andrew@wikitree.co.kr